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는 자기 수양, 완숙미가 빛나는 예술"

[인터뷰] 서예가 신현진

등록 2015.06.10 17:31수정 2015.06.1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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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구 삼산동에 있는 후정초등학교 후관 2층 서예반에는 매주 화요일 묵향과 정담, 그리고 긴장감이 흐른다. 서예를 함께하는 벗들이 모여서다. 서예교실이 열린 지난 2일 학교를 방문했다. 서예교실의 이름은 '서예사랑회'이다. 후정초교에 다니는 자녀를 두고 있는 학부모뿐만 아니라 부평구민, 인천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이 서예교실의 지도교사 운산 신현진(64ㆍ사진) 선생을 수업 시작 전 만났다.


퇴직한 학교서 계속 근무하는 교감선생님

신현진 서예가 ⓒ 김영숙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후정초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했어요. 학교마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학부모들의 요구가 있는 컴퓨터ㆍ에어로빅 등,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해봤는데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당시 최영화 교장께서 제가 서예를 좀 한다는 걸 알고 계셨는데, '평생교육으로 서예반을 만들면 어떠냐?'고 제안하셨죠. 그래서 2008년 처음 만들었습니다."

그때 시작해 지금까지 7년째 서예사랑회를 운영하고 있다. 신 선생은 2010년 이 학교에서 정년퇴임했다. 그 후 두 차례 교장이 바뀌었지만, 부임한 교장들은 신 선생에게 서예교실을 계속 운영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교장의 지원이 없으면 교실 운영이 어렵죠. 참여하시는 학부모들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학교의 관심이 없으면 지속하기 힘듭니다. 서예가 교육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좋은 걸 알지만 학교에서 지원하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 학교는 계속 유지하고 있죠."

교장과 학교의 지원 덕분이라고 공을 돌리지만 신 선생의 재능기부가 없으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 선생은 현재 서울 관악구에 거주한다. 매주 화요일 4시간을 가르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 온다. 교통비도 되지 않는 강사료를 받지만 회원들의 열정을 외면할 수 없단다.


"처음에는 몇 명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회원이 두 배로 늘었어요. 특히 어머니들 실력이 대단합니다. 얼마 전 열린 11회 인천시서예전람회(이하 인천시전)에서 특선과 입선에 입상하신 분이 많아요. 우리 모임 회장님은 초대작가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들이 학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치기도

초등학교에서는 방과후 수업이나 정규 교과과정에 학교 재량으로 서예수업을 한다. 후정초교에서는 서예사랑회 회원들이 서예수업 교사로 나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엄마들이 가르치니까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3학년부터 6학년까지 가르쳤는데 이번 학기에는 3ㆍ4학년만 수업이 있었어요. 전국에서 이런 학교는 없을 겁니다."

후정초교는 교실 한 칸에 서예반을 만들었다. 이 서예반 책상 위에는 종이ㆍ붓ㆍ벼루ㆍ먹 등 문방사우가 구비돼있다. 서예수업을 할 때 해당 반 담임이 참관하기도 하는데, 아이들이나 교사의 만족도가 높단다. 수업을 진행하는 어머니들도 새로운 경험을 좋아한다.

"서예는 정서교육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아이들이 서예수업 두 시간을 지루해하지 않고 열심히 합니다. 다른 수업을 그 시간 동안 계속하면 그렇게 집중하긴 어렵죠. 서예가 단순히 글씨를 쓰는 걸 떠나 집중력을 길러 다른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걸 느꼈어요. 특히 다른 학교는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수업을 진행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지만, 우리는 서예반이 있어 훨씬 수월합니다."

취미생활로 시작해 한국서가협회 이사 되다

자유롭게 붓글씨를 쓰거나 이야기기를 나누는 서예사랑회 회원들. ⓒ 김영숙


전북 전주가 교향인 신 선생은 전북 진안군 조림초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 인천으로 전근해 송월ㆍ주안ㆍ동수ㆍ부개초교를 거쳐 후정초교에서 정년퇴임했다.

"교직에 있으면서 서예를 배웠어요. 그 때는 대부분의 교사가 서예를 배웠는데 제 성격에 맞는 것 같아 계속 배웠죠. 그 후 대한민국공무원미술대전에서 금상을 받고 1995년께 국전초대작가가 됐습니다."

집에 서실이 따로 있어 매일 새벽에 일어나 두서너 시간씩 붓글씨를 쓴다는 신 선생은 대한민국서예전람회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기도 했고, 현재 한국서가협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여러 서예전의 심사를 맡기도 하며 지역 서예전에 초대작가로 출품하기도 한다.

신 선생이 서예를 배울 때에는 학교마다 서예부가 있었고,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도 꽤 됐다. 그러나 요즘은 누구나 서예의 장점을 알고 있지만, 학력 위주의 교육에 밀려 학생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신 선생은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정책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아직까지 서예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지난 3월에 국회에서 '서예 진흥 정책포럼'이 열렸다. 서예 진흥을 위해, 서예인의 저변 확대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자리였는데, 이날 포럼엔 서단(書壇)의 원로ㆍ중진작가들 100여명이 참석했고, 신 선생도 한국서가협회 이사로 초대받아 함께했다.

서예는 자기수양 과정, 완숙미가 빛나는 예술

인터뷰 도중 서예교실 수강생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오전 10시부터 수업을 시작하는데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먹을 갈거나 차를 마셨다. 조용히 붓글씨를 쓰는 회원도 있었다.

사람들이 계속 교실에 들어왔고, 인천시전 문인화 부문에서 특선 입상한 한 회원이 빵을 사와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간식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신 선생과 인연을 맺은 다양한 사연을 들었다.

신 선생이 주안초교에서 서예반을 운영하고 있을 때 배웠다는 한 회원은 지금은 방과후 서예교실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회원은 당시 학부모회 회장이었고, 아들이 3학년이었는데 신 선생이 담임이었다. 그 아들의 나이는 지금 서른이다. 주안초교에서 동료교사로서 서예를 배웠다는 또 다른 회원은 이번 인천시전에서 특선을 했다. 현재는 신 선생에게서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신 선생은 한결같은 분'이라고 강조했다.

간식을 먹으며 둘러 있는 이들에게 서예의 매력을 물으니, 사방에서 한마디씩 보탰다.
'인내심을 키워준다. 자기 수양이 된다. 서예가 지루할 수도 있지만 고비를 넘기면 계속 하게 된다. 다른 예술은 젊어서 순발력을 필요로 하지만 서예는 완숙미가 더 중요하다. 서예는 성경구절, 공자 말씀, 부처님 말씀 등 좋은 글귀를 많이 쓰는데 그런 것들이 정서에 도움이 된다. 서예를 하면 인성이 좋아진다. 험한 말을 함부로 하지 않게 된다' 등 끝이 없었다.

오는 7월, 북경에서 한·중 교류전 열려

"2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한ㆍ중 서예교류전을 엽니다. 올해는 7월에 북경에서 열리는데 저도 참석합니다. 한국서가협회 초대작가 60명과 중국 국보급 작가 60명이 참가하는데, 저명인사가 대거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교류전입니다."

서예사랑회 회원들이 쓰고 있는 글씨를 보니 궁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글씨체 외에 캘리그라피까지 있다. 신 선생은 회원들의 수준과 요구에 맞게 과외처럼 개별 지도하고 있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통 서예만 하면 지루함을 느끼고 고정관념에 얽매일 수 있어 다양한 시도를 한다고 했다. 원하는 답은 아니었지만, 그의 열정에 새삼 고개를 끄덕였다.
덧붙이는 글 <시사인천>에 실림
#신현진 #서예사랑회 #후정초 #한국서가협회 #평생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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