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면 팔수록 손해인 책, 망할 각오한 출판사

[서평] 온 우주를 덮는 어머니의 슬픈 노래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등록 2015.06.08 14:59수정 2015.06.0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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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 세월호 참사 1년 기록 시집>(최봉희 지음 / 레디앙 펴냄 / 2015.06 / 4160원) ⓒ 레디앙

온 우주의 슬픔을 다 합쳐도 자식 잃은 어미의 슬픔만은 못한 법이다.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 함께 한다고 한다.

손자까지 둔 일흔여덟살 노시인이 세월호 참사에서 느낀 슬픔은 결코 제3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단장의 고통이었고 온 우주를 덮을만한 어미의 슬픔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최봉희 시인 자신이 35년 전 5.18 광주학살 때 어머니로서 겪었던 참혹한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트라우마로 인해 최 시인은 세월호 참사를 단순히 '목격한'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겪은' 것이다.

광주에서 겪었던 국가폭력을 맹골수도에서도 보았다. 최 시인이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1년을 기록한 시집의 제목을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로 정한 이유다.

시인은 지난 1년을 자식 잃은 엄마의 심정으로 끙끙 앓았다. 1년 내내 마음이, 때로는 육신까지도 팽목항과 맹골수도, 광화문, 안산을 서성였다.

때로는 이미 하늘나라에 가 있는 아이들을 만나고 와 그 아이들이 전하는 말을 적기도 했다('아이들이 보내는 편지').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으로 쓰는 내내 자주 울었습니다. 거기에 감기가 찾아와서 기침이 심했지만 눕지 못하고 제때 밥도 먹지 못하고 봄이 어디까지 왔다가 시름없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머리말 중에서


눈물에 젖고 흐느낌이 들리는 시집

그의 시에서 피눈물의 흔적이 보이고, 소리죽인 흐느낌이 들리는 이유다.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는 최대한 절제한 언어들이 때때로 날카로운 비수처럼 날아와 여지없이 독자의 가슴을 저미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특히 '동거차도'라는 제목의 시를 읽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울컥하고 말았다.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동거차도는 1.7킬로미터

(...)
수도도 전기도 논도 없는,
미역 뜯고 고구마 먹고 살았다는
두 마을뿐인 동거차도

한 어부의 아내가
어느 날 바다에 나가서
조류에 밀린 오일펜스를 고정시키는 방제 작업 중에
조명탄 낙하산 줄에 걸리고
낙하산 줄이 닻줄에 닿은 지점에서
길 잃은 한 아이를 만나 품에 안고 돌아왔습니다.

아이의 부모가 백만 원 수표와 함께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우리 아이 찾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어느 날 아이의 부모님이
동거차도를 찾아 왔습니다.
"우리 아이 이름으로 마을회관에
거울 하나 걸어주세요."

평생 살아도 이런 난리는 없었다며
동거차도 주민들이 모여
흐느끼며 웅성거렸습니다.

-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동거차도' 중에서

이렇게 최 시인은 모두 57편의 시를 통해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순간부터, 시신 인양, 유가족과 박근혜의 면담(31일째), 노란 띠잇기, 사진전, 재판(135일째), 세월호 특별법(206일째), 유가족 삭발(352일째) 등 지난 1년간의 모든 중요한 사건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연대기로 기록했다. 시 가운데 몇 편은 민간인 잠수요원, 백건우, 프란체스코 교황, 오드리 헵번, 이석태 등 세월호 참사 관련 모든 기억하고 싶은 고마운 인물들에게 바쳐졌다. 나는 민간인 잠수요원을 그린 시 '내 손을 잡아 주겠니'를 읽다가 또 한번 울컥했다.

(...)
수심 37미터
세월호가 무겁게 누워 있는 곳
그가 아이들을 찾으러 갔습니다.

책상다리에 몸이 끼인 아이
친구 손잡고 있는 아이
눈 감고 잠자듯 누워있는 아이
오렌지색 퉁퉁한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아이

얘들아, 널 안고 가려고 내가 왔다
무서운 아저씨는 아니란다
그러니까 내 손 잡아 주겠니

(...)

안산 집에 가자
엄마가 애타게 기다리신다

민간 잠수요원은 혼자 울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내 손을 잡아주겠니' 중에서

또한 노시인의 깊고도 그윽한 눈은 용돈, 노란 리본, 손거울, 십자가와 물병, 편지 등 소소한 물건들에 담긴 의미들을 이리저리 뒤적이고 있다. 예를 들어 시집의 가장 앞에 실린 '나는 보았습니다' 제목의 시 마지막 연은 다음과 같다.

하얀 시트가 깔린 병원 침대 위에 앉아
주머니에서 꺼낸 젖은 돈을 한 장 한 장 펼쳐 놓는
세월호 선장을 나는 보았습니다.
목숨보다 더 귀하고 소중했던 세월호 선장의 건져 낸 돈들이
햇볕에 잘 마르고 있었습니다.
-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나는 보았습니다' 중에서

탐욕에 대한 야유, 가난에 대한 통한

탐욕이야말로 세월호 참사의 가장 큰 원인인지도 모른다. 햇볕에 잘 말라가고 있는 이준석 선장의 돈이 그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선장의 그런 저열한 면모에 간신히 구역질을 참았던 독자는 그러나 똑같은 돈을 주제로 한 '용돈' 이란 시에서 정반대의 감정을 느끼며 또다시 슬픔에 젖게 된다.

아이는 잠자듯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수학여행 갈 때 손에 쥐어 준
2만 원이 전부였으니
그게 너무너무 미안해서 울었습니다.
아이의 젖은 옷에서 꺼낸 지갑에는
두 번 접힌 만 원짜리 두 장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 어떡해요?
그 돈마저도 쓰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용돈' 중에서

유가족을 만나지 않는 박근혜, 노란 리본 금지령을 내린 교육부 등에 대한 시인의 고발은 요란하지 않은 대신 사무친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비탄 속에 빠져 분노와 원망같은 감정으로 우리 스스로를 태워버릴 수는 없다. 노시인은 '연대와 기억'을 그 해결책으로 제안한다. 그의 호소는 참으로 절박하다.

우리는 침몰하지 않았습니다.
결코 잊은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유가족과 함께 하겠습니다.
-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침몰하는 세월호' 중에서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으니
떠났던 그날 4월 16일이 그대로라네

(...)

오늘이 11월 4일이 아니고
203번째 4월 16일이라네

아빠 엄마는 늙어가도
아이는 열일곱살 고등학교 2학년 그대로라네

세상이 달라진 게 없으니
4월 16일 그대로라네
-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그날 이후' 중에서

노시인은 이 연대와 기억의 작업마저도 엄마의 마음으로 엄마에게 호소하는 방식으로 이루고자 한다. '세상의 엄마들에게'란 시다.

아이를 잃고 나서야 알았는 걸요

자주 안아줄 걸
긴 머리칼 자주 빗질해 줄 걸
자주 웃어줄 걸

계절이 세 번이나 지나갔어도
엄마는 그 봄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이의 죽음을 알고자
천방지축 길에 나서서 서명을 받고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합니다.

(...)
잊지 말아 달라고
애끓는 심정으로 호소합니다.
-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세상의 엄마들에게' 중에서

기억과 연대만이 유일한 희망의 끈, 해원(解寃)

그렇다면 그 기억과 연대를 통해 우리는 희망의 끈을 잡을 수 있을까. 시인은 57번째 마지막 시 '다시 팽목항'에서 이렇게 읊는다. 2015년 4월 16일에 쓴 시다.

(...)
산과 들에는 노란 유채꽃
팽목항에도 다시 봄은 온다

(...)
넓은 하늘에서는 노란 풍선이 날아오른다
사람들이 가쁜 숨을 몰아넣은 노란 풍선

그 안에 우리들의 숨결이 있어
내 눈물 한 방울도 하늘의 빗물 한 방울도
내일이 있어 팽목항의 노란 풍선은 날아오른다

저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다시 팽목항에서' 중에서

시인의 희망은 결코 화려한 무지개빛깔의 행복인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분함과 억울함과 짓눌림으로부터의 해방인 듯하다. '해원(解寃)'이다.

이 시집의 가격은 4160원이라고 한다. 가격이 너무 낮아서 팔리면 팔릴 수록 출판사가 손해가 난다고 한다. 출판사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사 읽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 세월호 참사 1년 기록 시집>(최봉희 지음 / 레디앙 펴냄 / 2015.06 / 4160원)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 세월호 참사 1년 기록 시집

최봉희 지음,
레디앙, 2015


#최봉희 #세월호 #5.18 엄마 #4.16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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