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벌어진 싸움 "쟤네 진짜 한국인이야"

[서른 둘 여대생의 중국유학일기16] 뜻밖의 역사여행③

등록 2015.07.12 19:14수정 2015.07.2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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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이듬해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에 입학한 32살 늦깎이 유학생입니다. 올해 7월 졸업을 앞두고,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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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더 아름다웠던 성소피아 성당 ⓒ 김희선


겨울 평균온도가 영하 이삼십 도를 넘나들어 추위로 명성이 자자한 하얼빈.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온갖 얼음 조각품과 형형색색의 빛이 어우러져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빙설제다. 하지만 추위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내게 빙설제는 꿈 속 이야기다. 거리에는 19세기 러시아 영향을 받아 건설된 유럽풍 건물들이 눈에 띈다. 여느 중국의 도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기차역을 나서자 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눈발이 우리를 맞이한다. 차갑다. 백두산에서부터 오월의 따스함이라곤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지역이다. 게다가 묵직한 가방이 어깨를 뻐근하게 눌려온다. 지난 며칠간의 피로가 이자까지 붙어 적립된 상태다. 집 나선 지 나흘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나약해 빠진 몸뚱이는 쉬고 싶다며 끊임없이 유혹해온다. 그래서 하얼빈 일정은 하루로 결정됐다. 새삼 배낭족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중국은 역에 유료 짐 보관소가 많다. 덕분에 무거운 짐을 손쉽게 맡기고 역 중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의도치 않은 역사여행의 주인공인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다른 이유가 필요할까. 한국인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역에 위치해 찾기도 쉽다.

하얼빈에 새겨진 일본의 흑색 자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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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기념관 입구 ⓒ 김희선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하얼빈역 중간에 있다. 헤맬 필요없이 역에 위치해 좋지만, 작고 눈에 잘 띄지 않는 탓에 역무원조차 그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의사께서 타지에서 서글픈 대우를 받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려온다.


언 몸을 쓸며 문을 밀었다. 지키고 있는 중국인 직원은 무표정이다. 의무적으로 피사체를 훑는다. 한국여권을 제시하자 기계적인 태도로 여권번호와 이름을 적게 했다.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이내 고개를 까딱하며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공간은 크지 않다. 오히려 협소하다. 그 작은 곳에 의사의 천진한 출생부터 의로운 죽음까지 고스란히 녹아있다. 어느새 표정은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몇 명의 한국인이 진지하게 관람하고 있다. 방명록에는 이미 다녀간 사람들의 애도와 분노, 탄식이 한가득 담겨져 있었다. 의사를 기리며 고마워하는 마음이 절절히 전해진다. 나도 그곳에 마음을 더했다.

마음이 더 아파올 곳에 도착했다. 일본이 악랄한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731부대의 유적을 찾았다. 입구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녀가 하는 한국말은 약간 어눌했지만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친절히 설명했다. 한국인을 배려해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을 배치해 놓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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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은 마취없이 산채로 해부 당했다. 실제 사용했던 수술도구도 전시되어 있다. 원하면 한국어지원이 되는 오디오기를 유료대여 해준다. ⓒ 김희선


731부대의 기록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다. 인간이 어떻게 저럴까 싶다. 깔끔한 실내와 대조되는 온갖 추악한 일본군의 행태가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잔인한 방법으로 죽어나간 영혼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다. 방법 또한 비열했고 마지막까지 치졸했다. 이때만큼 인과응보를 원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하얼빈에서 보낸 오전은 온통 일본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했다. 지나칠 정도로 일본을 싫어하는 중국인들의 행태가 이날만큼은 이해가 됐다.

중국 속의 '작은 러시아' 하얼빈

관람을 마친 후 주린 배를 잡고 유명한 피자뷔페를 찾았다. 하얼빈에서 유명한 꿔바로우나 춘빙(보통 춘빙이라는 얇은 병에 여러 가지 요리를 싸먹는다)을 먹지 않고 피자뷔페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진저우에 없기 때문이다. 웬만한 중국음식은 진저우에도 싸고 맛있는 곳이 많다. 하지만 피자뷔페는 달랐다. 다른 도시에서 메뉴를 고르는 기준은 돌아가서 먹을 수 없는 식당이나 음식이다.

우리가 찾아간 뷔페는 중국에서도 유명한 체인점이다. 깔끔한 분위기에 갖가지 피자와 중국음식, 과일 뿐 아니라 맥주도 제공된다. 물론 한국피자에 비하면 맛이 부족하다. 하지만 일 인당 만 원도 안 하는 저렴한 가격 덕에 젊은 층에게 매우 인기다.

식사 후 상점을 돌아다니며 지인들에게 나눠 줄 선물을 골랐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러시아산 초콜릿이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 맛도 좋아 보이는 것이 만만하다. 열 개 정도를 구입했다. 나중에 맛을 보니 생각한 맛은 아니었다. 초콜릿이 입안에서 녹지 않고 제각기 노느라 바쁘다. 받아도 그리 기뻐할 것 같지 않다. 헛돈 쓴 느낌에 속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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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게 흐르고 있는 쑹화강 ⓒ 김희선


무심코 걷다보니 1957년에 쑹화강 대홍수를 시민들의 힘으로 막아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팡훙지녠탑이 보인다. 뒤편에 온화하게 흐르는 쑹화강을 보면 당시의 성난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다. 진눈깨비마저 어느새 잦아들고 맑게 갠 하늘이 강물을 파랗게 물들였다. 잠시 강둑에 앉아서 잔잔한 쑹화강에 눈길을 빠뜨렸다. 여행 중 찾는 명소도 좋지만, 이런 평범한 상념도 소중하다.

해가 어둑해질 무렵 하얼빈의 마지막 목적지인 성소피아성당으로 향했다. 중앙대로의 밤거리는 마치 러시아를 통째로 옮겨다 놓은 모습이다. 가본 적도 없는 모스크바를 거닐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발길에 차이는 이국적인 거리의 야경. 당장 러시아어가 들려와도 이상하지 않다.

그 절정은 성당에 도착해서였다. 동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웅장한 비잔틴 양식의 성당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주변의 현대적인 건물과 어울려 스스로를 금빛으로 휘감고 관람객들을 도도히 굽어보고 있다. 하얼빈 일정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백장 넘게 기념사진을 찍었지만 성당의 커다란 덩치 탓에 정작 나는 한 개의 점으로밖에 표현되지 않았다. 게다가 넘쳐나는 관광객에 가려 누가 봐도 지나가는 행인 중 한 명이다. 결국 모두 지우고 성소피아성당 독사진만을 남겼다.

쟤들은 '순정' 한국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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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으로 만들어진 무대에서 열린 길거리 음악회. 밤의 하얼빈은 눈도 귀도 즐겁다. ⓒ 김희선


모든 일정을 마친 후 진저우로 돌아가는 침대기차에 몸을 실었다. 장장 삼일이나 기차에서 불편한 잠을 청해야 했다.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데, 한 중국인 아저씨가 한국인이냐며 말을 걸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기념사진을 찍자면서 지나는 아줌마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했다.

문제는 아줌마가 질문을 착각한 것이다. 자신의 핸드폰으로 찍어 달라는 줄 알고 거절하자 아저씨가 사진 하나 못 찍어 주냐며 화를 내 싸움이 시작됐다. 우리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당황해서 우리끼리 수군거리고 있자 아저씨의 외침이 귀에 박힌다.

"타먼싀츈정더한궈런!(쟤네는 순정 한국인이라고!)"

이건 또 뭔가. 같은 기차에 있던 모든 중국인이 일제히 고개를 내밀어 우리를 바라본다. 부끄러워 등에 땀이 배어나왔다. 왜 갑자기 저 말이 튀어나왔는지도 의아했다. 직역이라 이상하지만 느낌을 살리고자 그대로 옮겨 적었다. 아직까지 단어 하나하나가 생생하다.

그 말 때문일까. 싸움에선 결국 아저씨가 승리했다. 아줌마가 자기가 오해했다며 사과했다. 목소리 큰사람이 이긴 싸움이었다. 나중에 아줌마는 살갑게 웃으며 '진짜' 한국인이냐고 물어본다. 공연히 얼마나 미안하던지. 괜히 주변 눈치를 보며 밤을 보내야 했다.

번호를 알아간 아저씨는 여러 차례 문자를 보내더니 나중에 한국에 오겠다며 한국주소와 전화번호를 달라했다. 가이드 요청은 물론 우리 집에 방문하겠다는 말과 함께.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지만 넉살이 좋다 못해, 지나치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넓은 대륙엔 정말 별별 사람이 다 있다.

부푼 가슴을 안고 떠났지만, 한편 교과서같이 지내진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물론 여행이 항상 유쾌하고 즐거운 모험으로 가득할 수는 없다. 유명관광지가 아닌 곳을 두루 겪고 싶었지만,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땅인 탓도 있다. 중국은 잠깐만 움직여도 하루를 보내는 건 일도 아니다. 여행지의 감흥보다 이동시간을 이용한 사색의 시간이 더 길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행지는 물론 곳곳에서 함께한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이 바뀌어 감을 느끼게 된다. 추억을 비축해 보다 풍부한 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기억에 새길 만한 소중한 여행이었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중국 #중국유학 #하얼빈 #성소피아성당 #안중근의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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