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타령' 박근혜 정부에 '메르스 로또' 권한다

[게릴라칼럼] 메르스 사태, '무능'이 아니라 '범죄'다

등록 2015.06.30 16:32수정 2015.06.3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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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대학신문 주간교수로 일할 때, 눈길을 사로잡은 기사가 있었다. 지도교수이기에 편집회의에도 참석하고 기사작성에 필요한 조언도 하지만, 어떤 기사가 어떻게 실리는지는 신문이 나온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지도교수는 물론, 총장조차 편집에 개입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인도, 여성 여행자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

기사는 여성 관광객들이 인도에서 겪은 끔찍한 사건들을 꼼꼼히 소개한 후, 인도 여행 시 조심해야 할 점을 자세히 일러주고 있었다. '누가 썼을까?' 표제 밑에 인쇄된 이름을 보니 인도 유학생이었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자에게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좋은 기사였다.

마침 방학도 가까웠기에, 인도 여행계획을 세웠던 학생이나 교직원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정보가 되었을 것이다. 이 기사를 보고 여행을 취소한 사람도 있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특히 인도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거나, 엄존하는 위험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았던 사람일수록 계획을 바꿨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결국, 심각한 위험에 노출될 뻔했던 사람들에게는 여행을 포기하거나 미루도록 해 비극적 상황을 막고, 여행을 결심한 이들에게는 더욱 조심하도록 경각심을 일깨웠던 기사다. 외국 여행자에게는 유용한 정보였다 치고, 국가 입장에서 이 기사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하는 '나쁜' 보도였을까?

내가 보기에는 정반대였다. 자국에 대해 정직한 정보를 제공한 사람으로 인해, 오히려 그 나라 국민을 더 신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기사를 다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한국 유학생이 이런 글을 썼다면, 국내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국민은 잘 모르겠으나, 한국 정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잘 알고 있다.

메르스 진정 국면? 그간 대통령의 행동은 적절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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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4일 메르스 영향으로 해외관광객 감소와 소비위축 등 어려움을 겪는 국내 최대 규모 패션산업집적지인 동대문 상점가를 방문해 몽골 관광객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메르스가 진정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책임이 무뎌지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지난 6월 14일, 박근혜 대통령은 동대문 패션상점가를 찾아가 머리핀을 사는 '안심 이벤트'를 벌였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중국 여행자에게 "메르스 대응을 철저하게 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오셔도 된다"며, "중국에 가시면 안심하고 와도 된다고 말해 달라"는 당부까지 했다. 사실이었을까?

대통령이 그 말을 한 시기는 메르스가 극도로 창궐하고 있을 때였다. 불과 한 주 사이에 확진환자가 81명이 발생했고, 대통령 발언 전날까지 발생한 총 사망자 14명 가운데 무려 9명이 바로 그 한 주 사이에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고, 오직 관광객이 계속 들어와 돈을 쓰게 만드는 것만이 중요했다.

지난해 세월호 조기수가 도망쳐 나와 젖은 돈을 말리고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크게 분노했다. 사람들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관광객 주머니 속에 든 돈이나 노리는 한국 정부는 '돈 말리는 조기수'와 얼마나 다른가? 더구나 정부는 환자 한 명을 무책임하게 방치해 국민 백여 명에게 병을 감염시키고 수십 명의 목숨을 잃게 한 주범이다.

이 꼴을 만들어 놓고, '안심하고 오라'고 외국인에게 손짓을 한다. 제 나라 국민 목숨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정부가 외국인 목숨을 소중히 여길 리 만무하다. 어떻게 이들은 제 나라 국민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야 관광객도 안심하고 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당장 숨기고 호도하면 한 줌의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은 나라 전체의 신뢰와 매력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앞의 인도 학생이 그랬듯, 자국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하면서, 환자가 많이 나온 지역을 안내하고, 의료시설 이용 등을 가급적 피하라는 조언했어야 옳다. 이는 장기적으로 신뢰를 얻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외국인 목숨도 한국인 목숨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솔직한 게 아니냐'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까닭은, 앞서 말한 정보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한국 여행자에게 경고하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홍콩, 러시아,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한국 여행 자제를 권고하고 있는 터에 (홍콩은 최근 '홍색 경보'를 한 달 더 연장하기로 했다), 우리가 '안심하고 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말이 먹히리라 생각하는가?

'수치'를 모르는 박근혜 정부

대통령의 말로 상황이 종료됐다면 그저 실없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이것도 결코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지만, (위안부 협상타결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대통령 말에서 보듯) 드문 일도 아니고, 적어도 국민들 낯을 달굴 정도의 수치스러운 사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의 충성스런 관료들이 '추상 같은 대통령 말씀'을 듣고만 있을 리 만무했다.

대통령이 문제의 발언을 한 다음날, 문화관광체육부는 '메르스 관련 관광업계 지원 및 대응 방안 마련·행안'을 발표했다. 관광객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에 머무는 동안 메르스에 걸릴 경우, "치료비 전액과 여행경비 및 기타 보상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책에 대해 수없이 많은 조롱이 쏟아졌으나, 문체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발표 내용대로 강행했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문체부는 "외신에서도 메르스 보험에 대한 긍정적인 보도도 나오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한다. '메르스 안심보험' 계획이 발표되고 실행되기까지의 일주일 사이에 어떤 외신의 "긍정적인 보도"가 있었나 보자. 대통령이 '안심'시켰다는 바로 그 관광객의 모국에서 발행된 일간지는 "메르스 곧 끝난다는 박 대통령 발언의 근거가 뭐냐"며 혹독히 비판했다.

홍콩 대공보의 스쥔위(施君玉) 칼럼니스트는 17일자 23면에 실린 기명 칼럼에서 "신(新)SARS(메르스의 중화권 별칭)가 창궐하고 있는 한국 당국의 경솔한 발언에 어이가 없다"며 "한국 정부가 관광업을 촉진하겠다고 내놓은 조치의 타당성과 쥐꼬리만한 보상으로 외국 관광객의 생명과 건강을 사겠다는 발상의 적합성은 차치하고라도, 만일 다른 나라로 '수퍼 전파자'를 내보냈을 경우 닥칠 엄중한 후폭풍을 한국 문화관광부가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라고 비난했다. (<중앙일보>, 6. 17. "홍콩 언론 '메르스 곧 끝난다는 박 대통령 발언의 근거가 뭐냐' 질타")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제 나라 정부보다 다른 나라 언론이 상황을 더 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고통스러울만큼 한심한 일이다. 우리 현실이 이중으로 암울한 까닭은, 사람 목숨을 도박판 판돈으로 여기는 정부를 꾸짖은 언론이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재앙 모두 '돈에 환장'한 탓에 발생한 일이었는데도, 정부는 아무 뉘우침 없이 돈타령을 계속하고 있다.

제 추레한 몰골을 보지 못하는 나라

어차피 수치를 모르는 정부니, 아예 화끈하게 '메르스 로또'를 만드는 건 어떨까? '판돈'을 수십 억 단위로 늘리고, "어차피 '한 방' 인생인데... 죽기 아니면 돈벼락 맞기!"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코리안 룰렛(Korean Roulette)" 같은 이름을 붙이면 꽤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현 정부가 '미래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또 다른 사업은 '의료관광'이라는 성형수술이다. 오래 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한국 의료계는 자국인의 얼굴을 뜯어고치도록 유도하는 것만으로 부족해, 이제 외국인까지 먹잇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그 결과가 공공의료 황폐화였다는 사실을, 메르스 창궐이라는 비극이 말해주었다.

삼성서울병원은 정부가 '수출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의료산업의 상징이었다. 삼성병원에 음압병동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은, 도덕, 윤리, 철학 모두 사라진 한국사회의 추레한 몰골을 보여준다. 하지만 메르스로 난리가 난 와중에도 복지부는 삼성병원에 원격진료를 발빠르게 허용했다.

국민들이 메르스와 싸우며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비윤리적인 정부가 결코 유능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 목숨을 경시하는 것만큼 비윤리적인 것은 없으며,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를 진다는 점에서, 메르스 사태를 통해 드러난 한국 정부의 무지와 무책임함은 단순한 '무능'이 아니라 '범죄'에 가깝다.

국민 목숨 하나 못 지키는 정부에게 '경제성장'이나 '행복'을 바랄 바에야, 돌팔이 성형외과 의사에게 심장 수술과 뇌 수술을 맡기는 게 낫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메르스 #메르스 안심보험 #공공의료 #삼성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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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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