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베트남전에서 '위안소 기획'은 했었다

[단독-한국군 터키탕 존재했나 ④] 주월미군은 영내에 '특별서비스 터키탕' 운영

등록 2015.08.03 15:07수정 2015.08.0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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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황색주간지 <주간문춘>(週刊文春, 슈칸분슌)은 봄특대호(4월 2일자)에 '역사적 특종 - 한국군의 베트남인 위안부'라는 기사를 실었다. 필자인 야마구치 노리유키(山口敬之) 당시 도쿄방송(TBS) 워싱턴지국장은 미 국립문서보관소(NARA)의 베트남전 관련 공문서와 참전 미군의 증언을 근거로 한국군이 베트남 여성을 고용한 '증기탕'(steam bath) 형태의 '한국군 전용 위안소'(welfare center)를 운영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비밀 문건이 폭로 박근혜의 "급소"'(米機密文書が暴く朴槿?の"急所")라는 선정적 부제를 단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한-일관계 정상화(정상회담)의 전제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해온 박근혜 정부의 도덕성과 협상력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다. 하지만 <산케이>(産經) 같은 극우매체와 혐한(嫌韓) 여론을 부추기는 황색매체를 제외한 거개의 일본 매체들은 이 보도를 무시했다. 사실을 입증할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 매체로는 유일하게 <한겨레>가 '일본 언론의 "한국군 터키탕", 괘씸하지만 반박이 어려운…'(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688415.html, 4월 25일자)이라고 인용 보도함으로써 국내에 알려졌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팩트 체크'(사실 검증)의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주간문춘>이 '특종'의 근거로 삼은 NARA 문서와 베트남전 당시 사이공(현 호찌민)에 거주한 관련자들의 증언을 검증취재한 결과를 4회에 걸쳐 심층 보도한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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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문춘>의 '한국군과 베트남위안소' 기사는 역사 사료를 왜곡한 허위보도임에도 일본의 극우 매체들은 관련 기사를 무차별적으로 인용해 보도하고 있다. 사진은 일본 인터넷 사이트 iRONNA 화면을 캡춰한 것이다. ⓒ iRONNA


* 3편(베트남전 당시 주월미군 '난잡한' 증기탕 운영했다)에서 이어진 마지막 회입니다.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전용 터키탕을 운용했는지'를 3회에 걸쳐 탐사취재한 결과, 필자는 <주간문춘> 기사가 역사 사료를 짜깁기한 왜곡보도라고 결론을 내렸다. 또한 한-일간에 외교적으로 민감한 역사적 사실에 관한 일본 언론 보도를 사실로 간주해 검증없이 인용보도한 <한겨레> 도쿄특파원의 보도도 오보라고 지적했다.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사안이어서 필자는 구체적으로 실명을 거론하며 왜곡보도 또는 오보임을 지적했으나 거론된 언론사 어느 쪽도 반론이나 이의를 제기해오지 않았다. 오히려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전용 터키탕을 운용했는지'를 취재하다가, 미군이 베트남에서 사단 단위로 '마사지 팔러가 딸린 스팀 베스'를 운영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 한 독자는 <Beyond Combat: Women and Gender in the Vietnam War Era>(Heather Marie Stur,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에 담긴 미 의회 보고서를 인용한 필자의 번역상의 실수를 지적하면서 요긴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미국 워싱턴 D.C 근교에 사는 '죤 황'이라고 밝힌 이 독자는 1960년대 한국에서 근무한 미군이 당시 영내에서 '마사지 팔러가 딸린 스팀 베스'(steam bath and massage parlor)를 이용한 경험을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OhmyNews International 오마이뉴스 국제판)에 실은 적이 있다고 제보해주었다.

주한미군 터키탕 '특수 마사지'(special massage)에 5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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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주한미군으로 복무한 조 베세라(사진 왼쪽에서 세번째)가 오마이뉴스(국제판)에 기고한 기사. 주한미군 기지 영내의 터키탕을 이용한 경험담이 실려 있다. ⓒ 김당


검색해보니, 조 베세라(Joe Becerra)가 2005년 4월 15일 <OhmyNews International>에 'Tour of Duty in Korea, 1965'(1965년 한국에서의 군복무 여행) 제목으로 기고한 1700단어 분량의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이 기사에는 1965년 당시 주한미군이 부대 영내에 '터키탕'이라고 부르는 '마사지 룸이 딸린 증기탕'을 운영한 실태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1965년 주한미군으로 복무한 베세라의 경험담에 따르면, 당시 주한미군은 모든 기지의 영내에 한 개 이상의 증기탕을 두고 있었고, 서울 용산기지 같은 중요 기지에는 증기탕 시설을 세 개까지도 두고 있었다. 베세라는 기사에서 퀀셋(길쭉한 반원형의 군대 막사) 건물로 된 증기탕 내의 개인용 사우나와 마사지 룸마다 온갖 종류의 로션과 베이지 오일, 바셀린 용기와 함께, 젊고 매력적인 한국 아가씨들이 있었다고 묘사했다.

베세라는 또한 터키탕 시설의 경우, 마사지를 포함한 증기탕 일반요금은 3달러이지만, 일단 방안에 들어가면 어디를 가든 안내자가 있어서 3달러짜리 일반 서비스가 끝나면 추가요금(5달러)을 내고 '특수 마사지'(special massage)를 받을 것인지 물어본다고 기술했다. 그는 기지 정문 출입구에는 젊은 군인들의 성적 욕망을 5달러짜리 서비스로 해소해주는 30~40명의 한국 여성들이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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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월미군 용역회사에서 위생반장으로 근무한 강영남씨의 증언. ⓒ 김당


베세라의 기억과 당시 주월미군 용역업체인 PA&E에서 위생반장으로 일한 강영남(75)씨의 기억을 비교하면, 증기탕 시설 설비와 운영 시기, 서비스 요금 등이 일치한다. 베트남의 제3군구 제2야전군 작전지역(사이공 지역)에 주둔한 보병9사단과 제25사단의 부대 위생관리(식수 공급 및 쓰레기 처리)를 담당했던 강씨는 "한국군과 달리 미군은 미군만 입장하는 '스팀 배스'를 사단 영내에 운영했다"면서 이렇게 증언했다.

"내가 담당했던 미군 보병9사단 사령부는 (사이공 남쪽의) 붕타우 가는 국도에 롱탄이란 지역에 있었다. 미군은 영내에 스팀 배스를 운영했는데 퀀셋 막사로 돼 있었다. 사우나 입장료는 5달러였다. 9사단으로 출퇴근하는 젊은 베트남 여자들 50, 60명 정도로 기억한다. 요즘 말로 유사성행위가 이뤄졌지만 섹스도 했다. 그러니 당시 (한국군과 미군이 이용한) 터키탕 요금이 38달러였다는 <주간문춘> 보도는 말이 안된다."

미군은 '터키탕' 운영했는데, 한국군은 안 했을까?

그렇다면 미군은 1960년대 당시 한국과 베트남에서 터키탕(마사지 룸이 딸린 증기탕)을 부대 안에서 운영했는데, 한국군은 정말 그런 '유사성행위 시설'을 운영하지 않았을까? 필자가 취재한 바로는 한국군 부대 내에서 터키탕 시설을 운영한 사례는 없었다. 당시 참전 군인들도 주로 사이공 시내의 사창을 이용해 성욕을 해소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도 왜 일본 언론들은 한국군이 베트남전에서 '한국군 전용 위안시설'을 운영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물론 이런 보도와 주장의 밑바탕에는 제2차대전 당시 구(舊)일본군 종군위안부(성노예) 문제에 대한 책임을 희석하려는 '물타기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럼에도 의심을 살 만한 여지는 있다.

예를 들어, 한국군이 주고객이었던 사이공 시내의 'PHAN-Tan-Gain'이란 터키탕은 베트남 여성이 운영했지만, 한국군 장교들과 관계가 돈독한 한국인 남자가 뒤를 봐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한국군 전용 증기탕'으로 잘못 알려졌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의심의 소지는 해방 전에 일본군-관동군에 복무하면서 위안부 제도를 경험한 일본군-관동군 출신 군 간부들이 6.25 한국전쟁 당시에도 일시적으로 중대 단위의 '위안부대'(위안소)를 실제로 운영했고, 이후 베트남전에서도 위안시설 운영을 계획했던 것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2002년 2월에 ▲ 한국군도 위안부 운용했다 "베트남전 때도 '위안대' 운용 계획" 등으로 기사화한 바 있다.

불과 5년 전까지 일본군이나 관동군에 복무했던 한국군의 핵심 간부들은 1950년 6.25가 발발하고 전쟁이 장기화하자, 전투력 손실 방지와 사기 앙양을 구실로 한국군 위안부를 운영했다. 또 이들은 건국 이후 처음으로 베트남에 대규모 전투병을 파병하게 되자 같은 이유로 위안소 운영을 기획했던 것이다. 물론 한국군 위안부는 그 규모나 강제성에서 일본군위안부(성노예)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 발상은 유사한 것이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참전한 장군들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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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 주월한국군사령관과 웨스트모어랜드 주월미군사령관. 그 뒤에 선글라스 낀 사람이 신상철 주베트남대사이다(출처는 필립 존스 그리피스 사진집). ⓒ VIETNAM INC


한국전쟁 당시 중대장으로 복무한 김희오 장군(소장 예편, 종합31)은 회고록에서 "부대에 소위 '제5종 보급품'(군 보급품은 1∼4종밖에 없었음)이라는 이름으로 위안부들이 배정되어 와 분대 막사를 위안소로 대용했다"면서 "이는 과거 일본군 내 종군 경험이 있는 일부 간부들이 부하 사기앙양을 위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증언했다.

한국전쟁 당시 연대장으로 복무한 채명신 장군(중장 예편, 육사5기)은 자신의 회고록 <사선을 넘고 넘어>에서 당시 겪은 위안부 제도에 대해 "드러내고 싶지 않은 군부의 치부이지만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 당시의 암울한 현실을 예로 들어 불가피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당시는 전쟁이 장기화함에 따라 많은 젊은 여자들이 생계를 위해 미군 부대에서 몸을 팔고 전선 근처에까지 밀려드는 시절이었다. 당연히 사창에는 성병이 만연했고 사창을 방치할 경우 성병으로 인한 전투력 손실도 우려되었다. 따라서 군에서 장병들의 사기 진작과 전투력 손실 예방을 위해서 위안대를 편성해 군의관의 성병검진을 거쳐 장병들이 이용케 한 것이다."

베트남전에서 주월사령관으로 복무한 채 장군은 "월남전 때도 한국군이 사기 진작을 위해 위안부 운영을 계획했는데 미군이 동의하지 않아 운영하지 못했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의 개입 및 동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한국군이 베트남전에서 위안소 운영을 계획했던 사실은 이번 취재에서도 재확인되었다.

베트남전 위안소 기획자는 일본군 출신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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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용 전 베트남 공사(90, 육사7기)의 증언. ⓒ 김당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 무관과 정무-경제공사로 장기근무해 '베트남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이대용 전 공사(90, 육사7기)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 한국군도 베트남전에서 위안소 운영을 검토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베트남 파병 초기에 일본군 출신 모 장군이 베트남에 와서 신상철 대사한테 과거 일본군의 예를 들며 우리도 파월장병들의 후생복지를 위해 위안소 같은 것을 운영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그러자 신상철 대사가 펄쩍 뛰면서 '그런 시설을 군에서 운영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다. 채명신 사령관도 '베트남에 휴가 장병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민간 시설이 많은데 군에서 운영하는 것은 안 된다'고 반대했다."

– 어디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으며 위안소 설치를 제안한 일본군 출신 장군은 누구인가?
"당시 신상철 대사 방에서 직접 들었다. 다만, 개인의 명예와 관련된 것이라 누구인지는 얘기할 수 없다."

신상철 대사(소장 예편, 육사2기)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 새벽, 육군본부 주번 총사령으로 북한의 남침을 최초로 보고했으며, 그해 10월 제7사단장으로, 백선엽 장군의 제1사단과 함께 평양을 점령해 시가행진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신 대사는 이후 공군으로 옮겨 공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신 대사도 작고해 이대용 공사가 입을 열지 않는 한 '위안소 기획-제안자'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기획'과 '실행'은 천양지차다. 그런데 일본의 극우 언론들은 기획단계에서 머문 것을 마치 실행된 것처럼 보도했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문제에 대한 책임을 희석하기 위한 의도적인 '물타기'라는 논란에 앞서 명백한 오보다.

또한 역사적 사실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한국전쟁 당시 위안부를 운용하고 베트남전에서 위안소를 기획한 이들은 일본군이나 관동군 출신이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국군 창설 당시에 친일 청산이 확실히 이뤄졌다면, 일본 군국주의의 산물인 위안부라는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베트남 위안부 #채명신 #신상철 #이대용 #터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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