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에 악취... 6개월 만에 이뤄진 놀라운 변화

[인터뷰] 생활문화공간 달이네 주인장 청산별곡

등록 2015.06.03 15:57수정 2015.06.0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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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동구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초입에 '나비 날다'라는 이름의 책방이 있다. 책방 주인장의 이름은 청산별곡(50)이다. 본명은 따로 있지만 고려가요의 제목이기도 한 이 이름을 사용한다. 배다리 안내소, 게스트하우스, 나비 날다 책방, 생활사전시관, 요일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청산별곡을 만나러 5월 26일 배다리로 갔다.


청산별곡은 나비 날다 책방과 게스트하우스, 생활사전시관을 합쳐 생활문화공간 '달이네'라 이름 붙였다. 인터뷰 내내 그녀는 배다리 역사문화마을을 만들고 지켜온 사람은 따로 있다며, 조심스러워 했다. 조용한 공간에, 고요한 심성의 주인장을 괴롭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녀의 삶을 엿보고자 질문세례를 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배다리에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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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공간 달이네 주인장인 청산별곡(별칭). ⓒ 김영숙

"본명을 굳이 쓸 이유가 없어요. 사람들하고 소통할 때 별칭을 부르면 나이나 지위고하에 구애받지 않는 수평적 관계가 되잖아요."

환경단체에서 활동할 때부터 별칭을 사용했다는 그녀는 충청도에서 태어나 여섯 살에 인천으로 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20대부터 서울에서 환경단체 활동가로 지낸 그녀는 40대 초반까지 서울이나 강원도, 전북 등 다양한 곳에서 살았다. 그러다 2009년에 다시 인천에 둥지를 틀었다.

"인천에 다시 온 때가 지역화폐나 마을공동체 등이 회자되던 때였어요. 다른 지역보다는 내가 자란 곳에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에 1년간 인천과 배다리를 눈여겨봤죠. 마을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 같아요."


2009년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마을로 좀 더 들어간 곳에 '책 쉼터'를 만들었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배다리 헌책방 주인들과 나란히 헌책방을 열 수 없었던 그녀는 책을 산 손님들이 편히 쉬었다가는 쉼터를 꾸몄다.

무인(無人) 책방으로 운영해, 그녀가 바쁠 땐 손님이 대신 가게를 지켜주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그때의 손님이 지금도 찾아온다. 다른 지역에서 만났던 지인들이 배다리로 놀러오는 경우가 생기면서 근처에 숙소를 얻어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하기도 했다.

공간의 재창조가 이뤄지다

2012년, 지금의 '나비 날다' 책방 안채가 비었다. 주인이 이사하면서 세를 놓았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개똥이 쌓이기도 하고, 악취가 심했다. 여러 사람이 집을 구경했지만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그녀에겐 이 집이 새롭게 보였다.

일제강점기에 이 건물은 '조흥상회' 사장의 상가와 집이었다. 당시 자녀를 일본에 유학 보낼 정도의 갑부였던 사장은 이사를 하면서 대부분의 물건을 버리고 갔다. 안채와 상가는 우리나라 근현대 생활 물품들로 가득했다. 공간을 잘 활용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청산별곡은 안채와 2층 상가건물 그리고 창고까지 월세로 계약했다.

그 후 그녀는 6개월간 청소했다. 남은 물건들을 버리는 게 아니라 추려서 2층에 생활사전시관을 차렸다.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초입에 있어, 많은 사람이 방문해 배다리의 이것저것을 묻고 갔다. 그녀는 배다리와 가게를 홍보할 목적에 책방과 겸해서 배다리안내소를 운영하기로 했다. 물론 혼자가 아닌 마을공동체를 일구는 동료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당시 인천문화재단은 '지역 거점화 지원 사업'을 추진했고, 청산별곡은 배다리안내소로 응모해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받았다.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던 건물이 재탄생한 것이다.

지난해 12월에 문을 연 '요일가게'도 창고였던 것을 인천문화재단 지원 사업으로 지금의 아기자기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방치하다시피 한 건물을 새롭게 단장하니, 주인이 월세를 올려달라고 했다.

"요구한 금액의 일부만 올렸어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나가라고 하면 어쩔 수 없죠. 속도를 얼마나 늦추고, 내가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가 중요한 거죠."

나눔과 비움으로 가벼워져 날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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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가게-다 괜찮아’ 가게 내부 전경. 매주 화요일은 핸드메이드 공방이 열린다. ⓒ 김영숙


고양이 다섯 마리와 살고 있는 청산별곡은 어릴 때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다. 배다리에 들어와 길고양이를 길렀는데, 그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고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 고양이에게 애정이 더 생겨 고양이 관련 서적을 많이 모으고 있다.

"나눔과 비움의 앞 글자를 따서 책방 이름을 '나비'로 했어요. 고양이를 키우면서 '나비'의 의미가 겹쳐졌는데, 내 어릴 적 별명도 나비였어요."

30대 후반부터 환경에 관심을 가진 그녀는 예전의 우리 부모들처럼만 살면 환경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절약하고 함부로 버리지 않고 나눠썼던 경험들을 되살려, 그녀는 지금도 '되살림'을 강조한다. 한 칸짜리 책 쉼터에서 지금은 여러 가게와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우스갯소리 반, 걱정 반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자적이다.

"배다리에서 돈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걸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2009년 처음 이사 와서 가게 문을 여는 데 50여일 걸렸어요. 다른 사람들은 일주일 안에 인테리어 작업을 끝낼 텐데 저는 직접 벽지를 바르고 장식하고, 지인들 손을 빌려 전등을 달고 천장을 붙였죠."

너무 느린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동네가 원래 그래서 혼자 빨리 할 수 없다며 동네의 흐름에 맞춰 산다고 했다.

요일가게-다 괜찮아

요일가게는 말 그대로 요일마다 열리는 가게와 주인장이 다르다. 영화모임, 핸드메이드공방, 기타모임, 여행모임, 뜨개질가게, 네일아트, 타로가게 등, 다양하다. 청산별곡은 요일가게 매니저이자 월요일 영화모임 사장이기도 하다.

주인장들은 일주일에 하루씩 가게를 열고 청산별곡에게 월세를 낸다. 모임이나 수업을 하기도 하며, 직접 만든 물건을 팔기도 한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핸드메이드공방 주인 둘이 가게에 있었는데, 손님이 없어 한산했지만 조급해하지 않았다.

"경제적인 것보다 소통과 나눔을 중요시 여기는 공간이에요. 약간의 수익이 생기면 그게 재미인 거죠."

아무런 욕심이 없어 보이는 청산별곡에게 요즘 새로운 계획이 생겼다.

"꾸려 놓은 여러 공간에서 수익이 잘 나진 않았지만, 이제는 좀 탄탄하게 다지는 것들을 할 생각이에요. 제가 먹고 살아야지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것들을 지킬 수 있잖아요.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게 기둥을 세우는 일을 하려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손님이 없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청산별곡은 손님이 없으면 여유로워서 좋고, 손님이 오면 반가워서 좋고, 작은 물건이라도 팔아 1000원이라도 생기면 행복하단다. 숨 막힐 듯 빠르고 각박한 도시에서 잠시 벗어나 쉬고 싶다면 청산별곡에게 가보시라.
덧붙이는 글 <시사인천>에 실림
#청산별곡 #배다리 #달이네 #요일가게 #나비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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