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맹키 와 자꾸 얻어오냐잉?

등록 2015.07.12 16:19수정 2015.07.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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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님이 찢어져 분리된 파리태를 고치고 계신다. ⓒ 김윤희


"이거 현숙 언니가 준 건데요 그 언니가 젊었을 때 입던 옷이래요. 어때요? 잘 어울리죠? 지금 제 말을 듣고 계신 거예요? 좀 봐주세요?"


보름 전부터 잡부로 일하고 있다. 일할 때 입을 옷이 마땅치가 않아 룸메이트의 크고 긴 바지를 질끈 동여매 입고 다녔다. 옷장에는 정장이나 치마 외에는 작업복으로 쓸 옷이 없다.  다행히도 일터에서 알게 된 아주머니에게 청바지 세 벌을 얻었다. 자신이 젊었을 때 입던 것과 딸이 작아서 입지 않는 옷들을 챙겨주셨던 것이다.

옷을 얻어서 기분이 좋아진 나는 집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룸메이트 앞에서 옷을 꺼내 들고 패션쇼를 했다. 허나 나의 룸메이트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도 내가 옷을 들고 서 있으니 고개를 들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표정과 눈빛으로 이런 말을 했다.

'너는 뭘 자꾸 얻어오냐잉?'

엄마 친구분께 얻어 온 바지와 티셔츠가 새 옷 같다. ⓒ 김윤희


나는 재활용품을 선호한다. 옷이나 가방에서 가재도구까지 내가 사용하는 많은 것들이 재활용품이다. 타인이 사용하거나 입던 옷들에 거부감이 없는 것은 어릴 적부터 언니들의 옷이나 물건들을 물려 받아쓰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엄마가 내 몸에 맞게 모든 옷을 수선을 해주어서 큰 불만은 없었다.   

낡은 물건에는 그것을 사용한 사람의 손길이 느껴져서 좋다. 물건이 내 손에 전해지기까지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거나 한 사람이 긴 시간을 두고 오래 사용했을 것이다. 낡았지만 깨끗한 모양으로 내게 전해졌다는 것은 물건을 사용한 이가 많은 애정을 쏟으며 사용했을 것이고, 함부로 물건을 사용하지는 않았으리란 추측도 가능해진다.


물건들이 식물이나 동물처럼 생명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물건을 사용한 사람의 기운이 물건에 담겨져 그 속에서 살아 숨 쉰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도 '손을 탄다'는 말이 이런 의미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그러니 그런 정성스런 물건들이 내손에 들어왔다는 것은 행운인 것이다.        

요즘 많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만큼 또 버려지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져 우리의 눈을 현혹하니 새것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사용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직장생활을 할 때, 돈이 없기도 했고 버려지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구제 시장 나들이는 아마 11년 전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시골로 내려오니 인터넷을 통해서만 구제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시처럼 재활용 센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물물교환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도 않았다. 내가 정보를 모르고 있을 수도 있으니 답답했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을 다른 용도로 재사용하거나 인연이 닿은 이들에게 얻는 방법을 택했다.

한 달 전, 동해 바다가 보이는 고향을 다녀왔었다. 그때 내 짐 가방에는 옷들이 가득했었다. 옷은 낡지도 않고 깨끗해 새 옷 같고, 앞으로 십 년은 더 입을 수 있을 것 같고, 룸메이트와 치수도 비슷해서 얻어 온 것이다. 그런데 룸메이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남이 입던 옷이라서 불쾌하다는 걸까? 아니면 힘들게 먼 곳에서 옷을 들고 오는 수고를 하냐고 속상해하는 걸까? 그의 굳은 표정에도 아랑곳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주절거렸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그러데요. 아저씨가 옷을 사 두고 안 입어서 옷이 넘쳐난다고. 옷을 버릴 거래잖아요. 그래서 제가 달라고 했어요. 옷이 완전 새 거야 새 거. 이거 봐요 새 옷이나 다름없죠? 치수도 딱 맞을 거예요. 왜요? 뭐 어때요 버려지는 것보다 우리가 쓰는 게 더 낫죠. 이게 구제죠. 헤헤"

여러 사람에게 얻고 구제 시장가서 산 옷이다. 나름 옷에 통일성이 있다. ⓒ 김윤희


룸메이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두벌 신사였던 나의 룸메이트에게 여러 벌의 옷이 생겼다. 개량 한복만 입는 그가 스포츠 의류를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옷을 즐겨 입는다. 쉽게 주름이 가거나 찢어질 염려가 없어 일을 할 때 자주 입는 걸 보면 옷을 얻어 온 보람이 있다.

내가 자주 찾아가는 활터에도 재활용 물건이 많다. 책상과 의자에서부터 정수기, 활집, 커다란 테이블 등 대부분의 것들이 여러 사우들이 자신의 집 골방에 갇혀 있던 물건들을 갖고 온 것이다. 굳이 새 것을 사서 돈을 낭비할 필요도 없고, 불필요한 물건 취급을 받다 가치를 부여 받았으니 물건도 좋고 사용하는 사람도 편하니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우리 초파정에서 가장 재활용이 잘 되는 물건 중 하나가 파리채다. 화살과 현이 가장 잘 재활용되기는 하지만 활터이니 당연한 것이다. 활터가 산 아래에 있다 보니 벌레들이 너무 많다. 그 중에서도 파리가 얼마나 많은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온 몸에 달라붙어 사람을 괴롭게 한다. 그래서 파리채는 쉬지 않고 공중에 올려졌다 바닥으로 내리쳐 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채와 마디의 연결 부위가 자주 찢어져 쓰기 불편해졌다. 본드로 떨어진 곳을 붙이기를 여러 번, 끝내 막대와 채가 분리되어 버렸다. 더 이상 본드로 붙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게 얼마 허것어. 그라도 쓸 수 있을 만큼은 써 줘야제. 요즘 사람들은 그냥 막 버리. 이건 돈 문제가 아니여. 많은 것이 넘치니께 아껴 쓰질 않아. 요로콤 손보는 것도 잼나제잉."

사두께서 분리된 파리채를 재 모양대로 하고는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가느다란 철사를 불에 달구더니 활을 만들 때 쓰는 재료를 덧붙여 분리된 파리채를 철사로 엮으셨다. 파리채는 다시 파리를 잡는 도구로 손색이 없게 되었다.

이 파리채를 보름가량 사용하자 조각을 덧댄 반대편 부분이 찢어져 너덜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고문께서 사두님이 덧댄 반대 부분에 또 다른 조각을 덧대어 너덜거리던 파리채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 놓으셨다. 

고문께서 파리채를 고친후 기뻐하시는 모습 ⓒ 김윤희


아마도 파리채 중에 이 세상에서 이 파리채만큼 사랑을 받는 파리채가 또 있을까? 단돈 500원만 주면 살 수 있는 파리채지만 많은 사람의 손길을 받고 파리채로서의 역할을 온전하게 다 하고 있다.

조금 불편하다고, 좀 촌스러운 디자인이라고, 낡아서 볼품없어 보인다 해도 그 물건이 재 기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시 한 번 내 일상을 뒤돌아본다. 내가 무작정 새로운 물건을 사들이려 하지 않았는지?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쌓아두고만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쓰지 않으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너그러움을 발휘한다면 정말 작지만 큰 행복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재활용 #구제 #얻다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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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경의로움에 고개를 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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