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유' 노예된 당신, 건강을 도둑 맞았다

[당신의 식탁이 위태롭다 ⑤] 공장식 축산에 건강할 자유를 빼앗겼다

등록 2015.06.05 18:16수정 2015.06.0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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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례행사처럼 진행되는 구제역, AI 바이러스의 창궐과 살처분은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음에도 한국의 1000만 돼지들의 99.9%가 사육되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실체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5월 7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전국을 뒤흔들었던 구제역 살처분 대란 이후 '진짜 돼지'를 찾아 떠나는 한 가족의 여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영화 제작·배급사인 시네마달이 '당신의 식탁이 위태롭다'란 타이틀로 기획 기사를 보내와 몇 편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진료실에서, 나는 또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체중이 키에 비해 많이 나가시고요,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높습니다. 기름기 많은 음식을 드시지 마세요. 고기! 생선! 계란! 우유나 유제품! 식용유로 튀기거나 볶은 음식들! 채소라도 튀기거나 볶은 거는 좋지 않아요. 관리하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 지내시면, 몇 년 이내에 당뇨병이나 고혈압이 옵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오는 거 상관없으세요?"

그러면, 환자들은 이렇게 답을 한다.

"전부 좋아하는 것만 먹지 말라고 하네, 근데 그런 음식들 빼면 뭘 먹나요? 먹을 게 하나도 없네!"

나는 4년 넘게 이런 상담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내 조언을 귀담아 듣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은 가뭄에 콩 나듯 아주 드물다. 그래도 아주 없진 않으니 보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의문이다. 왜 사람들은 뻔히 건강해지는 길을 놔두고, 계속 불건강 상태에 머물려고 할까? 무엇이 건강해질 수 있는 선택을 방해하는 것일까? 의사로서 나는 끊임없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사람들을 병들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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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한 장면 ⓒ 시네마달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성식품과 식용유 없는 식단을 상상하지 못한다. 학교급식이나 회사급식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언제나 반찬엔 고기나, 생선이나, 달걀이 있고, 기름에 튀기거나 볶은 음식이 없는 날은 거의 없다. 간식은 무조건 우유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식단을 표준식단으로 여기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음식들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건 불과 30~40여 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기간 우리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질병들을 경험하게 된다. 비만,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병, 뇌심혈관질환, 암, 자가면역질환, 선천성 기형, 생식이상 등.

1964년 조사된 한국인들의 평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는 139였다. 요즘 평균이 200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수치다. 현재 콜레스테롤 수치가 130대 이하인 사람은 전체의 3~4%에 불과하다. 한편 1960년대 고혈압 환자의 평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는 154였다. 이는 혈액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150을 넘어가면 혈액이 끈적거리고, 혈관이 딱딱해져서 혈압이 상승하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인의 1/3이 고혈압, 1/3이 고혈압 전 단계, 정상이 1/3에 불과한 상태는 한국인의 평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200까지 상승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국인의 혈중 콜레스테롤을 증가시켰을까? 가장 중요한 요인은 동물성 식품과 식용유 섭취의 급격한 증가다. 이들 식품은 콜레스테롤뿐만 아니라 중성지방과 혈당까지 상승시켜 당뇨를 촉발하고, 과도한 염증과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하기도 한다.

1961년 한국인들은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어패류를 하루에 각각 2g, 7g, 2g만을 먹었다. 하지만 2011년엔 각각의 음식을 40g, 85g, 45g씩 먹고 있다(각각 20배, 12배, 22배). 같은 기간 식용유 섭취량은 1g에서 51g으로 51배 증가했고, 어패류 섭취량은 36g에서 159g으로 4~5배 증가했다.(그림1)

우유와 달걀 섭취량도 각각 4g, 2g에서 30g, 72g으로 8배, 36배 증가했다(UN 농업식량기구) 이런 급격한 변화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축산의 급격한 성장에 의해 촉발됐고, 결국 한국인들을 고기와 식용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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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지난 50년간 동물성식품 섭취량 변화 (출처: UN농업식량기구) ⓒ 이의철


식용유와 고기, 공장식 축산의 양면

공장식 축산에 의해 식용유 섭취가 증가했다는 말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과 식용유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대두를 가공하면 식용유(대두유) 뿐만 아니라 대두박(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도 나오는데, 이 대두박이 가축들의 좋은 단백질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식용유가 생산된 것은 박정희 정부의 축산 장려정책 때문이다. 한국의 첫 대두 가공업체였던 신동방은 1971년 최초의 식용유 '해표식용유'를 내놨고, 동시에 사료업체에 대두박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현재 '해표식용유'를 생산하는 ㈜사조해표는 국내 사료업계 1위인 ㈜카길애그리퓨리나와 전략적 제휴(MOU)를 맺고 있고, '백설식용유'를 생산하는 CJ제일제당도 독자적인 사료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대두 가공업체의 생산량과 매출을 놓고 보면 식용유 제조사들의 주 생산품은 오히려 대두박, 동물사료에 가깝다. 대두 100톤을 가공하면 식용유는 17톤 생산되는 반면, 대두박은 79톤이나 생산된다. 판매가를 감안하더라도 대두박 매출은 식용유 매출의 1.5배 이상이다. 대두박과 식용유의 긴밀한 관계는 1990년 추석을 앞두고 식용유 생산을 줄인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값싼 대두박 수입으로 대두 가공업체들의 대두박 재고량이 보관능력을 훌쩍 뛰어넘어 명절 대목임에도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축산업과 식용유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 한국에서 기름은 참기름, 들기름, 고추씨 기름 등 조미료 용도로만 쓰였다. 지금과 같이 튀기거나 볶는 음식들은 모두 축산업을 위해 생산된 식용유의 결과물이다. 식용유가 없었다면 공장식 축산은 유지될 수 없다. 반대로 공장식 축산이 없으면 이렇게 많은 양의 식용유를 생산하고, 섭취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공장식 축산에 의해 이중으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빼앗긴 건강할 자유

우리는 공장식 축산의 두 결과물, 즉 고기와 식용유의 노예가 됐다. 이 두 가지를 먹지 말라고 하면 사람들은 몸부림치며 얼굴을 찡그린다. 자신의 건강이 나빠지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공장식 축산의 두 결과물을 버리지 못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건강할 자유를 잃어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우리가 고기의 생산 과정을 제대로 모르는 것도 한 몫 한다.

얼마 전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함유된 맛기름 1200톤이 시중에 유통됐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됐다. 이 뉴스보도 이후 나는 식당에서 비빔밥을 주문할 때 기름은 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수 있게 됐다. 이 뉴스 덕분에 나는 벤젠이 섞여 있을지 모르는 기름을 피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고기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고기는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 영양보충, 끊을 수 없는 맛 등으로 포장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고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입까지 오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일상에서 우리는 '동물'이 아니라, 정육점에 진열된 '고기'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최근 개봉한 황윤 감독의 <잡식가족의 딜레마>을 통해, 우리는 고기가 되기 전 가축들의 동물로서의 삶을 지켜볼 수 있게 됐다. 공장식 축산시설 돼지들의 삶과 유기농 축산시설 돼지들의 삶을.

식품첨가물, 불량재료 등 내 입에 들어오는 음식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영화를 놓치지 말길 바란다. 영화를 보고 나면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먹던 고기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필자가 벤젠 맛기름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일반 식당에서 기름이 다르게 보기 시작한 것처럼.

간단히 되찾는 건강할 자유

사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선 동물성식품의 건강문제와 공장식 축산의 윤리적, 환경적 폐해가 알려지면서 1990년대 이후 육류 소비가 감소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육류 소비가 지칠 줄 모르고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 축산업계가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다.

이미 한계에 봉착한 선진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앞으로도 더 쇠고기를 비롯한 육류 소비가 증가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면서도, 육류 섭취를 줄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광우병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의 지극한 고기사랑이 우리의 건강할 자유를 또 다른 차원에서 위협하는 것이다.

건강할 권리를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개인차원에서는 현미밥과 기름기 없는 채소반찬 위주의 식사를 실천하면 된다.(그림2) 그리고 공장식 축산이 고기와 식용유를 무기로 한국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반대활동을 벌여나가면 된다. 한국에서도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계기로 공장식 축산에 대한 반대 운동이 성장하고 있다. 의사로서 나는 이 운동이 우리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와 운동이 너무나 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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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만성질환을 예방하고 되돌리는 <현미채식 평화밥상> ⓒ 이의철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베지닥터 사무국장이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입니다.
#공장식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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