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일터는 신호등 아래입니다

[인터뷰] 스페인 아프리카 이민자 하워드 잭슨

등록 2015.06.26 12:14수정 2015.06.2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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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멜리야의 철책을 넘는 아프리카 이민자들과 경찰의 대치, 최근 충격을 준 여행가방 안의 밀입국 아프리카 소년 이야기까지... '유러피언 드림'을 안고 오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나마 이민자들에게 관대하다고 알려진 스페인도 자국 살림살이가 나빠지다보니 이민자들에 대한 민심도, 정책도 날이 갈수록 엄격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곳에 살고 있는 이민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여전히 도심의 온도가 뜨겁던 지난 11일 오후, 버스터미널 옆 신호등 아래에서 그의 나라를 떠난 지 20여년, 스페인 세비야에 머문 지 18년이 된 아프리카 이민자 하워드 잭슨(36, 남)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와 나눈 인터뷰 내용을 그의 시각으로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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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는 매일 아침, 오후 신호등아래에서 꿈을 꾼다. ⓒ 홍은


오늘도 나는 이른 아침부터 횡단보도 신호등 옆에 섭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우스꽝스러울지 모르는 복장을 한 뒤 바구니에는 언제나처럼 휴지를 한가득 담았습니다. 이윽고 빨간불이 들어오고 달려오던 차들이 횡단보도 앞에 멈춰서는 순간이 내가 일을 하는 시간입니다.

"좋은 아침이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난 차 유리창 사이로 보이는 운전자들을 향해 휴지를 흔들며 인사합니다. 이렇게 나는 18년째 이곳에 서서 휴지를 팔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북서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 라이베리아가 내 나라입니다. '자유의 땅'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오랫동안 전쟁으로 고통을 받고 있죠.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저는 열여섯 살 때인 1994년, 어떻게든 살기 위해 내 나라를 떠나야 했습니다. 어디로 갈지, 어떤 삶을 살지 계획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16살의 소년이 뭘 알았겠어요. 그냥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뒤 비행기를 제외한 모든 교통수단을 다 이용해 내 나라에서 나왔습니다.  걷기도 하고, 차를 얻어 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머물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몇 달 일을 하고 지내다가, 또 떠나고 그렇게 2년 넘는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며 알제리에 도착했습니다.


리알제는 유럽 땅을 밟으려는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죠. 그런 만큼 그곳의 단속은 심했습니다. 따라서 매일 매일 들키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일이었지요. 농장 같은 곳에서 일을 하면 주인이 일하는 동안 숨겨주곤 했지만 항상 불안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8개월을 그렇게 지내다가 스페인 멜리야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내 나라를 떠난 지 3년이 지난 후였어요.

3년을 떠돌다가 세비야에 정착... 휴지 팔며 생활

요즘은 멜리야의 높은 철책을 넘는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만 내가 멜리야에 왔던 때만 해도 스페인은 이민자에게 관대했어요. 특히 정치적 문제로 자신의 나라를 떠나야 했던 난민들은 보호 대상이었지요.

멜리야 국경에 도착하면 나 같은 어린 아프리카인들은 무조건 쓰러지는 척을 합니다. 왜냐고요? 그러면 스페인 경찰들이 달려와 병원에 데리고 가고 돌봐주지요. 그곳엔 구호단체들도 많이 나와 있어서, 당장 서류문제 등을 해결해주었지요.

나는 운 좋게 멜리야에 있은 지 3주 정도 만에 세비야로 보내졌어요. 처음으로 어딘가에 정착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3개월 정도 나를 돌보아주던 곳에서 언어프로그램도 받고, 숙식을 제공받았지만 언제까지나 보호 받을 수는 없었죠. 스스로 살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신호등 앞에서 잡지를 팔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잡지는 2주에 한 번씩 나오는 것이었고, 한 번 산 사람은 다시 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휴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휴지는 있어도 또 사고, 매일매일 필요한 것이니까요.

처음부터 이렇게 분장을 하고 휴지를 판 건 아니에요. 이렇게 분장을 시작한 지는 10년 정도 되었어요. 2004년 겨울이었나? 신호등에 멈춰선 차에 타고 있던 여자 분이 '동방박사 축제(1월 6일 열리는 가장 행렬 축제)' 때 동방박사 분장 아르바이트를 제안했어요. 저야 돈 되는 일이면 뭐든 다 하는 때였으니 좋다고 했죠.

처음 동방박사 분장을 하고 가장 행렬에 나가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제 살을 만져보고 검은색을 칠한 사람이 아닌 진짜 동방박사라고 신기해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일 이후로 가족파티나, 행사에서 분장 일을 가끔 했고, 그러다 복장을 사서 입고 휴지를 팔아보자고 생각했죠. 그 덕에 본의 아니게 조금 유명해지기도 했죠. 그만큼 사람들이 좋아해 줬고 나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지요.

누구에게 의지하는 삶, 결국 남는 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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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간 한 번도 그의 손을 떠난 적이 없는 휴지 ⓒ 홍은


2년 전부터 대학교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대학에 들어가기 전 3년 동안은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을 갖추는 공부를 해야 했고요. 휴지를 팔아서 대학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겠냐고 많은 이들이 물어봐요. 물론 쉽지 않아요. 1년 내내 휴지를 팔고 버는 돈은 700~800유로 정도예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버려진 집에 운 좋게 들어가 살고 있는 거라 집세가 들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지요.

모은 돈에서 가능한 만큼 수업을 등록해요. 다른 단체나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누구에게 의지하자는 마음을 버린 지 오래예요. 처음에는 저도 누군가 저를 도와주기를, 왜 도와주지 않나 불평도 했지요. 하지만 누구에 의지한 삶은 결국 그것이 없어지면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천천히 가도 저 자신에게 의지하며 가야 한다고 생각하죠.

왜 법학이냐고요? 사실은 아버지의 꿈이었어요. 언제나 저에게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라고 하셨죠. 나라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어요. 쉽지 않겠지만 그 시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억에 남는 분 중에 시내에서 약국을 운영하시던 약사 분이 있는데, 제가 힘들어 보일 때 어머니처럼 챙겨주시고, 가끔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주시기도 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한동안 신호등에서 뵐 수가 없었어요. 한참이 지난 후 전화가 왔더라고요. 경제적으로 힘들어져서 약국 문을 닫았다고, 더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고요.

신호등 아래 삶은 쉽게 끝나지 않을 거예요. 공부를 시작한 뒤엔 내 삶이 많이 바뀐 것 같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오늘도 이렇게 신호등 아래 있어요. 오히려 이 전보다 이곳에서 휴지를 파는 일이 쉽지 않기도 해요. 다들 힘들잖아요. 이민자들에 대한 시선도 예전 같지 않고요.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20년 전 16살의 겁 많고, 어리던 하워드가 지금 독립적이고 마음이 튼튼한 30대 중반의 하워드가 되었다는 거예요. 내 삶을 쓰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내가 내 삶의 결론을 슬픔으로 마무리할 수는 없잖아요. 언제나처럼 지금까지 잘 살아온 나에게 스스로 박수를 보내면서 오늘도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을 뿐이죠.

최근에 아프리카 소년이 가방 안에 숨은 채 밀입국을 시도한 일에 대해 사람들은 많이 놀라지만 사실 비일비재한 일이에요. 가방뿐인가요? 자동차 모터 아래 숨어서 오기도 하죠. 정말 위험한 일이에요. 하지만 아마 제 2, 3의 가방 속 아이들은 계속 나올 거예요. 멜리야의 철조망이 높아질수록 그 벽을 넘으려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더 많아질 거예요. 왜냐고요? 아프리카와 유럽이 갖고 있는 가능성은 다르니까요. 그 차이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유럽 땅을 향한, 생사를 건 도박은 계속 될 거예요. 슬픈 일이지만 현실이에요.

하워드는 다시 신호등 아래 섰다. 지나가는 차를 향해 인사를 하고, 휴지를 흔들어 보였다. 그는 말했다. 자신의 진정한 꿈은 평화로운 일상을 사는 것이라고…. 자신의 땅을 떠나온 지 20년, 여전히 계속되는 그의 살기 위한 전쟁은 과연 누구의 탓일까.

○ 편집ㅣ최유진 기자

#이민자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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