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 있다면 이런 풍경 아닐까"

[여행 책에 없는 유럽 종단기10] 예술가들이 사랑한 생폴드방스 산책

등록 2015.07.17 19:41수정 2015.07.1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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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계속

프랑스 남동부 생폴드방스 아침 풍경 ⓒ 송주민


프랑스 남동부 생폴드방스 풍경 ⓒ 송주민


멋지다, 절경이네, 와우, 대단해, 이거 꿈 아니지? 그녀에게 이런 말들을 내뱉으며 걸어내려가고 있다. 수녀원 문을 나와 어제 밤 내렸던 버스정류장 쪽으로 향하는 길, 저기 앞에 보이는 언덕에 옹기종기 솟은 옅은 살구빛 마을을 향해 가고 있다. 아침 햇살에 뒤덮인 생폴드방스는 그저 아름답다는 말 밖에는. 황금빛으로 물들어 눈부신 지중해, 동화에 나올법한 귀엽고 완만하게 솟은 동산들, 천천히 돌로 빚은 인간들의 삶터 흔적들까지 조화로이 놓여 있다. 한눈에 들어오는, 사방에 파노라마로 펼쳐진 광경에 탄복하며 걷고 있다.

"뭐랄까, 하늘나라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었어."

아직 한국에 있을 때 여기 생폴드방스가 어떤 곳이냐고 묻자, 그녀가 한 답변이다. 이곳에서 수도자의 길을 걸으려던 그녀의 신앙 감각이 짙게 묻은 말이었겠지만, 지금 이 광경 앞에 서자 나도 "이 아름다운 세계를 보라, 어떻게 하느님이 없을 수 있을까?"(도로시 데이)라는 투로 감탄하고 경외하는 표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주위로 온통 내리쬐는 빛 한줄기도 놓치지 않고 싶은 몸짓으로, 이 지구 건너편 땅에 놓여 있다.

"평화로웠어, 이 찬란한 풍경에..."

그러다가 불현 듯 단지 경치가 끝내주고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하늘나라'까지 언급하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불쑥 든다. 왜, 그녀는 왜 천국이란 말까지 언급했을까.

"평화로웠어. 평화. 내가 바랐던 평화 그것이 있다고 생각을 했던 거 같아. 실제 느꼈고.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또 정해진 시간에 노동을 하고, 과하지 않게 정갈히 식사를 하고. 다른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드리고, 하루를 마치는 순간에도 감사 기도를 드린 후 잠을 청했지. 그러고 또 일어나면 아침에 다시 새소리에 이 찬란한 풍경을..."

그녀는 한국에서는 선뜻 찾지 못한 성소를 먼 땅에서 발견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것은 무슨 느낌이었을까. 고국을 떠나서 둥지를 틀고자 '이민계'를 들고 있는 게 유행이라는, 팍팍한 우리 땅의 현실에 대한 젊은이들의 환멸과 비슷했을까? 아니면 민족과 나라에 상관없이 보편 종교를 믿는,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지구별에 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신에게 맞는 땅의 성소를 택한 것일까?

이유를 막론하고 그녀에게 전염된 것일까. 하늘에서 땅을 포개며 비추는 아침 햇살에 평화가 묻어 있다. 아니, 누구라도 이 풍경을 보면 평화롭다고 할 것이다. 마을로 향하는 언덕길을 따라, 호리호리한 체구의 수녀님이 사뿐하게 걸어간다. 돌로된 길을, 돌로 지은 오래된 예배당 옆으로, 몇 백 년 묵었을 돌로 세워진 마을 쪽으로 걸어가는 베일 쓴 수녀님의 뒷모습, 중세시대 풍경을 보고 있는 듯한 몽환적인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녀도 저랬을까.

오만할 정도로 화창한 날씨, 프랑스의 유명한 휴양지

생폴드방스의 성채 마을 풍경 ⓒ 송주민


생폴드방스 성채 마을, 겨울 휴가철이라 인파가 많다 ⓒ 송주민


언덕을 내려와 버스정류장을 지나 다시 언덕을 오른다. 이제 마을 입구다. 수녀원의 한적함과는 달리, 인파가 상당히 많다. 유럽의 연말연초 휴가철이란다. 아침부터 온화하게, 아니 이 한겨울에 오만할 정도로 밝게 내리쬐는 햇살만으로도, 이 땅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저기 북쪽 유럽의 겨울은 얼마나 날씨가 궂고 흐리고 우중충하고 그래서 마음마저 우울하게 했던가(경유해서 왔던 핀란드 헬싱키, 오후 3시쯤인데 한밤중처럼 컴컴하고 구름이 짙게 깔린 풍경에 깜짝 놀랐다).

"수녀원이 들어설 때는 그러지 않았겠지만, 이제는 여기가 돈 좀 있는 사람들 별장 사놓고 휴가 즐기는 곳이기도 해. 저 언덕에 집들이 도시에 사는 누군가의 별장일 수도 있지. 여기서 멀지 않은 칸느(영화제로 유명한 곳)에 가봐. 호화로운 요트들이 해변에 즐비하지."

수녀원에서 로사 수녀님이 해준 말, 생폴드방스를 포함한 남동부 프랑스 지방은 휴양지로도 유명한 곳이란다. 겨울에도 날씨가 이렇게 좋으니, 그것만으로도 날 궂은 북쪽 유럽 사람들은 이곳을 찾을 것 같은 느낌이다. 여행 책에서 본 프랑스인 중년부부의 말도 떠오른다.

"생폴드방스의 공기가 그리워 갑니다. 새들의 지저귐과 맑은 공기, 골목마다 만나는 작은 인연들은 우리들의 바쁜 일상과는 다른 세상의 일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모은 돈을 몽땅 털어 생폴드방스에 예쁜 집을 사게 되었고 매년 여름 바캉스 때마다 갑니다."(정기범, <프로방스, 프로방스>)

생폴드방스의 성채 마을, 돌로 이뤄진 골목길 풍경 ⓒ 송주민


생폴드방스의 성채 마을 풍경 ⓒ 송주민


그렇게 생폴을 찾은 인파를 따라 마을로 들어간다. 문득, 굳이 이렇게 언덕 위에 마을이 들어선 이유가 궁금하다. 저 아래에 평지나 우리나라처럼 '배산임수'로 집들이 들어서도 될 터인데, 왜 굳이 힘들게 언덕을 삭발하듯 밀어내고 그 위에다가 마을을 쌓아올렸을까. 잠시 서서 주위를 살펴본다. 마을 주변을 성곽이 두르고 있다. 알고 보니, 벽을 쌓아 전쟁을 대비하고 높은 지대에 군집을 이뤄 살았던 중세의 성채 마을이란다. 16세기경에 지어졌다고. 하긴, 지금 서 있는 마을 입구도 성채로 들어가는 큰 문이다.

옛 모습이 남아있거나 혹은 그대로 복원한 모습이기에, 길도 좁고 구불구불하다. 차는 당연히 들어갈 수 없다. 오직 돌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천천히 걸어들어간다. 발 밑으로 동글동글한 조약돌들이 밟힌다. 자세히 보니 돌 말고 조개껍질도 콕콕 박혀 있다.

성채 마을 속을 꽉 채운 예술의 향연

골목을 걸어들어가 주위를 본 느낌은, 마을이라기보다 미술관이다. 곳곳에 작은 아틀리에와 갤러리들이 즐비하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마을, 샤갈이 마지막 20년을 살다가 묻힌 곳, 르누아르, 마티스, 모딜리아니, 피카소 등등 많은 20세기 화가들이 이 남프랑스의 아리따운 마을에서, 여기 "하늘 아래 모든 사물의 채도가 한 단계씩 격상될 정도로 햇볕은 작열하고 저 멀리 니스의 앞바다는 짙푸른 미풍을 불어대는"(장다혜, <프로방스에서 느릿느릿>) 축복의 땅에서 먹고 자고 그렸다.

중세의 성채 마을 외관은 그대로 남았지만, 속 알맹이는 세련된 예술로 치장한 미술관처럼 돌변했다. 예술가들의 영향일 게다. 골목골목 이어진 갤러리들을 밖에서 흘끔흘끔 들여다본다. 그러다가 풍경 그림이 멋지게 내걸린 곳, 황금빛 햇살을 찬란하게 표현한 작품, 거기에 이끌려 한 자그마한 갤러리에 문을 열고 들어간다. 순간의 빛을 강렬하게 영원토록 화폭에 담은 인상파 화가의 계보를 이은 작품 같다. 어느새 우리 옆으로 슬쩍 다가온 주인이 처음에는 불어로 말을 걸더니, 못하는 걸 알자 영어로 말을 건네며 우리를 맞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것은 당신이 그린 작품입니까?"
"아니요. 남편이 그린 겁니다. 그이는 잠시 자리를 비웠고요."

그녀는 우리에게 명함을 하나 건넨다. 장발을 한 중년의 남성 화가가 지금 우리 옆에 선 '갤러리 지기' 부인과 함께 캔버스 앞에 서 있다. 누가 봐도 예술가 부부다.

"아, 그렇군요. 당신 남편은 인상주의 스타일로 즐겨 그리나요?"
"꼭 그렇진 않아요. 좋아합니다만,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소개하며 활짝 웃는 그녀의 얼굴이 온화하다. 그러나 세련된 화실 분위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 비싸다. 가격은 내가 엄두를 낼 수준이 아니다. 미디어 재벌 출신의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이곳에 와서 하루 만에 수천만 유로를 써가며 이런 작품들을 왕창 사갔다가, 자국 언론의 핀잔을 들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단지 충분히 구경만 한다.

생폴드방스의 성채 마을 골목길 풍경 ⓒ 송주민


생폴드방스의 성채 마을 안 풍경 ⓒ 송주민


동네를 어슬렁거리듯 돌며 바라본 샤갈의 진품

다시 골목을 걷다가 들어간 갤러리, '샤갈의 진품'이 있다는 글귀에 이끌린 곳, 맙소사, 화폭 하단에 적힌 글귀, 샤갈의 사인이다. 스케치만 담긴 습작도, 스케치마저 마치지 않은 뼈대뿐인 습작도, 신비롭고 눈부신 색채로 표현한 완성작도, '진품' 문구와 함께 내걸려있다.

백발에 안경을 쓴 갤러리 주인은 앞서와 달리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거장의 작품을 취급하는 자의 기품일까. 손님이 들어오든 나가든 그다지 상관하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고 책상에 앉아 펜 끝이 뾰족한 만년필로 무언가 써내려가고 있을 뿐이다. 그 덤덤함이 오히려 편하달까. 베를루스코니처럼 돈을 풀어서 몽땅 사들일 수도 있는 곳이지만, 돈 없이도 우두커니 혹은 차분하게 서서 눈치 볼 것 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는 곳이다.

여기 생폴드방스의 갤러리와 아틀리에 모두 그렇다. 꼭 사들이지 않아도 무료 미술관처럼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 돌이끼가 낀 마을 골목골목 이어진 갤러리들, 제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자그마한 예술 창고들을, 고전적인 작품부터 형식미를 허물어버린 아방가르드한 작품까지, 다양한 예술을 동네를 어슬렁거리듯 돌아다니며 감상하면 된다.

그냥 마을을 한바퀴 돌면 1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다닐 수 있는 작은 곳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발길을 사로잡는 예술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도 모자랄 지경이다. 한 작품 한 작품 보는 데 너무 많은 공력을 쏟는 나로서는, 어느덧 작품을 더 보기가 피로해진다. 하루 더 있을 예정이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자. 골목을 벗어나 다시 햇살이 비추는, 지중해가 보이는, 귀여운 동산이 봉긋하게 솟은 전경을 바라보고 싶다.

서쪽으로 기울어진 주황빛 태양을 보고 걷는다. 불규칙하게 나있는 좁은 골목 어디에나 여전히 인파는 많다. 작은 마을인지라, 금세 앞쪽으로 전망이 확 트이는 곳이 보인다. 불현 듯 그녀는, 함께온 그녀는, 어쩌면 여기에 십 수 년을 계속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녀는, 여전히 생폴드방스의 풍경에 탄성을 지르고 있는 그녀는 왜 수녀원에서 나와 다시 한국에 돌아왔는지 궁금하다.

골목 끝에 다다르자, 저기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다 바람일지 모를 미풍이 슬쩍 볼가를 스친다. 돌로 만든 빽빽한 예술의 숲에서 나와 고개를 돌려 그녀의 말을 듣고 싶어지는 순간, 우리 앞에는 공동묘지가 기다리고 있다.

생폴드방스의 성채 마을 속을 산책하다 바라본 풍경 ⓒ 송주민


생폴드방스 성채 마을에서 본 지중해, 그리고 마을 옆 공동묘지 풍경 ⓒ 송주민


*다음 편에 계속

○ 편집ㅣ박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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