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너무 솔직해서 놀랐죠"

청와대 전 대변인이 말하는 글쓰기와 그의 인생

등록 2015.06.21 18:48수정 2015.06.2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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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작가 신촌의 한 카페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 최정균


지난 6월 20일 토요일. 젊은이들의 거리 신촌은 시험이 끝난 대학생들의 해방감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자유를 만끽하는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신촌의 한 카페 안은 사뭇 진지한 분위기를 띄었다. 고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약 30여명의 청중들이, 이제는 책의 저자가 되어 대중 앞에 나타난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경청하고 있었다. 참여정부의 일기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참여정부 4년(윤 전 대변인은 참여 정부 임기가 끝나기 1년 전 청와대에서 물러났다.)을 낱낱이 기록했던 윤 전 대변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이 됐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986년에 졸업을 하고 결혼도 하고 했는데, 학생운동 전력으로 취직도 잘 안 되고 정말로 할 일이 없었어요."

학생운동을 했던 전력으로 취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1988년 총선에서 야당이 대승을 거두면서 18년 만에 부활한 국정감사 제도와 대규모 보좌진 충원 덕분에 야당 의원의 보좌진으로 들어가게 됐다. 윤 전 대변인의 제도권 정치인생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때가 노무현 전 대통령, 이해찬 전 총리 등이 초선 의원으로 국회에 들어왔을 때에요. 유시민 전 장관, 안희정 지사도 저처럼 보좌진으로 들어왔고요. 저는 그때 다른 의원의 비서로 들어갔다가 당시 노 의원님이 국회 대정부 질문 하는 것을 보고 너무 멋있어서 참 부러웠죠. 문화 충격이기도 하고 ..."

윤태영이 전하는 초선의원 노무현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제가 그 방에 있는 보좌진 친구와 차를 마시고 있는데 노 의원님이 오더니 다짜고짜 그 친구에게 욕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더 놀란 건 그 친구도 노 의원님에게 욕을 하면서 맞받더라는 거죠. (웃음) 나중에 알고 보니 부산 사람들이 얘기할 때 조금 격하게 얘기하면 욕하는 것처럼 들려서 제가 좀 오해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만큼 의원과 비서 간에 격의 없이 지내는 사이였던 거죠 … 그래서 사실 그 방에서 정말로 노 의원님과 함께 일하고 싶었어요."

윤 전 대변인은 미소 띤 얼굴로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노무현 의원실의 자유로운 분위기, 국회의원과 비서가 서로 거리낌 없이 논쟁할 수 있고, 친구같이 지낼 수 있는 분위기가 정말 부러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슴 한편에 노 전 대통령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음에도 결국 함께 하지 못했던 그는 어떤 인연으로 참여정부의 대변인까지 되었을까? 그 인연의 중심에는 '글쓰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의원 보좌진 하다가, 당직으로 갔다가 정치 4년을 딱 해보니까 정치랑 성향이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단 여기서 철수하자라고 생각했고 다른 길을 모색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당시 영업부장으로 출판사에 가있던 안희정 현 충남지사의 권유로 출판사에 입사하게 되었죠."

그렇게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출판사에, 한 사람은 여전히 정치권에 남아있게 되면서 이제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을 다시 이어준 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였다.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던 윤 전 대변인에게 자신을 출판사로 끌어들여놓고 입사하자마자 퇴사해 다른 곳(노 의원이 꾸린 지방자치 연구소)으로 자리를 옮긴 안희정 현 충남도지사는 "노 의원님 책을 내면 잘 팔릴 거 같지 않아?"라는 권유를 해왔다.

윤 전 대변인의 출판사는 노 전 대통령 첫 번째 에세이(<여보, 나좀 도와줘>)를 쓰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비록 윤 전 대변인이 몸담은 출판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에세이를 출판한다고는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투입되어 있던 작가가 정치권 이야기를 쓰는 데 한계를 느껴 정치권 경험이 있고 글을 쓸 줄 알았던 윤 전 대변인이 대타로 투입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그때부터 구술을 받기 위해 일주일 이상 지속적인 만남이 이어졌고, 굉장히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었다.

"(구술을 받으면서 느낀 점을) 지금 와서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너무 솔직해서 좋았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그때 받은 충격은 대단했어요. 왜냐면 다른 정치인들이 보여주던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그거는. 자신의 치부, 자신의 잘못을 거기다 다 풀어놓으시더라고요. …(중략)… 저도 돌아가실 때까지 그 연구를 많이 했는데 그게 정말로 왜 그렇게 솔직한 걸까? 왜 꼭 솔직해야 되는 걸까? 그게 의도적인 게 아니라 천성인 거 같아요, 천성. 머뭇거림 없는 솔직함."

서로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둘은 그렇게 '글쓰기'를 매개로 다시 만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더욱 서로를 잘 이해하며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이제 노 전 대통령은 선거 카피, 칼럼 원고 등 '글을 쓰는 일'이 있을 때마다 윤 전 대변인에게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윤태영은 바로 그때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이 사랑으로 바뀐 때라고 말했다. 그리고 둘이 본격적인 '동업자'가 된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노 전 대통령에게 칼럼 원고를 보내고 노 전 대통령이 어떤 원고를 채택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폈던 윤 전 대변인은, 덕분에 노 전 대통령이 어떤 글들을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더욱더 잘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생각에 대한 윤태영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쓴 그의 글들은 이후 노 전 대통령 대선캠프로부터 함께할 것을 요청 받는 데 까지 이어졌고, 2002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그를 참여 정부의 첫 청와대 연설 비서관으로 갈 수 있게 만들어 줬다

1988년 총선 결과 함께 국회에 들어온 재야의 초선 의원과 학생운동 출신 보좌진이 이제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다. 이는 두 사람이 캠프에서 함께 일한 지 2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첫 만남 이후 14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결국 둘은 함께 하게 되었다.

"리더 옆에는 항상 글을 쓰는 사람이 있어야 되요. 글을 쓰는 사람은 굉장히 성공에 유리한 기술입니다. 높은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고요. 왜냐면 리더에겐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정리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리더의 생각과 살아온 궤적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해요."

윤 전 대변인이 글쓰기를 강조하는 것은 세속적이지만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의 인생은 '글을 쓰는 기술'이 어떻게 그가 원하는 것을 이뤄줬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가 원했던 것은 큰 부귀영화나 명예는 아니었지만 '저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어떻게 보면 물질적인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을 원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글쓰기' 능력 덕분에 본인이 너무나도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그것도 우리나라에 상관으로 모실 수 있는 가장 높은 사람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었다.

윤 전 대변인의 '글쓰기' 능력은 그에게 남들보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게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 속에서 '글을 쓰는 능력'은 결코 과소 평가 되어서는 안 될 능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글쓰기를 '강력하고도 유리한 기술'이라고 말한 것 역시 결코 과장되지 않은 말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일기조차 쓰지 않고, SNS에 쓰는 한 두 줄의 짧은 감상,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를 쓰는 것이 평생 글쓰기의 전부가 되어버린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윤 전 대변인의 인생과 함께한 글쓰기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윤태영 #글쓰기 #청와대 대변인 #바보, 산을 옮기다 #노무현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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