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고래사냥'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

등록 2015.06.26 18:53수정 2015.06.2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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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은 지금 '고래'를 절절이 그리워하고 있다. 8․15 광복 70주년을 맞아 다들 새로운 다짐과 각오로 들떠 있을 이즈음, (우리 국민은 마치 그것이 메르스를 치유하는 비방이기라도 한 것처럼) 왜 하필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애써 읊조리고 있는 것일까. 나 역시 한때 목 터져라 부르곤 했던 이 노래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가 창안해낸 참혹한 긴급 조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특출했다. 무엇이 언짢았던지 이런 노래마저 금지곡으로 결박해버릴 정도로, 아버지 박 대통령의 위기 관리 능력은 거의 초인적이었다. 따님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빼어난 경지였다. 어쨌든 그 아버지의 탁월한 역량에 대한 그리움(?) 탓인지, '조그맣고 예쁜 고래 한 마리'를 향한 우리 국민의 소박한 그리움 또한 시들지 않는다. 역사의 퇴행 덕분일 것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등장 이후 대형 위기가 연례 행사처럼 자리 잡았다. 그런 탓에 내년에는 또 무슨 사건이 터질까, 모든 국민이 미리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러나 이 정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세계를 향해 낯을 들지 못하게 만드는 치욕적인 단골 위기를 자초 또는 방기하는 일밖에 없는 듯하다. 그것도 연속 안타요, 줄줄이 사탕이다. 출중한 이 노래 가사처럼, 이러한 박근혜 대통령의 선천적 무능함은 결국 국민의 가슴에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하나가득 슬픔"만 안겨줄 따름이다.

세월호 동란을 겪으면서 우리 국민 모두는 이순신 장군이라 해도 의당 기절초풍했을 정도로 혼비백산했다. 하지만 아직도 채 진정되지 않아 숨을 헉헉거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또 메르스다. 쉴 틈이 없다. 살다보면 물론 극심한 천재지변도 터져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의 하나는 위기로부터 가장 신속하고 가장 철저하게 국민을 안전 지대로 이끄는 일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 메르스 사태에 임해 가장 느리고 가장 미진하게 대처했을 뿐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밀 주의로 일관하기까지 했으니.

박근혜 대통령은 "내 사전에는 위기 관리나 리더십이란 말은 없다"고 선언한지 오래인 듯하다. 위기 관리 능력과 확고한 리더십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길이 막막하다. 사막에서 바늘 찾는 일이 더 쉬울 것 같다. 하기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근본적이고도 엄중한 과업에 눈감은 듯 보일 정도니 어쩌겠는가.

하지만 우리 국민은 위대하다. 역사적으로 하도 통탄스러운 일과 쉴새 없이 맞닥뜨려온 당당한 경륜을 지니고 있는 탓에,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이 노래 가사처럼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잃는다 해도" 결코 꿈을 저버리지는 않는다. 급기야 우리 국민은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를 찾기 위한 '고래사냥'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보다 정직하게 말하면, 한갓 동물에게라도 기대 살지 않으면 제대로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시대의 속죄양으로 내몰림 당한 탓이다. 요컨대 고래가 이제 우리 국민으로 하여금 울분을 삼켜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거대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것도 보통 고래가 아니라,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가 바야흐로 우리 국민의 아픔을 치유해줄 이상적 존재로 기림 받게 된 것이다. 우리 국민은 현재 한 마리 동물을 이런 식으로 미화하고 숭상하기까지 해가며, 장밋빛 장래를 굳건히 기약하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나가는 이런 면모가 바로 우리 국민의 위대함인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가 전한다. 어느 날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 셋이 모여 앉아 함께 무엇을 할까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오랜 갑론을박 끝에 이윽고 같이 아프리카 오지 탐험에 나서기로 합의를 보았다. 날을 잡아 출발했다. 그러나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원주민에게 달랑 붙잡히고 말았다. 그 아프리카 토인은 "너희들의 피부를 벗겨 카누를 만들겠다"고 설쳐댔다. 그러자 일본인과 중국인은 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조용히 가자며 약을 찾아 먹고는 소리도 없이 뻗어버렸다.

그러나 우리 '위대한' 한국인은 호주머니를 뒤지더니 집게 칼을 하나 찾아내어서는 피부를 난자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상하게 여긴 흑인이 뭐 하냐고 물었더니, 우리 자랑스러운 한국인 왈, "너희들이 카누를 만들면 펑크를 내겠다"고 을러대더란다. 그런데 이처럼 위대한 국민과 무능한 국가가 현재 서로 대치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괄목할만한 고전 이론에 따르면, 통치자가 국민의 생명, 자유, 재산의 보호라는 근본 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때라야 그에 대해 국민이 복종할 의무를 지닌다는 계약을 국민과 상호 체결함으로써 근대 국가의 성립이 비로소 가능해진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만일 지배자가 이러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당연히 계약 위반으로 규탄 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경우 그러한 지배자에 대한 저항이 국민의 정당한 권리로 옹호됨은 당연한 일이다. 예컨대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사상가 존 로크는 300여 년 전 이미 이러한 저항권을 '하늘에 대한 호소'라 규정할 정도로 절대시하기까지 했다.

오늘날의 한국 현실을 이러한 존 로크 식 논리에 대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메르스 사태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인 30% 대 이하로 곤두박질쳤다고 한다. 심지어는 어느 여당 인사조차,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해야지,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해서야 되겠느냐"고 일침을 가할 정도다.

또 어느 네티즌은 박근혜 대통령이 어디에선가 늘어놓은 적이 있는 "손 씻기만 잘하면 메르스 안 걸린다"는 언질이야말로 가히 '노벨상 감 학설'이라고 빈정대기까지 할 정도다. 탄저균 한국 반입 사태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만일 존 로크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도, 이러한 극적인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관련된 현재 집권 세력의 여러 정치적 실책들을 국민과의 계약 위반으로 규탄할 소지가 굉장히 높을 것처럼 여겨진다.

하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나 국민의 실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번도 손에 물을 묻힐 필요도 없는 청와대에서, 그것도 굉장히 오랜 기간에 걸쳐 오로지 복된 생활만 영위해왔기 때문에, 어이 서민의 아픔을 털끝만큼이라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일반 국민들이 터뜨리는 볼멘 소리다.

국민과의 이러한 선천적인 위화감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과의 소통이 어떻게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이 정도는 초등학생만 되어도 쉽사리 눈치 챌 수 있을 수준이다. 그러나 남의 일 같지 않아 보이는 까닭에, 너무나 식상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이 기회에 한 줄 더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먹을 게 없어 굶주림에 떠는 백성들을 향해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라도 먹으면 될게 아니냐"는 망발을 태연히 저질렀다. 이러한 불통과 근원적인 위화감은 결국 피 터지는 프랑스 혁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오늘날 우리 국민은 아무 지은 죄도 없이 세계를 향해 고개조차 들지도 못하는 치욕을 감수하고 있다. 나날이 고통과 수치심만 깊어갈 뿐이다. 무엇보다 현 정부가 국위선양이 아니라 국위실추만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자체가 국사범 노릇을 자행하는 한심한 실정인 것이다. 이윽고 우리 국민은 그 노래가사처럼,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아 버린 현실이라 자탄하며 자괴감을 짓씹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국민들은 이제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가 다 등을 돌려버리고 '돌아앉아' 버렸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하면 현 대통령 임기를 번개처럼 빨리 끝나버리게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혹시나 대통령 스스로가 성녀처럼 자발적으로 물러나 주지는 않을까 하는 머릿속 암산으로 편할 날이 없다. 그런데 이 '조그만 예쁜 고래'는 도대체 누구일까?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애국가 잘 부른다고 애국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박호성 기자는 서강대 정외과 명예교수입니다.
#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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