비보이 소년범이 법정에서 춤춘 사연

KBS '그대가 꽃', 천종호 판사 편 방송...'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천 판사 목격담

등록 2015.05.29 15:43수정 2015.05.2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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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그대가 꽃> 22회에서는 천종호 판사의 '미안해, 우리가 미안해' 편이 방송된다. ⓒ KBS


'소년범의 아버지' 천종호(50)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의 살아온 이야기가 방송 휴먼 드라마로 펼쳐진다. KBS 1TV  <인순이의 토크드라마-그대가 꽃>(이하 <그대가 꽃>)은 천 판사를 주인공으로 한 '아니야, 우리가 미안해' 편을 6월 3일 오후 7시 30분에 방송한다.

천종호 부장판사를 주인공으로 한 22번째 <그대가 꽃>의 '미안해, 우리가 미안해'는 법조인의 성공드라마가 아니다. '판자촌 돌부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의 집념으로 5전6기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천 판사는 한때 돈을 긁는 최고의 변호사가 되기 위해 술자리와 인맥을 쌓던 통속적인 법조인이었다.

그는 부산의 대표적 빈민가였던 아미동 까치고개 출신이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의 일감이 끊기면 아홉 식구는 굶어야 했고, 도시락을 싸가지 못한 어린 천 판사는 수돗물로 허기를 채워야 했다. 배고픔 못지 않게 고통스러운 것은 육성회비와 준비물을 챙겨갈 수 없는 것이었다. 어린 천종호는 그래서 결석하곤 했다. 뼈저린 가난을 통해 판사가 됐으니, 7남매 중에 혼자서 대학을 갔으니 가난한 가족을 구할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창원가정법원 소년판사가 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성매매, 절도, 폭력, 강도 등의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을 재판하게 되면서 운명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부모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며, 국가로부터 격리당한다. 부모와 사회를 증오하며 범죄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천종호 판사는 빈민가 출신의 아픔을 새겼다. 그리고는 잘못된 세상의 죄를 통째로 뒤집어 쓴 아이들에게 "미안해, 우리가 미안해"라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한 명당 4~5분 만에 끝내야 하는 소년재판. 소년과 부모의 변화를 짧은 시간에 이끌어내기 위해 천 판사는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호통 판사', '눈물 판사'가 됐다. 가짜 반성과 변명으로 일관하는 소년과 부모에게 벼락처럼 호통을 치면서 시를 읽게 하거나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엄숙해야 할 재판정을 "엄마아빠,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들아, 딸아, 미안하다!"라며 화해와 용서의 눈물바다로 만든 것이다.

'그대가 꽃' 인순이-신효섭, 출연료 전액 '사법형그룹홈'에 전액 기부키로

국내 최초의 비보이 법정공연이 천종호 판사 편에서 방송된다. ⓒ KBS


<그대가 꽃> 천종호 판사 편에서는 국내 최초로 '법정 비보이 공연'이 방송된다.


가난한 비보이 지망생이 사고를 쳤다. 그런데 합의금이 없어 소년원에 가야만 했다. 천 판사는 소년의 재능을 살릴 방안을 궁리하다 기발한 제안을 했다. 소년범을 법정에서 춤추게 하면서 피해자가 재능을 높이 사서 합의할 수 있도록 계획한 것이다. 결국, 법의 원칙과 처벌보다 관용과 용서가 소년들을 살리는 판결임을 굳게 믿는 천 판사의 계획대로 피해자가 소년을 용서하면서 소년범으로 전락할 뻔한 비보이 소년은 희망의 춤꾼이 됐다.

이와 같은 천 판사의 모습에 <그대가 꽃> 진행자인 가수 인순이와 세프 신효섭은 출연료를 천 판사가 2010년 만들어 운영 중인 '사법형그룹홈'에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 사법형그룹홈은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소년들 중 부모 등의 보호자가 없는 이들을 돌보는 대안가정으로, 현재 부산과 창원 등지에서 13곳이 운영되고 있다. 정부의 사회복지 시스템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여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사법부의 작은 지원과 운영자의 희생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대가 꽃>에서 천종호 판사에게 선물한 음식은 '대게 삼.계.탕'이다. 신효섭 세프가 만들어 천 판사에게 제공하는 이 음식의 레시피에 얽힌 사연은 비밀이다. 방송에서 직접 보시라. 대신 천 판사의 당부는 미리 공개한다.

"소외되고 외로운 아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품어주시면, 이 아이들이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의 좋은 이웃이 될 겁니다."

목격담 1. 천종호 판사는 어떻게 소년범의 아버지가 됐나

2014년 11월 안양소년원 특강을 마친 천종호 판사가 소녀들의 악수공세에 손을 잡으며 웃고 있다. ⓒ 조호진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이자 위기청소년 지원 활동가인 필자가 만난 천종호 판사의 민낯을 공개한다. 목격담은 100% 실화다. 방송이나 취재 관계로 만난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목격 장면을 상상하면 당신의 가슴은 먹먹해질 것이다. 그리고는 당신도 모르게 "미안해, 우리 어른이 미안해!"라고 고백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2014년 11월 14일 여자소년원인 '안양소년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판사님", "판사님~!"
"내가 누군지 알아?"
"예, 잘 알아요. 천 판사님~!"

안양소년원 특별강사로 초청된 천종호 부장판사가 소년원 강당에 들어서자 환호성이 들렸다. 소녀들이 천 판사를 환대한 것은 아버지 없는 자신들의 아버지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천 판사는 소년범의 원죄는 소년들을 낙인찍고, 격리하고, 외면한 어른과 승자독식의 사회구조라는 사실을 깨닫고 속울음으로 사과했다.

아버지 없이 태어나고, 자라고, 부모에게 버려지면서 어둠의 자식이 된 아이들…. 천 판사는 아이들을 만나면 아버지가 된다. 이 아이들에게도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줄 든든한 아버지, 저녁 바람에 덜컹거리는 문을 닫아주는 따뜻한 아버지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천 판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소녀들을 만나러 왔고, 소녀들은 자신들처럼 가난했던 판사의 이야기에 울고 웃었다.

강연을 마친 천 판사는 소녀들의 악수 세례에 일일이 손을 잡아주면서 자신이 재판한 소녀 중에 '희망아', '신희야', '규선아' 등 (이상 가명) 아는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고 격려했다. 소년재판에서 가장 무거운 10호 처분으로 안양소년원에 온 아이들이다. 엄벌에 처하면 앙심을 품기 마련인데 이 아이들은 오히려 사랑과 희망의 마음을 품었다. 강연을 마친 천 판사는 소년원을 떠나기 전에 소년원장에게 5만 원 짜리 지폐를 주면서 "신희에게 주는 용돈인데 대신 좀 전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신희는 조부모 품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연락두절이고 아버지는 딸의 양육을 거부했다. 천 판사는 또래의 휴대폰을 뺏고 훔친 사건으로 법정에 선 신희를 보호기관에 6개월 위탁하는 6호 처분을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신희가 더 무거운 10호 처분을 요구했다. 그 이유는 비행을 끊기 위해서라고 했다. 천 판사는 고심 끝에 10호 처분을 내리면서 재판정에 온 유일한 보호자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라고 했고, 신희는 법정 바닥에 끓어 앉아 "할아버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며 흐느꼈다.

할아버지 눈에선 굵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러자 신희는 "울지 마, 할아버지"라며 같이 울었고, 법정 사람들의 가슴은 먹먹해졌다. 이 장면을 힘겹게 지켜본 천 판사는 "소년원에서 검정고시 합격도 하고, 미용자격증도 따라. 돈이 필요하면 훔치지 말고 판사님께 전화해라"라고 당부했다. 신희는 안양소년원에서 "'판사님께 전화하라'는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빈말이든 아니든 저에게 그렇게 말해주신 분은 아무도 없었습니다"라며 "판사님과 할아버지께 한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다짐의 편지를 천 판사에게 부쳤다.

천 판사는 소년원에서 온 편지를 종종 받는다. 외로운 아이들의 편지를 읽으면 가슴이 저려온다. "판사님이 저의 아버지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희망이의 편지에 천 판사는 눈물이 핑 돌았다. 아버지의 정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천 판사는 소년원과 교도소에서 편지가 오면 소망의 글귀를 책에 써서 보낸다. 신희에게는 용돈도 같이 보냈다. 아버지가 엄마 몰래 쥐어준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는 소녀에게 아버지의 마음으로 용돈을 준 것이다. 

목격담 2. 천종호 판사 아내의 '눈물'

안양소년원 특강을 마친 천종호 판사(맨 오른쪽)가 안양소년원 원장(맨 왼쪽)에게 5만원 지폐를 전하고 있다. 이 돈은 자신이 재판한 소년에게 주는 용돈이다. ⓒ 조호진


5전6기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청년 천종호, 가난한 고시생 곁에는 가난한 애인이 있었다. 통속 드라마에서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가난한 주인공은 가난한 애인을 버리고 부잣집 여자를 선택한다. 사법고시에 합격하자마자 천 판사에게도 중매쟁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잣집 사위가 되면 판사로서의 앞길은 탄탄대로였겠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순정을 택했다. 그래서 봉천동 지하 단칸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환경재단(이사장 이세중)은 천종호 부장판사를 '2014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으로 선정했다. 지난해 12월 19일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천 판사의 아내가 대신 참석했다. 시상식을 마치고 천 판사의 아내와 함께 식사했다. 그의 아내는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눈물을 흘렸다.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다. 최근에 장기주택상환을 끝내면서 내 집이 된 기쁨, 늦둥이가 태어난 기쁨, 가난한 부모형제를 도우며 사는 기쁨…. 그리고 남편에 대한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이는 성격상 불의와 타협하지 못하는 꼿꼿한 사람이에요. 반면 어려운 사람들의 사정을 보면 외면을 못해요. 그래서 소년범의 아버지가 됐나 봐요. 그이는 저에게 분이 넘치는 사람이에요. 그이가 고생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자 주변은 물론이고 시부모님까지도 부잣집 혼처를 알아보았지요. 가난한 저를 버리고 부잣집 여자와 결혼해도 됐는데 저를 버리지 않고 선택했어요."
#천종호 부장판사 #소년범의 아버지 #그대가 꽃 #인순이 #사법형그룹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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