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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백선생', 아내는 떠나고 남편은 밥하고

[TV리뷰] 여전히 '집밥 노동' 중인 현실의 주부들에겐 판타지 같은 예능

15.07.31 11:44최종업데이트15.07.3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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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방송된 tvN <가이드> ⓒ CJ E&M


7월 23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tvN 새 예능 프로그램 <가이드>는 예고부터 권오중, 안정환, 박정철 등 세 사람의 '가이드' 과정에 초점을 맞춘 내용을 선보였다. 생전 처음 주부들을 안내하러 나선 이 초짜 가이드들이 예상과는 다른 여행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으로 인해 '멘붕'에 빠지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작 <가이드> 첫 회의 내용을 채운 것은 세 사람의 가이드가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것도 방송으로만 보던 잘 생긴 세 남자 가이드를 대동하고 외국 여행을 떠난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들의 뭉클한 여행기가 화면을 채운다.

'난생 처음' 여행을 떠난 주부들

되돌아 보건대, 70이 넘은 할아버지들의 여행 <꽃보다 할배>가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제 아무리 당대의 스타로 한 평생을 살아왔다고 해도, 평생을 '스타' 혹은 '배우'의 이름을 걸고 '일만 하느라' 여행 한번 제대로 못 다녀 본 '할배'들이 같은 길을 오래 함께 걸어온 친구들과 어쩌면 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여행을 떠난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감동적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그저 권오중, 안정환, 박정철이라는 유명인의 이름값에 기댄 여행 프로그램이겠거니 했던, 혹은 그런 식으로 홍보를 했던 <가이드>가 정작 방송 내용에서 '주부들의 힐링 여행'에 초점을 맞춘 것은 현명한 전략이다.

물론 초보 가이드 세 사람의 매력을 강조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저 좀 웃기는 연예인 권오중,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안정환, 그리고 아직은 <집밥 백선생>에서 어눌하고 진지함 이상의 그 무엇을 보여주지 않았던 박정철. 그들은 <가이드>를 통해 '성'에 밝은 이상 '수석 가이드'로서의 책임감을, 그저 잘생긴 축구 선수 이상의 매력적인 넉살과 오랜 외국 경험에서 오는 여유로운 대처 능력을, 그리고 어눌함을 넘어선 초짜 가이드로서의 순수함과 세심함을 한껏 드러냈다.

어떻게 저런 조합을 만들었는지 의문이 들 여지도 없이 세 사람은 불철주야, 심지어 알레르기까지 감수하며 가이드로서의 본분에 충실했다. 가끔 함께 한 주부들이 '어떻게 연예인들이랑 여행을!'이란 감탄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연예인이란 느낌이 들지 않게 만들어줬다.

무엇보다 <가이드>의 매력은 여행을 떠난 여덟 명의 주부들이다. 30년 동안 주부로 살다 처음 여행을 떠난 왕언니, 30년 만에 처음으로 미용실을 닫은 미용사, 오랜 가이드 생활도 접어두고 늦둥이를 키우느라 고군분투했던 50대 주부, 30에 홀로 되어 급식실 도우미로 두 아이를 키우느라 여유가 없었던 50대 엄마 가장, 일과 가정을 병행하느라 아등바등 살아왔던 50대의 커리어우먼, 농사 지으랴, 5남매 키우랴, 시부모님 모시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던 40대 주부, 아들은 벌써 고2인데 권고사직을 앞둔 '미생' 40대 직장인 등. 그 누구하나 똑같은 사연이 없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그래서 각별했던 여덟 명의 주부들이 여행을 떠난다.

한 번도 남편과 아이를 떼어놓지 못해 걱정스러워 하던 주부는 그런 우려가 무색하게 너무 행복해서 아이와 남편을 잊었다고 하고, 가이드 생활을 잊지 못하던 주부는 모처럼 가이드의 내공을 뽐낸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시부모님께 둘러싸여 살면서도 외로워 노래방 앱에 마음을 의지했던 주부는 모처럼 자신의 말에 귀기울여주는 누군가를 만나 행복하단다. 그렇게 길지 않은 4,50 평생을 자기 자신보다 '가족'을 앞세워 살던 주부들은 멋진 가이드가 배려해 주는 난생 처음 외국 여행에 잠자는 시간조차 아까워한다.

'주방'에 들어간 남편들

tvN <집밥 백선생> ⓒ CJ E&M


그렇게 주부들이 여행을 떠난 한편에선 남편들이 주방에 들어선다. <집밥 백선생>을 둘러싸고 '단맛' 논란을 위시하여 다양한 이슈들이 있겠지만, 그 본질은 바로 '주방으로 들어간 남자들'이라 할 수 있다. 요식업계 대표 백종원을 차치하고, <집밥 백선생>의 출연자들을 보자. 기러기 아빠 윤상, 경제 문제로 인해 별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김구라, 그리고 아내의 잦은 출장으로 홀로 식사를 때울 때가 많은 박정철, 거기에 실질적 싱글은 손호준 한 사람 정도이다.

즉 누군가의 남편이고 가장이지만 돈을 버는 것 외엔 무능했던 남자들이 칼 잡는 법부터 시작하여, 장을 보고, 이제 하나 둘씩 요리를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백선생이 가르쳐 준 레시피로 뚝딱 요리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 그들의 입맛도 갈수록 세련되어져 간다. <마이 리틀 텔레비젼> 이래로 사람들이 열광했던 백종원 요리의 본질은, 집에서도 내가 별로 어렵지 않게 '그럴 듯한' 집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였다.

그렇게 TV 속 남편들은 요리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가족을 위해 봉사해 온 아내들은 자신만의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2014년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10세 이상 인구가 하루 평균 식생활을 위해 투여하는 시간은 남성 10분, 여성 1시간 8분이다.

맞벌이를 하면 남편은 8분으로 줄어들지만, 여성은 1시간 28분으로 늘어난다. 심지어 여성만 버는 집에서도 남성은 28분을 하는 '집밥 노동'을 여성은 1시간 25분이나 한다. 이렇든 저렇든 현재 대한민국 여성들은 그 말이 좋은 '집밥'의 노동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레디안> 김원정, '집밥 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참고)

그런 면에서 <집밥 백선생>이 '단맛' 등 많은 논란거리에도 주방의 문턱을 낮추는 데 공헌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턱을 낮춘들 여성의 처지가 나아지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1월 15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4,50대 고용율이 각각 65.1%, 60,9%로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가계 소득 정체와 불안정한 노후 준비로 인해 취업 시장으로 나온 중년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다. 즉, 오랜 시간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왔던 주부들은 이제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에 다시 돈벌이에 나서고 있으며, 현실에서 여전히 가사의 부담도 쉬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바로 통계적으로 증명된 대한민국 주부의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가이드>는 출연한 주부들의 말대로 '꿈'같은 이야기다. 평생 가사와 육아에, 그리고 돈벌이에 여유가 없던 주부들에게 '자신의 돈을 출혈하지 않는' 외국 여행이라니 말이다. 더구나 '멋진' 연예인이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는. 그런 면에서 어쩌면 <가이드>는 <꽃보다 할배>보다 더 뭉클한, 감개무량한 판타지다.

<가이드>와 <집밥 백선생>의 출현은 고달픈 현실의 정점에 그 요구가 닿아있다. 대리 만족 예능의 구현이요, 판타지다.

가이드 집밥 백선생 박정철 안정환 권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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