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퍼트 대사가 사는 집, 구경 좀 해볼까요?

[현장] 서울 정동 미 대사관저 일부 130년 만에 일반인 공개

등록 2015.05.29 23:27수정 2015.05.2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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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미 대사관저 개방행사에 많은 시민들이 참가하고 있다. 앞에 보이는 것은 130여년 전부터 미국공사관으로 쓰이던 건물이다. 지금은 외빈 접대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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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미국공사관 건물. 내부는 촬영할 수 없었다. ⓒ 김경년


"어, 뭐야. 이게 다야?"
"내 생에 이런 곳을 다 와보다니..."

29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뒤편은 인산인해였다. 130여 년간 일반인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미국 대사관저가 문을 여는 날이기 때문이다.

순서를 기다리는 관람객의 줄이 100여m 이상 늘어섰고, 입장까지는 무려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초강대국 미국의 대사가 묵는 곳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그만큼 크고 뜨거웠다.

그러나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 내부를 둘러본 이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아니, 이왕 행사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이게 뭐야. 1시간 넘게 기다려서 들어왔는데, 다 막아놔서 보는데 5분도 안 걸리잖아."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산다는 이재자씨(52)는 "미국 대사가 사는 집이라고 해서 많이 기대하고 왔는데, 볼 게 너무 없다"며 아쉬워했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온 서문호씨(82)도 "건물을 한식으로 지어 인상적"이라면서도 "너무 금방 나오니까 서운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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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개방된 미 대사관저 본관. 내부는 공개되지 않고 멀리서 사진만 찍을 수 있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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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공개된 미 대사관저 내 정원에 캐슬린 스티븐스 전 대사가 식수한 나무가 서있다. ⓒ 김경년


"1시간 기다려 5분 보다니..."  "여길 들어와본 것만으로 감격"

관람객이 실망한 듯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이날 미 대사관 측이 공개한 곳이 너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으로 크게 덴 미 대사관 측은 애초 개방 행사를 거부했다가 리퍼트 대사의 적극 검토 지시에 개방을 결정했다. 그러나 안전 문제 때문에 대사가 거주하는 본관 건물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내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날 관람객이 본 것은 130년 전에 미국 공사관으로 쓰던 건물과 정원 일부였다.

그러나 미 대사관저의 문을 열고 들어와 봤다는 것 자체에 감격한 시민도 많았다. 경기도 군포에서 부부 동반으로 온 우아무개씨(54)는 "사실 대사관을 가보기는 쉽지만 관저는 평생 한번 구경하기 힘들지 않냐"며 "미국이 더 가까워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덕수궁 근처에 산다는 김준호씨(85)도 "전쟁과 같은 격동의 시절을 헤쳐온 우리 세대는 미국이란 나라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며 "피습 사건을 겪었으면서도 이 같은 결정을 해준 리퍼트 대사가 한미 동맹을 위해 큰일을 했다"고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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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개방된 미 대사관저에 입장하기 위해 줄서있는 시민들.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 김경년


미 대사관저는 어떻게 130년 동안 한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대한문을 왼쪽으로 돌아 고적한 덕수궁 돌담길을 터벅터벅 걷다가 정동 제일교회 앞 사거리에 이르면 정면에 갑자기 나타난 바리케이드와 경찰관들의 모습에 발길을 멈칫한다. 그 안쪽으로 100m 쯤 들어가 높은 담벼락과 굳게 닫힌 철문이 막고 있는 곳이 바로 미국 대사 관저, 하비브하우스다.

이곳은 과거 조선 왕실이 서양인에게 매각한 최초의 부동산이며 서울에 있는 외국 대사 관저 중 한국 전통 가옥 모습을 한 유일한 곳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또한 미국이 해외에 갖고 있는 공관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이기도 하다.

1883년 조선 왕실은 푸트 초대 미국공사에게 강원도관찰사의 아들 민계호의 집을 팔았고, 그가 본국에 "일어서면 모자가 천장에 닿아 불편하니 대사관을 새로 지어야겠다"며 공사비를 요청하자 국무부가 "조선에서는 실내에서 모자를 쓰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딱지를 놓았다는 일화가 있다. 그래서 당시 한옥 건물이 없어지지 않고 아직도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흘러 해방 뒤 광화문에 미국 대사관이 지어지자 이곳은 대사의 관저로만 사용하게 된다. 1976년 당시 하비브 대사는 집이 너무 낡아 허물어질 지경이 되자, 미국에서 더글러스 소나무를 들여와 외관은 한옥, 내부는 양식으로 한 절충형 한옥 대사관저를 지었다. 이후 미국 대사관저를 '하비브하우스'라 부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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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일대에서 열리고 있는 '정동야행' 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조선시대 전통무기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 김경년


30일 오후 한 차례 더 행사... 정동 일대 20여 기관 밤 10시까지 개방  

미 대사관저 개방 행사는 오늘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2시간 동안 열렸으며, 토요일인 30일에도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4시간 동안 한 차례 더 진행된다.

이 행사는 서울 중구청이 낮의 모습만 익숙했던 정동을 밤 늦게까지 볼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기획한 '정동 야행' 축제의 일환으로, 이를 위해 정동 일대의 덕수궁과 성공회서울대성당, 시립미술관, 배재학당역사박물관, 경찰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조선일보미술관, 농업박물관 등 20곳의 기관들이 29~30일 양일간 밤 10시까지 문을 활짝 연다.

오는 30일 오후 7시 덕수궁 중화전 앞에서는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는 음악회가 열리고,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조족등 만들기, 야광 한약향첩 만들기, 야광 점괘체험, 조선시대 무기 만들기, 조선 시대 저잣거리 체험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정동은 1396년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이 들어서며 생긴 지명이며, 1883년 미국 공사관이 처음 들어 선 이후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각국 공관이 차례로 들어서 외교 중심가로 떠올랐다. 한편 이번 행사에 미 대사관저는 개방에 참여했지만, 똑같이 덕수궁과 담을 맞댄 영국대사관은 안전을 이유로 개방을 거부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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