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물그릇에 어떻게 물을 담을까, 화를 잠재워라

[108산사순례 23] 천안 태화산 광덕사

등록 2015.07.30 20:43수정 2015.07.30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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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 광덕사 범종각 지붕에 마무리로 장식된 절병통. ⓒ 정도길


바다가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런데 파도가 인다. 피곤한 바다는 누워 조용히 쉬고 싶지만 그냥 놔두지를 않는다. 바람이 말썽이다. 바람은 바다를 향해 심술을 부린다. 참다못한 바다는 파도를 일으켜 세웠다. 화가 난 모양이다. 높고 거친 파도는 배를 침몰시키고, 육지에 닿아 맘껏 화풀이에 혼 줄을 놓았다.

이성을 잃은 바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바다는 넋을 놓았다. 저지른 일이 너무 커 버렸다. "바람이 날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원망한다. "바람이 날 건드렸어도, 조금만 더 참을 걸 그랬어"라며 탄식한다. 하지만 후회를 해도 소용없는 일.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다시 담는 것도 불가능하다. 담을 그릇도 깨져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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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광덕사 일주문 ⓒ 정도길


사람 사는 세상도 이와 마찬가지다. 연일 터져 나오는 불미스러운 소식은 자연현상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층간소음 문제로 불거지는 이웃 간의 갈등,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분풀이를 하는 보복운전 등 인간은 다양한 형태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바람이 잠자는 바다를 성가시게 했더라도, 어느 정도에서 그쳤더라면 더 큰 화는 생기지 않았을 터. 참지 못한 분노는 단순한 화풀이를 넘어 사람의 목숨까지 잃게 하는 경우가 많다. 원망도, 탄식도, 무슨 소용이 있으랴. 활화산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네 삶.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다. 천년고찰 지장 대가람인 천안 광덕사로 수행을 떠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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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병통 한옥형태에서 귀하게 볼 수 있는 절병통. ⓒ 정도길


천안 태화산에 자리한 광덕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다. 652년(진덕여왕 6) 자장이 창건하였고, 832년(흥덕왕 7) 진산이 중수하였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충청도와 경기지방에서 가장 큰 사찰 중 하나였다. 사찰소유의 토지가 광덕면 전체에 이르렀고, 89개나 되는 부속암자도 거느렸다. 또한 누각이 8개, 종각이 9개, 만장각이 80칸, 천불전도 3층으로 돼 있었다니, 어느 정도 큰 절이었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보물로는 제390호(천안 광덕사 고려사경), 제1246호(천안 광덕사 감역교지), 제1247호(천안 광덕사 조선사경), 제1261호(광덕사노사나불괘불탱)이 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는, 제85호(광덕사 부도), 제120호(광덕사 삼층석탑)가 있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는, 제52호(광덕사 사자), 제246호(광덕사 대웅전), 제247호(광덕사 천불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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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나무 광덕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398호인 400년된 호두나무. ⓒ 정도길


천안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호두과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두 번 사 먹지 않았을 여행자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 유명한 호두나무가 광덕사 앞 입구에 딱 버티고 섰는데 나이가 400살 정도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오랜 세월 버텨온 힘겨움으로, 가지를 잘라내고 수술한 흔적도 보인다. 호두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다. 전설에 의하면 약 700년 전 고려 충렬왕 16년(1290) 9월, 영일공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두나무의 어린나무와 열매를 가져왔다고 한다.


어린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 선생의 고향집 앞뜰에 심었다. 천안에서는 우리나라에 호두나무가 전래된 시초가 됐다고 하여 호두나무 시배지로 부르고 있다. 광덕사 호두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98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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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천안 광덕사 보제루를 지나면 대웅전이 나온다. ⓒ 정도길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 우리나라 최초의 호두나무 시배지

'광덕사'라는 편액을 단 건물인 보화루 밑을 지나 계단을 올라 절 마당에 섰다. 바로 앞 대웅전에는 법회가 한창이다. 두 손 모아 합장기도하며 그 자리에 잠시 머물렀다. 그런데 머리 뒤쪽이 간지러워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 뭔 이런 일'이 있나 싶었다.

알고 보니 보화루 2층에서 대웅전 법회에 동참하는 불자들이 나를 보고 있었던 것.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대웅전을 향해 기도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기도하는 불자들 앞에서 얼쩡거렸으니 얼마나 머쓱했겠는가. 다시 합장하며 고개 숙여 미안한 마음의 예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광덕사를 찾은 지난 11일(음력 5월 26일)은 선망부모, 수자령, 일체 인연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백중영가천도 49일기도'가 시작되는 입재일이다. 회향은 8월 28일(음력 7월 15일)이다. 사찰에서는 매년 백중날을 회향일로 맞춰 49재를 지내고 있다. '백중'은 명절의 하나로서 음력 7월 15일로 백종, 중원, 또는 망혼일이라고 한다. 불가에서는 백중날을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 하며, 이날은 불교 5대명절의 하나로 정성을 다해 예를 올리고 있다. 우란분절에 관해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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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49재 입재일을 맞아 불자들이 기도에 열중이다. ⓒ 정도길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신통제일인 목련존자. 어느 날 목련존자가 신통력을 내어 천상세계를 보니 아버지만 천상락을 즐기고 있을 뿐, 어머니는 지옥 아귀도에 떨어져 거꾸로 매달린 채 극심한 고통과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다. 아귀란 머리는 큰 산과 같고, 배는 수미산만큼 크며, 목구멍은 바늘구멍 만큼 좁아, 음식을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 바늘구멍같은 목구멍으로 음식이 얼마만큼이나 넘어가겠으며, 수미산 같은 큰 배를 어떻게 채울 수 있겠는가. 목련은 애끓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구원을 빌었고,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심에 감동한 부처님은 비책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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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사자 문화재자료 제52호(광덕사 사자). ⓒ 정도길


"네 어머니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너 혼자의 힘으로 구제할 수가 없다네. 하안거가 끝나는 날, 여러 곳에 많은 스님들이 모였을 때, 지극한 정성으로 공양을 올려라. 그러면 스님들의 위신력으로 어머님께서는 지옥에서 빠져 나와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니라."

부처님으로부터 방편을 들은 목련은 정성스런 음식을 차려 공양을 올리며 천도를 빌었고, 기도한 공덕으로 어머님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했다. 우란분절의 '우란'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분'은 '구제한다'는 뜻으로, '재'를 베풀어 지옥에 떨어져 고통 받고 있는, 먼저 가신 부모를 구제하는 의미로 불자들에게는 중요한 행사로 치러지고 있다. 대웅전은 불자들의 기도로 법당 안을 가득 메웠다.

한국의 미, 사찰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절병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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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사 광덕사 절 마당은 잔디 밭으로 조성됐다. ⓒ 정도길


광덕사 절 마당은 그리 넓지는 않지만 잔디로 조성됐다. 매일 같이 스님들이 아침 마당을 쓰는 의식에 비추어보면 특별나다. 108기도에 앞서 전각 구경에 나섰다. 그런데 사찰여행에서 처음 보는 조형물이 눈에 띈다. 한옥형태의 건물에서도 이런 장식품은 처음 보는 일이다. 절병통이다. 절병통이란, 사모정이나 팔모정 등 모임지붕의 꼭지 점에 설치하는 항아리 형태의 장식기와를 말한다.

네 개 이상의 추녀마루가 있는 지붕은 꼭지 점이 생기는데, 이 지점을 어떻게 덮어 마무리 하느냐가 관건이다.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하고, 무게 중심으로 균형도 이뤄야 한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이 절병통이다. 네 곳의 지붕을 안정적으로 지탱하게 하고, 외관도 멋진 기교를 부리는 절병통 장식. 한옥 형태의 집에서만 볼 수 있는 예술작품이 아닐까 싶다. 절병통의 재료는 기와를 비롯하여 석재나 청동으로도 만들어 장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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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전 광덕사 천불전 가는 길. ⓒ 정도길


대웅전과 약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천불전과 산신각에도 들렀다. 전체적으로 절터 규모는 넓은 편이다. 새로운 전각 한 동도 한창 건축 중에 있다. 광덕사의 주 법당은 대웅전. 정면 5칸, 측면 3칸,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모양새는 화려하지도, 촌스럽지도, 않은 수수하다는 느낌이다.

불전에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가 협시불로 있다. 대웅전 앞 계단에는 작은 돌사자 두 마리가 양쪽을 지키고 있다. 용맹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희밀건한 모습에 나태한 모습이다. 저런 표정으로, 무슨 사찰을 지킬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강한 표정을 해야만 사찰을 지키는 것은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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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기도 108기도를 마치고 29번째 염주 알을 꿰었다. ⓒ 정도길


이날 하루 동안 두 번째 여는 <108산사순례> 기도여행. 경전을 읽고 108배를 올렸다. 불교에는 세 가지 독이 된다는 '삼독(三毒)'이라는 것이 있다. 탐욕(貪慾)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를 말하는데, 줄여서 탐·진·치라고 한다. 이 중 '진에'에 해당하는 것으로, '성내는 일'을 뜻한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성을 내며 살아갈까. 인간과 인간이 얽히고 성긴 사회에서 성 안내고 살기는 어려울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성냄은 상상할 수 없는 큰 화를 불러 온다는 사실을 알면 마음을 다스려야 할 법이다. <108산사순례> 그 스물아홉 번째 기도여행은 천안 광덕사에서 '성내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깨달음과 다짐으로 마무리하며 29번째 염주 알을 꿰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블로그 <안개 속에 산은 있었네>에도 싣습니다.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절병통 #49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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