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압력 논란 낳은 박 대통령 주변 'A4 용지'

홍보수석 <국민일보>에 "이게 기사 되냐"...언론노조 "광고 탄압"

등록 2015.06.20 17:24수정 2015.06.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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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병실 의료진과 통화하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서울대병원 메르스 치료 격리병동을 방문, 의료진과 통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에 비판적인 기사를 쓴 <국민일보>에 청와대가 불만을 표시했고, 이어 <국민일보>에만 정부 일간지 광고를 집행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언론노조는 언론탄압으로 규정하고 적극 대응에 나섰고,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반박 기사로 비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국민일보·CTS지부에 따르면, 지난 16일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박현동 국민일보 편집국장과 김영석 정치부장 등에게 전화해 박 대통령의 메르스 대응 현장을 다룬 기사에 항의했다. '그게 기사가 되느냐'고 따지는 김 수석에게 박 국장은 '기사가 되고 안 되고는 언론사가 판단한다'고 답했고, 김 수석은 '국장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박 대통령이 서울대병원을 방문해 메르스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를 전화로 격려하고 병원 이곳 저곳을 돌아봤는데 이를 보도한 사진과 영상엔 병원 곳곳에 궁서체로 '살려야 한다'고 적힌 A4 용지가 붙어 있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비장한 문구가 병원 곳곳에 적혀 있고 이 장면이 적극적으로 보도된 게 청와대의 연출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을 수정가공해 정부의 메르스 대응 실책을 비판하는 패러디물도 쏟아졌다.

김 수석이 문제삼은 건 이 같은 상황을 모아 지난 16일 인터넷판에 실은 「'살려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뒤편에 A4용지!」 기사다. 이 기사는 비판 내용뿐 아니라 'A4용지는 청와대가 붙인 게 아니라 원래부터 병원에 붙어 있던 것 일 수도 있다'는 누리꾼의 의견도 소개했다. 기사 게재 뒤 'A4 용지는 6월초 의료진이 자발적으로 붙인 것'이라는 서울대병원측의 해명도 추가로 전달했다.

이 같은 기사 내용에 김 수석이 항의를 전달한 뒤 광고 배제 사태가 일어났다. 지난 19일자 전국일간지 1면에는 보건복지부·국민안전처·문화체육관광부의 메르스 대응 광고가 실렸는데 유독 국민일보에만 이 광고가 실리지 않았다. 국민일보는 지난 10~11일의 1차 메르스 대응 광고는 다른 일간지와 마찬가지로 광고를 받았지만 이번 광고에서는 빠진 것이다. 

이를 처음 보도한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정부광고를 대행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일보 광고 배제 방침이 전해진 건 지난 18일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민일보 광고 배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시민들에게 메르스 관련 대책을 알리기 위해 예산으로 집행하는 정부 광고에서 한 언론사가 배제됐고, 박 대통령에 비판적인 기사에 대해 청와대가 항의한 직후란 점에서 보복성 광고 배제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9일 <미디어오늘> 홈페이지. ⓒ 미디어오늘


전국언론노조 "70~80년대 광고탄압 재연"...작성 기자 "이건 기사가 된다"

김 수석은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해당 기사를 쓴 기자와 언론노조 등은 비판 언론에 대한 광고 탄압으로 규정하고 강력대응을 천명했다.

전국언론노조는 19일 낸 성명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이 편집국에 항의 전화 → 사전에 예정됐던 정부 집행 광고의 취소 → 담당 관계 기관 '우리는 아무 힘이 없다' 발뺌,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으냐"며 "1970~1980년대 비판적인 기사에 대한 광고 탄압이 아니고 뭔가"라고 꼬집었다.

언론노조는 ▲언론재단이 광고 배제 과정을 소상히 밝힐 것 ▲김성우 수석이 국민일보 보도국장에게 전화한 이유, 누군가의 지시 때문인지 본인의 판단인지, 평소에도 언론사 편집국장에게 기사 관련 전화를 하는지 등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또 청와대를 향해 "국민들 사이에 온갖 괴담은 물론 심지어 '메르스 퇴치' 부적까지 돌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서 왔다고 보느냐"며 "정부 잘못은 없다고 보느냐. 틀어막느냐고 될 문제냐"고 물었다.

언론노조 국민일보·CTS지부도 같은 날 낸 성명에서 "국민일보 독자들은 메르스 감염이 의심돼도 신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냐"며 "메르스 바이러스를 제대로 콘트롤하는데 실패한 정부와 청와대가 이를 비판하는 언론과 국민에게는 왜 이리 '갑'질을 하려 하는지 우스꽝스럽다"고 비판했다.

김 수석 항의의 대상이 된 기사를 쓴 기자도 나섰다. 국민일보에서 '페북지기 초이스'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이슈 기사를 쓰고 있는 김상기 기자는 20일 "김 수석님은 '기사가 되냐'고 하셨다고 하셨다죠? 저는 기사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반박문을 기사로 출고했다.

김 기자는 인터넷이 중요한 뉴스원이자 소비시장이 되었음을 상기시키면서 박 대통령의 서울대병원 방문 뒤 '살려야 한다'는 문구로 누리꾼들 사이에 논란이 컸고, 수많은 패러디물이 등장했다는 점, 또 '의료진이 붙였다'는 서울대병원의 해명을 전달한 점을 강조했다.

김 기자는 "박 대통령이 메르스 행보를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인터넷 여론을 교정하는데 나름 일조했다고 자부한다"며 "앞으로도 이런 의혹들이 있으면 시비를 가리지 않을 수 없다"고 각오를 밝혔다.

20일 <국민일보>가 '기사가 되느냐'는 청와대의 항의에 반박하는 기사를 인터넷판에 게재했다. ⓒ 국민일보



○ 편집ㅣ이준호 기자

#공고탄압 #살려야한다 #홍보수석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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