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용과 수출용 자동차 강판이 다르다고?

[르포] 현대차 아산공장의 프레스공정을 직접 따라가보니

등록 2015.06.30 20:05수정 2015.07.0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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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아산공장 프레스라인에 저장돼 있는 쏘나타 등 도어 철제. ⓒ 김종철


"아니, 이것을 보세요..."

그는 기자의 손을 끌었다. 회색 빛깔의 커다란 차체모양 철판 수만여장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올해로 27년째 현대자동차에서 일하고 있다는 김범래 아산공장 차체생산1 과장. 김 과장은 "아직도 시중에 현대기아차에서 내수용과 수출용의 강판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돈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차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런 생각은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오후 충남의 현대차 아산공장.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듯 공장에 이르기까지의 도로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이번 사태의 진원지였던 평택시 인근 도로에선 통행하는 자동차를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아산 공장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이상훈 전무(공장장)는 "다행히 메르스가 이곳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서 "공장 입출입 과정을 포함해서 아산 일대까지 (메르스) 방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산 공장은 현대차 국내 공장중에서도 최신 시설로 꼽힌다. 특히 쏘나타를 비롯해 그랜저 등 현대차 인기차종의 전진기지로 꼽히는 곳이다. 하지만 최근 현대기아차의 실적이 녹록지 않다. 일본 엔화의 환율 공세와 수입차 업체의 국내시장 공략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현대차 주가는 1년 전에 비해 거의 반토막까지 이르렀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대놓고 '현대기아차의 위기'를 말한다. 이 전무는 "회사를 둘러싼 내외부의 도전을 잘 알고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지금 이 순간에도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임직원들이 정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그의 말 속에는 정말 '위기감'이 배어 있었다. 그에게선 시장지배자로서의 현대기아차 고위 임원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국내 소비자의 현대기아차에 대한 질책과 문제제기를 몸소 깨닫고 있는 듯했다. 기자의 발길은 곧장 자동차의 생산라인으로 옮겼다. 아산공장은 여느 다른 자동차 공장에 비해 설비는 훌륭했고, 내외부 환경은 깨끗했다. 2년 전 기자가 방문했던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한 폴크스바겐 공장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시설이었다.

아직도 현대기아차 내수용과 수출용 강판이 다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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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차체 조립 과정. 거의 모든 작업을 로봇들이 수행하고 있다. ⓒ 현대차

자동차는 프레스 공정을 비롯해 차체와 도장, 의장 등 크게 4단계에 걸친 생산 시스템을 갖고 있다. 어느 공정 하나 중요하지 않을 만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대개 이같은 공장라인 하나 구축하는 데 수천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투자가 들어간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은 생산라인을 얼마나 더 집약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만들 것인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기자가 이날 가장 염두에 뒀던 부분은 바로 프레스, 차체 공정 라인이다. 지난 4월 서울모터쇼의 현대자동차관에서 벌어졌던 토론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일반 소비자들이 직접 현대차를 상대로 여러 궁금증을 직접 묻고 답하는 기회였다. 일부 소비자는 아예 대놓고 차량 운행과정에서의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에 한 고객은 "시중에 현대기아차의 내수용과 수출용에 들어가는 강판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물었다.

물론 당시 현장에서 대답을 했던 현대차 기술 엔지니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현대기아차의 생산라인 등을 설명하면서, 시중에 떠도는 소비자들의 생각은 '오해에 불과하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소비자와 함께 귀담아 듣던 기자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자가 아산공장에서 가장 유심히 보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아산공장의 차체가 만들어지는 프레스와 차체공정. 아산공장 프레스부의 박병문 부장은 "(아산공장에) 입고되는 철판이 하루에 200톤으로 연간으로 따지면 6만톤 규모"라고 말했다. 이들 철판은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을 통해 들어온다. 대개 아산공장은 이들 회사로부터 철강 코일 형태로 약 일주일치 분량의 재고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안내에 따라 프레스 공정을 따라가보니, 녹색과 노랑, 파랑색 등의 표시를 한 회색빛 철판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녹색에는 AG(그랜저), 노랑색에는 YF(쏘나타), 파란색에는 LF(쏘나타) 등의 표시가 돼 있었다. 김범래 과장은 "프레스 공정은 넓적하게 펴진 철판을 제철회사로부터 가져와서 차종별로 각 부문에 맞게 찍어내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이렇게 찍어서 만들어진 것들은 내수용이나 수출용이나 따로 구분돼 있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이런 방식으로 창고에 쌓이는 철판만 1년에 약 600만 장에 달한다.

'내수용'으로 구분된 유일한 강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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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 공정에서는 가공된 철판을 활용하여 차량의 뼈대를 완성합니다. 대체로 이 과정들은 로봇이나 거대한 기계를 활용하여 작업한다. ⓒ 현대차


김 과장과 함께 서 있던 프레스 공정 주변에는 거대한 쇳덩어리 수십여 개가 눈에 띄었다. 김 과장은 "저기 보이는 쇳덩어리에 철판을 넣어서, 일정 모양의 차체를 찍어내는 역할을 한다"면서 "쏘나타, 그랜저 등에 들어가는 차체를 찍어내는 금형인데, 한 세트당 20~30억 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좀더 쉽게 말하면, 붕어빵을 만들 때 반죽을 붓는 금형을 생각하면 된다.

김 과장은 "정말로 내수용과 수출용 강판을 다르게 하려면, 수십억 원에 달하는 금형 자체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과연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와 같은 금형 자체를 만드는 것이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실제로 강판 두께를 다르게 차량을 생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박병문 부장은 "설령 미국이나 유럽으로 수출되는 쏘나타의 강판을 다르게 간다고 하면, 프레스와 차체공정 라인부터 아예 다른 설비를 깔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부장 역시 기자를 향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시중에 현대기아차의 수출용과 내수용이 다른 강판을 쓴다는 오해는 말그대로 오해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기자는 그와 함께 차체 조립라인을 가까이 들어가 봤다. 앞선 프레스와 차체공정 대부분은 거대한 로봇들이 조립을 진행하고 있었다. 재고 창고에 쌓여있었던 수많은 철판들은 마치 제자리를 찾아서, 자신의 옷을 맞춰 입듯이 자동차의 뼈대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내수용과 수출용을 구분짓는 표시문구 하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애초에 그런 작업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기자의 눈에 '내수용'이라는 표시가 들어왔다. 자동차 뒷부분 번호판에 해당하는 철판이었다. 언뜻 보기엔 비슷한 모양의 철판이었지만, 하얀색 종이 위에 '내수용'을 비롯해 '북미', '호주', 캐나다', '중동', '브라질' 등의 표시가 돼 있었다. 나라별로 번호 판을 부착하는 크기와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아산공장에서 유일하게 내수용과 수출용 차량의 표시가 구분되는 철판"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조용히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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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뒷부분에 부착되는 철판. 현대차 하청업체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내수용'과 별도로 각 나라마다 다른 형태의 철판 모양도 생산하고 있다. ⓒ 김종철


신뢰의 문제 "시간 필요하지만 더 낮은 자세로 가겠다"

"언젠가 외부 블로거 등을 초청해 생산라인을 투어한 적이 있어요. 지금처럼 프레스와 차체공정을 자세하게 보여드리지 못했지만... 며칠이 지난 후에 인터넷에 '내수용과 수출용이 다른 현장을 목격했다'면서 좀전에 보여드린 부분에서 '내수용'이라는 부문만 찍힌 사진이 올라와 있더군요. 제대로 된 설명없이 말이죠."

그는 허탈한 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굳이 번호판 뿐만이 아니다. 아직도 여전히 논란이 진행중인 현대기아차의 아연도금 강판 비율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자동차 부식 방지를 위한 강판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내수용이 불리하다는 이야기다. 일부 소비자들은 북미권에 수출하는 차량의 아연도금 강판이 국내보다 훨씬 높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2007년 이전까지는 실제로 그랬다.

현대차 관계자는 "겨울철이 길고, 어마어마한 눈이 내리는 곳에서 달리는 차와 1년 내내 따뜻한 기후를 보이는 곳의 자동차와 같은 방청 성능을 가져가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눈이 많이 오는 곳에서 운행하는 차는 부식 방지를 위한 장치를 하고, 날씨가 더운 곳에선 뜨거운 햇볕을 견딜 수 있는 도장쪽 품질을 강화하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2007년 이후 생산되는 모든 차량에 대해 북미권 수출 차량과 같은 수준의 아연도금 강판을 사용하고 있다.

이상훈 아산공장 전무는 "국내에서도 최근 몇년새 폭설이 잦아지면서, 겨울철 도로사정이 크게 달라졌다"면서 "북미권 수출 차량이상의 방청 성능을 강화해 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전무는 또 "현대기아차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따끔한 지적과 질책들을 잘 듣고 있다"면서 "소비자들에게 좀더 낮은 자세로 다가가면서,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신뢰를 찾아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늦게 아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도로를 탔다. 평일 오후여서인지 도로 위에 차는 그리 많지 않았다. 기자를 태운 차량 옆으로 대형 트레일러 한 대가 가로질러 나갔다. 그 트레일러에는 아산공장 라인에서 봤던 쏘나타와 그랜저 등 10여 대의 차가 올라서 있었다. 평택항(수출용)으로 향하는지, 아니면 수도권 다른 대리점으로 가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그 트레일러 위에 있던 차들 모두 같은 강판과 같은 생산라인에서 우리가 만든 차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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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아산공장 전경 ⓒ 현대차


#현대차 #아산공장 #쏘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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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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