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맞겠습니다" 어느 '일진'의 눈물

[소년의 눈물 2-1] IQ139 소년의 절망과 희망이야기

등록 2015.07.22 11:54수정 2015.07.2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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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지옥과 왕따, 일진의 학교폭력과 폭력교사의 고문, 부모이혼과 경제파탄에 깨어진 가정~ 위기청소년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 세품아


경찰과 검찰, 법원은 소년의 죄를 주목하지만 저는 우는 소년들과 같이 울렵니다. 사회적 자폐증을 앓는 소년들을 치유하면서 자립을 돕는 '희망공장'을 만들어 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눠주렵니다.

이 글에 나온 소년은 인터뷰에서 "그동안 저로 인해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죄를 드립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면서 "욕하면 욕먹고 돌 던지면 돌 맞겠습니다!"라면서 눈물 흘렸습니다. - 기자말

"하나님, 저 죽고 싶어요. 저 좀 데려가 주세요."

초등학교 3학년이 일기장에 쓴 기도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소년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공부'라는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창문에서 뛰어내리려고 시도했다가 엄마에게 들키면서 자살 소동으로 끝났습니다. 소년은 왜 자살하려고 했을까요?

화근은 성공지상주의였습니다. 소년의 엄마는 검사 결과 아들의 아이큐가 139로 높게 나오자 명문대를 목표로 세웠습니다. 친구와 노는 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아들과 명문대 진학을 위해 어려서부터 공부 벌레로 만들려는 엄마의 피치 못할 갈등은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원 '뺑돌이'가 된 소년은 숙제와 공부의 노예가 됐습니다. 6학년 때였습니다. 생일 파티에 초대받은 소년은 '오늘 하루, 학원 빠지고 생일 파티 가겠다!'고 말했다가 엄마에게 혼났습니다. 친구마저 빼앗는 공부, 소년에게 공부란 부수고 싶은 장벽이었습니다.

"엄마의 모든 기준은 공부였어요. 공부를 잘해야 서울대에 갈 수 있고,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면서 공부를 강요했어요. 엄마는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공부 잘해야 사랑한다는 말로 들렸어요. 생일 파티 문제로 엄마와 싸운 그날 가출하면서 엄마와의 갈등이 점점 심해졌어요. 학교에선 친구들의 돈을 빼앗고 담배를 피우는 문제 학생이 됐고요. 중학교에 가서는 일진 중에서 가장 센 짱이 됐고요. 그때부터 나쁜 짓을 정말 많이 했어요."


소년은 '일류'가 아닌 '일진'이 됐습니다. 일진 중에서도 짱이 된 소년은 친구들의 돈을 빼앗고, 때리고, 오토바이를 훔치는 등의 사건 사고를 일으키면서 교무실과 경찰서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학생들과 교사 그리고 어른들이 손가락질 할수록 더 거칠게 행동한 소년에겐 '쓰레기, 바이러스, 악의 축'이란 악명이 따라 붙었습니다.

본드 중독 소년, 정신 병원 폐쇄 병동에 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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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청소년들은 왜 생긴 걸까? 위기청소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정부와 사회는 위기청소년들을 외면했다. ⓒ 세품아


"여자 친구를 따라 본드를 시작했는데 장난 아니었어요. 파랑새가 날아다니고, 바람과 향기가 눈에 보이고, 제 몸에서 연기가 나고, 제가 막 날아다니고…."

일진 중학생이 된 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학교가 아닌 골짜기, 절벽, 옥상 등의 으슥하고 위험한 곳에 숨어서 본드를 흡입했습니다. 발을 헛디디면 죽을 수도 있는 아찔한 곳이었습니다. 소년과 일진들은 환각에서 깨어나면 굶주린 짐승처럼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사납게 행동했고, 옥상 난간에 매달려 자살 소동을 벌였으며 달리는 버스에 뛰어들려고도 했습니다.

본드는 피해 망상과 기억 상실, 우울증과 공황, 뇌 손상과 심장 마비까지 일으키는 심각한 유해 물질입니다. 소년의 한 후배는 본드 중독으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본드는 소년들의 괴로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선생에게 매 맞고, 공부 못한다고, 가난하다고 무시 당할수록 소년들은 본드에 매달렸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3년 동안 본드를 하다 중독된 소년은 2010년, 정신 병원 폐쇄 병동에 입원했습니다. 같이 입원한 일진 친구가 병원을 탈출하자 소년의 증세는 더 악화됐습니다. 병원 측은 치료와 통제가 불가능한 소년을 퇴원 조치했습니다. 의사는 소년의 치료를 포기했고, 청소년 상담센터에서 1년 정도 상담했지만 그 또한 소용없었습니다.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소년, 목사에게 1% 희망을 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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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빛과 소금, 부패한 세상과 버려진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 그런데 한국종교가 부패에 편승하고 버려진 소년들은 외면하고 있다. ⓒ 조호진


정신 병원도 상담 센터도 소년을 포기하자 소년의 부모는 막막했습니다. 기독교 교인인 소년의 엄마는 청소년 사역을 한다는 목사에게 아들을 맡겼습니다. 소년은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와 선생 그리고 친구들마저 나를 버리는구나... 외톨이가 된 소년은 학생운동권 출신의, 교인도 거의 없는 개척교회 목사랑 둘이서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아무도 저를 인간 취급하지 않았지만 목사님은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저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기도해주셨어요.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 사람은 목사님 밖에 없을 거예요. 목사님 때문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1% 정도 생겼고, '사람답게 살아보자'가 아닌 '사람답게 살아볼까?'라는 한 문장 정도가 생겼죠."

운동권 목사에겐 아내와 자녀가 있습니다. 그런데 소년을 돌봐야했기 때문에 1년에 일주일 밖에 집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목사와 살면서 작은 희망이 생긴 소년은 학교를 가기로 했습니다. 그때가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소년은 학교에서 흡연, 폭행, 갈취 등을 일으키는 골칫거리였습니다. 소년이 안 보여 학교가 조용했는데 결석한 지 한 달 만에 나타나자 학교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등교한 날이 하필이면 학부모 총회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담임은 소년을 교무실로 불러서 "학부모님들이 너를 보면 싫어하니까 오늘은 집에 가고 내일부터 학교에 오라!"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담임의 말에 화가 났지만 "학교에서 무슨 소리를 들어도 사고치지 마라!"는 목사의 신신당부가 생각나서 겨우 참았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라고 한 마디만 물어봤어도 그렇게 절망스럽진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잘 해보려고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에게 그런 말을 듣고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끝났구나! 하는 절망감도 들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에게 90도로 인사하면서 '지금부터 학교 다니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학교를 나왔어요."

학생을 쫓아내는 학교, 쫓겨나 방황하는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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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술, 본드중독에 취한 위기청소년들. 소년들은 맨정신으로 살 수 없을까? ⓒ 세품아


잠깐, 짚고 넘어 갑시다. 학교는 왜 존재하는 걸까요? 공부 못하고, 가난하고, 말썽 피우면 쫓겨나야만 하나요? 소년처럼 학교에서 쫓겨나 방황하는 청소년이 무려 28만 명이라고 합니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학교 밖 청소년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도 관리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시인이므로 학교장과 교육청 그리고 교육부 당국자에게 시로 질문하니 댓글로라도 답변 부탁합니다.

모범생을
보호하기 위해

우등생을
앞세우기 위해

위기청소년을
모두 쫓아낸 학교
계속 쫓아내는 학교

그래서

일등 학교가
배출한 모범생이
모범 인생이 됐습니까?

우등생이
우등 인생이 됐습니까?

학생에게 학교란 회귀 본능의 연어처럼 돌아가야 할 어떤 곳입니다. 2010년 4월 초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인사하고 나온 소년은 2개월 뒤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학교에 가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거리에서 만난 한 선생이 "너, 학교에 안 다니기로 했다며"라고 말했습니다. 그건 '네가 안 보여서 학교가 조용했는데 왜 다시 나타나니. 제발, 학교에 오지 마라'는 뜻이 담긴 비수였습니다. 소년은 그 선생을 통해 학교에서 쫓겨난 것을 완벽하게 느꼈다고 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중학교에선 징계 당하면 삭발시켰어요. 한 달에 1, 2번 징계 받은 저는 1년 내내 삭발 상태였어요. 체육 선생님은 저를 비롯해 일진 친구들을 태권도부가 옷 갈아입는 곳으로 끌고 갔어요. 거기는 비명을 질려도 밖에서 잘 들을 수 없는 곳이었어요. 선생님은 우리들을 그곳에 끌고 가서 '한강 철교(라는 벌)'부터 시켰어요. 30초 안에 한강 철교 못하면 검도부에서 사용하는 목도로 엉덩이를 때렸어요. 어떤 때는 팬티까지 벗게 한 뒤에 막 때렸어요.

고문도 당했어요.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껴서 막 돌리고, 무릎을 꿀린 뒤에 무릎 사이로 목도를 끼워 넣고는 선생님들이 점프하며 뛰어내렸어요. 아프다고 비명 소리를 지르거나 울면 더 때렸어요. 선생님들은 즐거운지 웃으면서 때렸어요.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그때는 선생님들이 정말 무서웠어요. 아무리 일진이라고 해도 선생님에게 반항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어요. 속으로 내가 왜 이런 학교를 다녀야하지? 저 분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었기에 선생님이지? 그런 반항심이 들었어요."

소년의 고백이 사실이라면 이건 교육 행위가 아닙니다. 일진이라고 해도 이건 아닙니다. 이 정도면 1980~1990년대 고문 경찰의 폭력이고 고문입니다. 폭력 교사와 고문 교사는 학교에 잘 계실까요? 또 다른 피해자는 발생하지 않았을까요? 혹시 체벌 금지 때문에 교육 효과가 떨어진다고 불만을 털어놓진 않을까요? 학생에 대한 교사의 폭력과 고문 행위 시효가 있나요?

추방당한 소년이 학교에 복학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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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학생들을 쫓아냈다. 정부는 학교 밖 소년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예 눈을 감았다. ⓒ 세품아


"학교를 그만둔 그해가 제 인생에서 가장 암흑기였어요. 본드 중독 후유증으로 자기 혐오증과 우울증을 심하게 앓으면서 모든 사람이 저를 적으로 여긴다고 생각했어요. '너는 쓰레기야!'라는 환청이 들리고,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이상한 사람들이 몰려와서 제 가슴에다 망치로 못을 박았어요. 너무 무서워서 잠을 잘 수도 없었어요."

학교에서 추방당한 소년은 그해를 고통 속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2011년, 중학교 3학년에 복학했습니다. 복학한 것은 친구 때문이었습니다. 친구 아빠는 건설 노동자인데 일자리를 찾아 객지로 떠나면 친구는 혼자가 됐습니다.

가난한 데다 공부까지 못하는 친구는 학교에서 왕따가 됐고, 그런 학교가 싫어서 지각과 결석을 자주 하다가 졸업 일수 부족으로 유예됐습니다. 검정고시는 자신 없고, 복학은 싫고, 되는 대로 살겠다는 친구가 불쌍했습니다. 소년이 "내가 복학하면 너도 복학할래?"라고 제안하자 친구는 "네가 복학하면 학교에 갈래!"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래서 1년 후배들과 학교를 다녔습니다.

소년은 지난해에 비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일진 시절에는 선생에게 대드는 것을 멋진 행동으로 여겼는데 목사와 살면서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복학생 소년이 겸손하고 착실하게 학교생활을 하자 선생들도 칭찬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부모와는 여전히 힘든 관계였기에 교회에서 계속 살았습니다.

자해와 난동, 소년은 회복될 수 있을까?

소년이 달라지긴 했지만, 확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소년은 목사에게 "저도 잘 살고 싶어요, 사랑받고 싶어요, 본드 끊고 싶어요!"라는 바람을 털어놓았습니다. 교회가 집이었으므로 그런 기도를 많이 했지만 몸에 밴 문제 행동은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목사가 교회를 비우면 이때다 하고 본드를 하고, 일진 친구들과 사고 쳐서 경찰서에 붙잡혀가고, 교회에서 난동까지 부렸습니다. 

"본드 끊으면서 금단 현상이 나타났어요. '나 같은 놈이 변할 수 있을까?', '나 같은 놈은 불가능해!'라는 생각에 제가 너무 미워서 거울을 보며 제 얼굴을 마구 때리고, 거울을 깨며 난동을 부렸어요. 그런데도 목사님은 화를 내거나 쫓아내지 않고 제 옆에 다가와서 다독여주고, 손잡고 기도해주고, 노래해 주었어요. 목사님의 진심을 더욱 느끼면서 삶에 대한 희망이 5~10%, 20~30%씩 늘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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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위기청소년들은 어떻게 될까? 본드중독과 비행중독 소년들을 과연 회복시킬 수 있을까 ⓒ 조호진


소년은 2012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본드를 완전히 끊었습니다. 그해 연말에는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부모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됐습니다.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엄마와 아들이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사랑이 많은 분이셨어요. 명문대에 보내려는 욕심이 엄마와 저를 아프게 했던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간 것은 엄마가 부드러워졌기 때문이에요. 더 이상 공부를 강요하는 엄마가 아닌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해해주고 양보해주는 부드러운 엄마로 변하면서 대화가 잘 되고 있어요."

소년은 아빠가 자신에게 관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년의 아빠는 돈을 벌기 위해 객지 생활을 했기에 아들과 함께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대다수 아빠가 그렇듯이 소년의 아빠 또한 조금 무뚝뚝합니다. 그런데 아빠에 대한 감정이 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10년 어느 날, 항우울제 약을 먹어도 증세가 심해져서 3일치 약을 한꺼번에 먹으면서 더 미쳤어요. 제 얼굴을 제가 막 때려서 광대뼈가 심하게 부을 정도로 심각해지자 목사님이 아빠에게 전화를 했어요. 아빠는 저에게 관심조차 없는 분이니까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타난 아빠가 울면서 '힘든 일이 있으면 아빠에게 이야기 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아빠도 괜찮은 분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소년은 과연 본드 중독과 정신 질환 그리고, 비행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소년의 이후 이야기는 <소년의 눈물 2-2화>에서 이어집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위기청소년 #본드중독 #비행중독 #일진 #폭력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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