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 유승민 지지율 폭등, 역시 '선거의 여왕'?

[분석] 박근혜 정치 향해 쏜 맹렬한 한 발... 13일만에 김무성 바짝 추격

등록 2015.07.09 11:11수정 2015.07.0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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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채우지 못해 아쉬워하는 유승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거취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유 원내대표는 "오늘 새누리당 의원총회 뜻을 받아들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다"며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면서 아쉬움이 있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 유성호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입니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퇴 기자회견 내용 중

8일 유승민 원내대표가 전격 사퇴했다. 지난 6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여당의 원내사령탑'이라고 꼭 짚어 비판한 지 13일만이다. '친박'이 조롱에 가까울 정도로 흔들어대도 꿈쩍하지 않던 그는 김무성 대표로부터 의원총회 결과를 전달받은 즉시 사퇴했다. 이날 새누리당은 3시간 30분 동안 그의 퇴진을 논의하는 의총을 열었다. 이후 그는 3분에 걸쳐 사퇴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상처 입은 박 대통령, 직접 나섰지만 무력함만 노출

유 전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순간, 가장 크게 상처입은 정치인은 박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의도한 결과를 얻어냈지만, 그로인해 노출된 약점이 너무 많았다. 먼저 현재권력이 직접 나서서 손에 피를 묻혔음에도 유 전 원내대표는 '13일'을 버텼다. 이 기간동안 박 대통령 역시 인내해야 했다. 측근들을 통해 '탈당' '신당창당'까지 운운했지만, 그것 이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의원총회에서 김무성 대표가 한 발언 역시 박 대통령에게는 상처로 다가왔을 것이다. 김 대표는 "많은 의원님들은 (유 대표에게) 과실보다는 공로가 훨씬 많았음을 인정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진 말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유 원내대표는 왜 퇴진해야 하는가. 김 대표는 '유승민 아웃'이라는 실리를 박 대통령에게 챙겨주었지만, '명예로운 퇴진'이라는 명분을 유 전 대표에게 선물했다. 

가장 결정적인 대목은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 기자회견 내용이었다. 돌아보면 최초 대통령의 공격이 있은 이후 '친박'은 '유승민 정계은퇴'까지 언급할 정도로 기세가 등등했다. 유 전 대표의 '비자발적 퇴진'을 '북한 장성택 숙청'과 비교하는 SNS가 나돌 정도로 '유승민 몰아내기'는 공포정치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퇴를 강요당한 '여당의 원내사령탑'은 조용히 사라지지 않았다.

기자들 앞에 선 유 전 대표는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담한 어조로 확인해주었다. "헌법 1조 1항의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는 그의 말이 박 대통령에게는 어떻게 들렸을까. 왜 그는 원내대표직을 내려놓는 그 순간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조항을 들먹였을까. 묻지 않아도 그가 지켜내고자 했던 민주주의의 위협 요인은 '박 대통령'과 '친박'이었을 것이다.


'친박'은 "박 대통령이 왕정 군주란 말인가"라며 즉각적으로 불쾌한 반응을 쏟아냈지만 시중의 여론은 다르다. <한겨레>는 9일자 사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에서 "대통령이 국회 다수당의 원내대표를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쫓아내는 체제가 민주주의일 수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입법부의 제도적 견제를 받지 않는 국가원수란 곧 중세의 왕과 하등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권의 대권후보들에게 유승민이 보여준 '성공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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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의 미래'를 언급한 대구의 유력일간지 <매일신문> 7월 9일자 1면 ⓒ 매일신문


박 대통령에 맞서 '헌법 제1조 1항'을 지키려 노력한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지지율이 폭등했다. 그가 언제 '차기'를 언급했던 적이 있었던가. 한국 정치사에서 이토록 짧은 기간 동안에 이와 같은 지지율 폭등 사례가 또 있었던가. 그가 한 것이라고는 '대통령과 대립'한 모습뿐, 역시 박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이었던가.

8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권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를 보면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16.8% 지지율을 기록, 김무성 대표의 19.1%를 바짝 추격하며 일약 여권 내 유력 대선후보로 자리매김했다. 3위는 오랫동안 대선후보로 공을 들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였다. 그의 지지율은 6.0%로, 유 원내대표와 10%p 이상 차이가 났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p)

이 수치가 놀라운 대목은 그 폭등세에 있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유 원내대표는 같은 조사에서 3.4% 지지율을 기록했다. 6월 조사에서는 5%대로 소폭 상승하는 추세였다. 그리고 8일 그의 지지율은 김무성 대표의 턱밑까지 추격하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박 대통령에게는 배신자였겠지만, 민심은 유 원내대표에게 급속히 기울고 있는 형국이다.

'여론조사 기간'을 들여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지지율 폭등이 전적으로 '배신자'로 규정된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지난 6월 23일~24일 실시한 조사에서 유 원내대표는 5.4%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6월 25일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배신의 정치' 발언을 격정적으로 쏟아냈다. 그로부터 13일이 지난 7월 8일 같은 조사에서 유 원내대표 지지율은 16.8%로 급등했다.

마지막 떠나는 순간에 '헌법'을 인용했을 뿐, 지난 13일 동안 유승민이란 정치인이 보여준 것이라고는 대통령의 분노에 소극적으로 맞선 것뿐이었다. 그 맞섬도 "몇 번이고 사과할 수 있다"며 "대통령께서도 마음을 열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던, 적극적 대립의 모습은 아니었다. 이 말을 하는 그의 허리는 90도로 숙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지지율 30% 초반을 기록하고 있는 레임덕 대통령과 맞선 여권 정치인에 대한 국민적 지지세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여권의 잠룡으로 이름을 올려놓았지만 지지율이 답보 상태인 김문수, 정몽준, 원희룡, 남경필 등에게 이 조사결과가 어떠한 시사점을 주었을지 궁금한 대목이다.

그리고 위기의 '정치인'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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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 신임장 제정식을 위해 접견실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돌아보면 지난 13일 동안 청와대와 집권여당을 대혼란에 빠뜨린 '유승민 사태'의 기획자는 '정치인 박근혜'였다. '대통령'의 입장이었더라면 유승민이라는 정치인이 '자기 정치'를 했다고 사태를 이렇게까지 몰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분노는 자신을 정치인으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승민은 그의 뜻대로 원내대표에서 '아웃'됐지만 이 싸움의 손익계산서를 들여다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직'을 잃었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잃은 것이 별로 없다. 먼저 지지율이 폭등했다. 정치인에게 이는 커다란 자산이다. '친박'이 맹렬하게 그를 비난했지만, 그들은 어차피 유승민의 지지세력이 될 리 만무했다. 13일 동안 보여준 '비박'과의 연대경험 또한 그에게 미래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언론의 평가도 나쁘지 않다. 대구 지역의 유력일간지인 <매일신문>의 9일자 1면 제목은 '유승민 사퇴... 미래는 남겨 놓았다'이다. 이미 사퇴는 되돌릴 수 없는 기정사실, 이 신문이 말하고자 했던 대목은 '유승민의 미래'였다. <조선일보> 역시 9일자 사설을 통해서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이 직접 선출한 원내대표를 '배신자를 심판하라'면서 물러나라고 한 일은 다시 있어선 안 된다"며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손익계산서는 어떠한가. 선제공격을 감행했지만 소득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최근 지지율이 소폭 올랐다는 보도가 있지만, 메르스 여파 진정세 등과 맞물려 있기에 주목할 만한 수치로 보이진 않는다. 유승민이 13일 동안 버티다가 떠났다. 황망히 떠난 것도 아니다. 밤새 사퇴선언문을 작성했다. 더구나 그 내용에 '헌법 1조 1항'을 담았다. 이토록 강렬한 인상을 주며 떠난 여당의 원내대표가 또 있었던가.

박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손해를 봤다. 최고 권력자로서의 위엄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무기력한 '친박'의 모습도 대내외에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두 차례나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100명 의원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큰소리친 그들은 그러나 '표 대결'을 끝까지 피했다. 지금 이 싸움은 힘의 우위를 확인시켜주는 싸움이 아니었던가.

박 대통령과 '친박'이 입은 손해는 이것만이 아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치를 향해 '헌법적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는 맹렬한 한 발을 쏘고 떠났다. 그 한 발은 헌법 제 69조에 따라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라고 국민들 앞에서 선서한 뒤 취임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향해 지금 이 순간에도 정면으로 날아가고 있다. 

이것의 의미는 엄중하다. 집권여당의 의원들이 직접 선출한 원내대표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를 묻고 떠난 것이다. 정상적인 국회라면 입법부의 존립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을 쳐야 할 상황임을 유승민이 묻고 있다. 정상적인 국회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유승민 #지지율 #대권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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