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 버리지 못한 탓? 200년 전 '유물' 꺼낸 헌재

[주장] 헌재의 '교원노조법 제2조 합헌 결정'의 의미

등록 2015.05.31 18:08수정 2015.05.31 18:08
10
원고료로 응원
a

헌재 앞 묵념하는 전교조 조합원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해직교사 노조 가입불가'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근거가 된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아래 교원노조법) 2조를 8:1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 이희훈


5월 28일 헌법재판소는 현직 교원만 교원노조에 가입하도록 한 교원노조법 제2조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사건 담당변호사 중 한 명으로서 많은 기대와 격려를 보내주셨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 조합원들과 시민들께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능력 부족과 잘못으로 역사의 수레바퀴가 후진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만, 이번 헌재 결정으로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거나, 고용노동부장관의 법외노조통보가 정당한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언론보도는 오해이거나, 과장입니다. 제 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공식 입장입니다.

"교원노조법 제2조의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일 뿐, 고용노동부 장관의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가 정당한지에 관한 것은 아닙니다." - 유미라 헌법재판소 공보심의관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이 복잡한데다가 속보 경쟁에 몰린 언론이 미처 사건의 경과와 쟁점을 파악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에 담당변호사 중 한 명으로서 이 사건의 경위와 쟁점을 알려드리기 위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번 헌재 결정에서아쉬운 부분도 간략히 짚어 볼까 합니다. 다소 길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의 쟁점 세 가지

교원노조법 제2조는 교원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교원을 현재 재직 중인 교원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해직 교원, 교사 자격을 취득하고 임용 전이거나 구직 중인 사람은 교원노조, 즉 전교조에 가입할 수 없습니다. 기간제 교원도 계약기간 동안에는 가입할 수 있지만,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전교조에서 탈퇴해야 합니다.

전교조 조합원은 약 6만 명인데 그 중에는 해직 교원 9명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2013년 9월 23일 해직 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규약을 바꾸고, 이들 해직자를 조합에서 배제하도록 시정요구를 했습니다. 전교조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고용노동부의 시정요구를 거부하였습니다(투표인원수 5만9828명, 투표율 80.96%, 거부한다 68.59%, 수용한다 28.09%).


고용노동부는 2013년 10월 24일 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에 근거하여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를 하였고, 현재 서울고등법원에 법외노조통보처분 취소소송이 계류 중입니다. 이처럼 전교조가 법외노조통보를 받은 것은 직접적으로는 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의 시정요구 및 법외노조통보 조항 때문입니다.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의 쟁점은 다음과 같이 압축될 수 있습니다.

첫째, 현직 교원만 교원노조에 가입하도록 한 교원노조법 제2조가 헌법에 합치되는지,
둘째, 법률 없이 대통령령인 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만으로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는지,
셋째, 6만 명의 조합원 중 9명, 비율로 0.015%의 조합원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의 법내노조 지위를 박탈할 수 있는지. 

위와 같은 세 가지 쟁점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교원노조법 제2조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습니다. 해직 교원이나 교사 자격을 취득하고 구직 중인 사람, 또는 계약기간이 만료된 기간제교원 등이 교원노조에 가입하면 교원노조의 자주성과 주체성이 훼손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법외노조통보의 근거가 된 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에 대한 헌법소원은 각하했습니다. 헌법소원은 다른 구제수단이 있는 경우 제기할 수 없습니다.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통보처분의 정당성, 그 처분의 근거가 된 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의 위법성은 법원에서 가리라는 것입니다.

셋째, 교원노조법 제2조에서 현직 교원으로 조합원 자격을 제한한다고 하여, 이를 이유로 이미 설립신고를 마치고 정당하게 활동 중인 교원노조의 법상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 항상 적법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교원노조에서 활동하는 자격 없는 조합원의 수, 그러한 조합원들이 교원노조 활동에 미치는 영향, 자격 없는 조합원의 노조활동을 금지 또는 제한하기 위한 행정당국의 적절한 조치 등을 종합하여 적법한 재량의 범위 안에 있는지 법원이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교원노조법 제2조가 합헌이라는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가 이미 설립되어 정당하게 활동 중인 교원노조인 전교조에게 법외노조통보를 한 것이 정당한지는 여전히 미완의 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민의 상식으로 뒤집어진 헌재 결정, 이번에도...

헌법재판소 결정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쉽습니다. 1991년 7월 헌법재판소는 사립학교 교원의 노동3권을 제한 내지 금지하던 당시 사립학교법이 합헌이라고 했습니다(헌법재판소 1991. 7. 22. 89헌가106). 국내는 물론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 사회로부터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1999년 1월 29일 교원노조법이 제정되면서 법 밖에 있던 전교조는 법 내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교원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다고,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시민의 상식과 국제사회의 권고, 시대의 숙명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24년이 지난 2015년 5월 헌법재판소는 다시 현직 교원만 교원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고 하면서 교원노조법 제2조를 합헌이라고 했습니다. 1991년 7월 헌재 결정이 시민의 상식으로 뒤집어진 것처럼 2015년 7월 헌재 결정도 언젠가는 바로잡힐 것입니다. 아쉬운 것은 그 기간 동안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만 야기된다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가 만들었던 원죄를 씻을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a

헌재 빠져나오는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변성호 위원장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을 빠져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근거가 된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아래 교원노조법) 2조를 8:1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 이희훈


2015년 헌재는 아직도 18세기 단결금지 법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노동자의 단결이 금지되고,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범죄였습니다. 1791년 프랑스의 르 샤플레법, 1799년 영국의 단결금지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1824년 영국의 단결금지법이 폐지된 것을 필두로 19세기에 들어서는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견해가 보편적 상식이 되었습니다. 문명국가에서 200년 전에 폐기된 고대 유물인 단결금지의 법리가 2015년 대한민국에서 부활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괴롭기만 합니다.

고용노동부와 헌법재판소는 해직 교원이나 교원 자격증을 가지고 구직 중인 사람, 계약기간이 만료된 기간제 교원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면 전교조의 자주성이 훼손된다고 합니다. 교원노조의 자주성을 지키려면 이들은 절대 전교조에 가입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지나친 관심이고, 부당한 개입입니다. 누구에게 조합원 자격이 있는지, 어떻게 조합을 운영할지는 전교조 조합원들에게 맡겨두면 됩니다. 제3자인 국가가 간섭할 사항이 아닙니다.

전교조의 6만 여 조합원들은 68.59%라는 압도적 의견으로 해직 교원 9명을 조합원이라고 했습니다. 정작 조합의 주체로서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들은 해직 교원 9명과 함께 있겠다고 하는데, 제3자인 국가가 강제로 이들을 내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노동조합의 자주성으로 연결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자주성이란 스스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노동조합의 자주성이란 노동조합의 주체인 조합원들이 스스로 조합가입 범위와 활동을 결정하는 것이지, 제3자인 국가가 조합원 자격을 판단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자주성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자주성의 뜻을 바꾸지 않는 한, 헌재 결정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자주성의 이름으로 자주성을 훼손하는 모순인 동시에 200년 전 박물관으로 돌아간 고대 유물인 19세기 단결금지 법리가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입니다.

관건은 해직 교원 9명이 있는, 6만 여명의 조합원이 소속된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될 것인지 여부입니다. 가장 핵심쟁점인 법외노조통보의 근거가 된 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에 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판단하지 않았고, 이 부분은 여전히 서울고등법원 2심에서 다투어질 예정입니다.

200년 전의 단결금지 법리, 박물관으로 보내야

쉽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과거 군사정권 당시 노동조합법에서는 노동조합이 규약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행정관청이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노동조합에게 해산을 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 '법률'을 근거로 해산된 노동조합이 바로 전태일 열사의 뜻을 이어받아 설립되었던 청계피복 노동조합입니다.

이미 설립된 노동조합을 행정관청이 임의로 해산할 수 있는 노동조합 해산명령은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해치는 대표적인 노동악법으로 손꼽혔고,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같은 해 11월 여야 합의로 폐지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노태우 정부는 1988년 4월 15일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인 '시행령'으로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를 부활시킵니다. 같은 달 26일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불과 열흘 앞두고 국회가 비어 있는 틈을 노려 법외노조 통보로 이름만 바꿔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를 부활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통보의 근거가 된 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의 원형입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할 수 있습니다(헌법 제37조 제2항). 국민의 기본권에 영향을 미치는 행정청의 행정처분은 반드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만든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법률유보 원칙이 법치주의, 법치행정원칙의 핵심입니다. 1980년 군사정권 시절에는 그나마 형식적 의미의 '법률', 악법(惡法)으로 노동조합(청계피복)을 해산했지만, 33년이 지난 2013년 고용노동부는 '법률', 악법(惡法)도 없이 대담하게 '시행령'만으로 노동조합(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려 합니다. 이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가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의 핵심이자 본질입니다.

시행령에 근거한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가 과연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 제한해야 한다는 헌법 제37조 제2항의 법률유보 원칙, 기본권을 제한하는 시행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을 받아야 한다는 헌법 제75조의 위임한계 원칙을 준수하였는지가 핵심 쟁점입니다. 위반했으면 법외노조 통보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6만 여 조합원 중 9명, 0.015%의 조합원 자격이 문제된다는 이유로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 재량권의 일탈·남용이 아닌지도 부가 쟁점으로 검토될 것입니다. 이번 헌재 결정에서는 교원노조에서 활동하는 자격 없는 조합원의 수, 그러한 조합원들이 교원노조 활동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하여 적법한 재량의 범위 안에 있는지 법원이 판단해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이 기준에 비추어 보면 0.015%의 조합원 자격이 문제된다는 이유로 나머지 99.985% 조합원의 단결권을 박탈하는 것은 재량권 남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세기, 2015년입니다. 19세기, 200년 전의 단결금지 법리는 이제 그만 박물관으로 보내고, 그 빈자리는 국제 기준에 따른 단결권 보장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TV를 켜면 귀가 아프게 들리는 글로벌 스탠다드는 기업과 사용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노동자, 노동자의 일원인 교원에게도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은 바로 그 시금석이자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입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법무법인 소헌 변호사입니다.
#헌재 #교원노조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AD

AD

AD

인기기사

  1. 1 '특혜 의심' 해병대 전 사단장, 사령관으로 영전하나
  2. 2 "윤 대통령, 달라지지 않을 것... 한동훈은 곧 돌아온다"
  3. 3 왜 유독 부산·경남 1위 예측 조사, 안 맞았나
  4. 4 총선 참패에도 용산 옹호하는 국힘... "철부지 정치초년생의 대권놀이"
  5. 5 창녀에서 루이15세의 여자가 된 여인... 끝은 잔혹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