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진보를 믿은 노교수, 그가 남긴 것

등록 2015.08.02 11:35수정 2015.08.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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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 유성호


백발이 성성한 성공회대 석좌교수. 한국의 대표적 마르크시즘 경제학자이자 최초로 칼 마르크스 <자본론>을 완역한 번역가. 이 수식어들의 주인공 김수행 교수가 지난달 31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고인의 나이 향년 72세.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철학자 마르크스와 한 평생을 함께했다. 그가 런던에서 수학할 당시 한국은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의 권위주의 산업화 시절을 겪고 있었는데, 당시 한국에서 엄격히 통제 당하던 <자본론>은 영국 책방에서 너무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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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 비봉출판사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큰 충격에 빠졌고, 귀국 후 어떻게 국민에게 마르크시즘을 쉽게 전할 수 있을지 큰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귀국 후 한신대 무역학과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정년 퇴임으로 마친 뒤, 최근까지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마르크시즘 강의와 연구에 힘써왔다.

고인이 최근까지 왕성한 강의를 해왔기 때문에, 그 별세에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 하고 있다. 고인의 업적 중 최고로 기억되는 건, 단연 <자본론> 완역. 한반도는 해방 이후 좌우 이념의 공개적 동거와 대립의 시대를 겪으면서 활발한 담론 교환이 이뤄졌고, 마르크시즘 이념도 그 중 하나였다. 이후 분단을 겪었고, 이승만 정부는 1948년 여수·순천 반란 사건을 빌미로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이듬해 남로당 등 133개 공산주의 정당과 단체들을 불법화했다.

이후 좌파 이념은 억압의 대상이 됐고, 마르크시즘 연구도 음성적으로만 진행됐다. 그러다 민주화를 맞이했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등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 이어지면서, 사상의 자유는 조금 열렸지만 마르크시즘 연구는 잠시 위축됐다.

이런 추세에서 고인은 꿋꿋이 맑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자본론>을 영어 중역해 세상에 내놓았다. 현재 국내에 <자본론> 완역은 고인의 것과, 독어 대본을 번역한 강신준 교수의 것 정도가 있다. 고인의 업적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는 2008년 세계적 금융 위기 이후, 마르크시즘 담론이 다시 활발해지면서 우리의 초라한 마르크시즘 연구 성과를 직시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꿋꿋이 국내 마르크시즘 보급에 힘써온 그는, 여전히 우리가 잘 모르는 마르크스의 면모들이 있음을 한 평생 알려왔다. 그리고 그가 알리고자 한 마르크스는 2000년 영국 <더 타임즈> 설문조사에서 인류 역사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1위로 선정됐으며, 2005년 영국 <BBC> 방송국 설문조사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1위에 뽑혔다.


세계인들은 마르크스를 기억하고 있다. 우리 또한 역사의 진보를 믿은 한 백발의 노교수를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은 그가 마지막까지 세상을 향해 날린 한 발 중 하나이다(관련 기사 : "유신공주로 자기 세계에 갇혀... 박 대통령 기본개념 전혀 없어").
#김수행 #마르크스 #맑스 #자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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