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피의자 수갑 조사, 변호인 퇴거는 위법"

내란사건 추가 수사과정에서 불거져... "검찰 관행에 경종 울린 것"

등록 2015.07.31 20:24수정 2015.08.03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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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검찰의 '수갑 조사' 관행과 변호인 참여권 제한에 법원이 또 한 번 제동을 걸었다.

지난 28일, 수원지방법원 황재호 판사는 수원지방검찰청 홍승표 검사가 조사 중 수갑을 풀어달라는 피의자 박민정씨의 요청을 거부한 일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피의자 박씨의 준항고 신청(검사 등의 처분에 대하여 취소 또는 변경을 법원에 청구하는 불복신청방법)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홍 검사가 이의를 제기한 박치현 변호사를 조사실 밖으로 끌어낸 일 역시 형사소송법이 보장한 변호인의 피의자신문 참여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았다.

옛 통합진보당 당원 박씨는 이석기 전 의원 등의 내란사건과 관련해 지난 5월 13일 구속됐다. 이 사건을 맡은 홍 검사는 5월 26일 피의자신문을 위해 수원지검 영상녹화실로 박씨를 불렀다. 그런데 담당 교도관은 입실 직전 박씨의 포승은 풀었으나 수갑은 놔뒀다.

조사가 시작되자 박 변호사는 홍 검사에게 수갑을 풀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홍 검사는 먼저 인정신문(주민등록번호·주소 등을 확인하는 절차)을 한 다음 교도관에게 수갑을 풀어달라고 요청할지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박 변호사가 약 15분 동안 계속 수갑을 풀어달라고 항의하자 홍 검사는 그가 수사를 방해한다며 강제로 조사실 밖으로 끌어냈다.

이 일이 알려지자 대한변호사협회는 검찰이 피의자의 방어권과 변호인의 변론권을 중대하게 훼손했다며 성명을 냈다. 또 "헌법재판소도 2005년 5월 26일 '검사가 피의자 신문을 할 때는 원칙적으로 (수갑이나 포승 등) 계구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며 "이번 사태는 피의자의 인권 보호 및 변호인의 변론권이라는 헌법의 원칙과 직결된다"고 비판했다.

수원지검은 "홍 검사가 피의자의 자해 가능성, 검사 공격 여지 등을 판단해야 해 잠시 수갑 푸는 것을 보류했는데도 변호인이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수갑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홍 검사도 준항고 사건 심리 과정에서 비슷하게 주장했다. 수갑을 풀기 전에 피의자의 도주나 자살, 자해,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검찰의 잘못된 관행, 조목조목 따진 법원


하지만 28일 법원은 "그 자체로 타당하지 않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미리 기존 수사기록을 보거나 교도관에게 묻는다면 충분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재호 판사는 홍 검사가 특별한 이유 없이 피의자의 수갑을 풀지 않고 조사를 진행한 것은 구금 처분에 해당하는 만큼 그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박씨의 도주나 자해 등을 막을 인력이 부족했던 데다 피의자신문 며칠 전 함께 구속 중인 다른 피의자가 조사 도중 자해했다는 이유만으로 수갑 조사를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법원은 인정신문 시간이 아무리 짧더라도 수갑을 풀지 않고 시작하는 것도 문제라고 봤다. 황 판사는 인정신문이 피의자신문 절차의 일부이기 때문에 수갑 등은 미리 풀어야 한다고 했다. 또 수갑 조사 자체가 위법하므로 박 변호사를 조사실 밖으로 끌어낸 일 역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박치현 변호사는 3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검찰의 관행에 법원이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헌재 결정이 있은지 꽤 됐는데도 아직 많은 검사가 수갑을 채운 채 조사를 진행하다가 중간에 (수갑을) 풀어주는 것으로 안다"며 "이번 결정은 피의자신문 절차 안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위법하고 아무리 시간이 짧아도 정당화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줬다"고 덧붙였다.

또 "피고인의 방어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원리에 따라 형사소송법이 변호인의 참여권을 규정했지만, 검찰은 내부 규정을 근거로 변호인의 참여권을 축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검찰이 진술거부권 행사 권유를 수사방해로 취급해 변호사들의 징계개시신청을 하는 등 변호인들을 위축시켰다"며 "법원이 이번에 이 문제를 직접 다루진 않았지만, 변호인의 문제 제기가 정당하다면 계속해도 수사방해가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검찰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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