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왜 곰이 하늘 위로 올라갔어?"

[체험] 예천천문우주센터, 나이 상관 없는 가슴 찌릿한 감흥

등록 2015.08.04 12:43수정 2015.08.0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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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의 일부다. 시인이 살던 그 시절에는 밤하늘의 별을 통해 끝없는 서정적 상상을 펼칠 수 있었나 보다. 별은 시인을 키우고, 그렇게 자란 시인은 별을 노래했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별을 바라보지 않는다. 아니, 본다 해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별은 사람들에게서 잊혀 가고 있다.

그런 별을 보러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큰 아이 덕분이다.

"아빠, 별자리가 뭐야? 왜 큰 곰이랑 작은 곰이 하늘 위로 올라갔어?"

아이들의 황당하고 끝없는 질문에 대답하거나 둘러대는 내공이 어느 정도 쌓였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공법으로 치고 들어오는 아이의 순수한 공격에 방어막은 쉽게 무너져 내렸다.

"아빠도 잘 모르겠다. 우리 별자리 찾으러 가볼까?"


큰 아이 말 한마디에 떠난 천문대 가족캠프

그렇게 했던 약속이었고, 그래서 떠난 천문대 가족캠프였다. 그러나 콧노래를 부르며 떠나야 할 별자리 여행은 남쪽 어딘가에서 올라온다는 태풍과 하늘을 뒤덮은 구름으로 인해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당신이 고른 날짜야, 라며 불쾌지수 상승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아내에게, 3주째 날씨가 이 모양이거든, 이라며 나 또한 짜증 섞인 답변으로 응수했다. 뒷좌석에 앉아 마냥 신이 난 아이들은 밤만 되면 별은 무조건 뜨는 줄 아는 코흘리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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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마을 뿅뿅다리 회룡포 마을로 건너가는 구멍 뚫린 철판다리. 예전 외나무 다리의 고풍스런 멋은 없지만 지나가는 이를 위해 기다려주는 정겨움은 여전하다. ⓒ 이정혁


예천에 도착하니 두어 시간쯤 여유가 있다. 예천에서 유명한 곳은 바로 회룡포와 삼강주막, 그리고 용궁 순대 거리이다. 회룡포 마을로 가서 아이들을 강물에 던져 넣고, 뿅뿅다리에 앉아 바람을 맞으니 한낮의 더위가 좀 사그라진다. 벽면이 유명인들의 서명으로 가득 찬 용궁의 한 허름한 식당은 3대째 운영하는 순대국밥 집이다. 여전히 한 그릇에 4500원이지만, 국밥 가득히 인심은 넘쳐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천문우주센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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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대 전경 천문우주센터중 천문관측실이 있는 천문관 전경. 뒤로 어둑한 하늘이 불길하게 보인다. ⓒ 이정혁


천문우주센터의 공식 일정은 저녁 8시에 시작한다. 그전에 도착해서 저녁을 해결하거나 자유 시간을 갖는다. 바비큐도 미리 주문하면 숯불을 준비해준다. 삼복더위에 고기 굽는 일이 만만치 않음에도 그 역경을 고스란히 감수하려는 한 가족이 보인다. 불을 앞둔 아버지의 굳은 이마에서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뚝뚝 떨어지건만, 뒤편에서 익어가는 목살을 바라보는 아내와 아이들의 표정은 그저 해맑을 따름이다.

천문캠프는 간단한 오리엔테이션과 망원경 조작법을 배우는 것에서 출발한다. 파인더를 통해 관찰하고자 하는 별 혹은 별자리의 위치를 대략 감지하고, 렌즈의 조리개를 조절하여 정밀하게 찾는 작업이다. 예닐곱 살 아이들이 수행하기에는 다소 벅찬 과정인지라, 아비의 작은 눈을 희생해 가며 작동법을 열심히 익혔다. 망원경을 하나 장만할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아내와 눈이 마주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기 검열은 무서운 일이다.

신의 계시처럼 구름이 걷히다

흐린 날씨 탓에 관측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주최 측의 설명이 있던지라 캠프에 참가한 대부분의 가족은 심드렁하게 시늉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치 신의 계시처럼 구름이 걷히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지난 3주간 주말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없었는데, 여러분은 참 복이 많은 것 같다는 해설자의 흥에 겨운 설명을 들으며, 착하게 살면 언젠가는 보답을 받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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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 조작법 배우기 망원경이 정확히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는 꼬맹이들의 망원경 사용법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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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 공부하기 센터측의 팀장님이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별자리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가족캠프에 참가한 가족들 모두 목덜미의 통증 따위 아랑곳 하지 않고 밤하늘의 별들을 따라 그리고 있다. ⓒ 이정혁


드디어 별자리를 찾아 떠날 시간. 천문센터 옥상에 마련된 관측실로 가기 전에 플라네타리움이라는 천체투영실에 들러 영상을 관람하며 별들과 별자리에 대해 미리 공부한다. 거의 누운 자세로 보는 영상들은 원하는 위치와 시간에 따른 천체와 행성의 운행 등을 실제처럼 볼 수 있는 장치여서 어른인 내가 봐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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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태양 관찰 모습 천체 망원경을 통해 태양의 흑점까지 관찰 할 수 있다 ⓒ 이정혁


보조관측실이라 이름 붙여진 옥상에 오르니 한낮의 구름은 간데없고, 보석 알갱이들이 밤하늘에 펼쳐져 있다. 안내를 맡은 팀장이 능숙한 솜씨로 레이저 빔을 이용하여 별자리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끄덕인다.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맑은 날에는 달 옆쪽으로 토성이 잘 보인다는 것과 북두칠성의 여섯 번째 별은 한 개가 아닌 두 개라는 점 등이다. 시력이 월등히 좋은 사람은 북두칠성의 여섯 번째 별이 두 개라는 것을 맨눈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날씨가 맑은 날에만 보인다는 토성을 직접 망원경으로 보자 정말 사진에서나 보던 주변의 띠까지 관찰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토성이라는 말보다 '돼지코'라는 은어를 사용한다는데, '돼지코'가 보이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로 날씨를 구분하기도 한단다. (실제 망원경에 보이는 토성은 돼지코처럼 구멍이 두 개 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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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 렌즈에 떠오른 달의 모습 렌즈에 떠오른 달을 직접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촬영일 2015년 7월 25일 저녁 10시경)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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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의 은하수 설명이 필요없는 여름 밤 하늘의 은하수 ⓒ 예천천문우주센터


은하수 보고 가슴이 '찌릿'

그리고 이어진 달 관찰. 망원경 렌즈 속으로 휘영청 밝아온 저 달을 어찌할꼬? 천문대에 와서 달 하나만 제대로 보고 가도 큰 수확이라는데, 우리는 대풍년을 맞은 것이다. 렌즈 속의 달은 스마트 폰으로 촬영해도 선명하게 나올 만큼 분화구까지 또렷하게 보였다. 달의 인력에 두 눈이 빨려 들어가는 듯 짜릿한 느낌이랄까? 이미 아이들의 존재 따윈 잊힌 지 오래고,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나이 먹은 피터팬의 심장만이 뛰고 있었다.

북두칠성의 숨은 비밀을 알고, 여러 별자리에 눈을 뜨고, 토끼가 살 수 없는 달 표면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았지만, 그 날 밤 천체 관찰의 최고봉은 바로 은하수였다. 밤이 깊어져 심야 관측(밤 11시 30분부터 12시까지로 선택사항임)을 위해 다시 관측실로 올라갔더니 저녁때보다 훨씬 많은 별이 보였는데, 그것이 바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빛의 강물, 즉 은하수였다.

그 시간까지 잠 안 자고 따라온 꼬맹이들도 고개 아픈지 모르고 입을 벌린 채 하늘을 응시했다. 녀석들에게는 도시의 불빛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린 별들의 존재감이 경이로움과 신비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은하수는 나이 든 소년에게도 가슴이 찌릿할 정도의 감흥을 안겨주었다. 별을 잊고 산 세월이 얼마던가? 그저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뭉클하게 하는 힘, 그것은 우주의 법칙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절대적인 무엇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불을 끄고 누웠지만, 은하수는 쉽게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천장을 야광별 무늬로 도배한 센터 측의 넘치는 센스도 한몫했겠지만, 그 감동을 잠으로 덮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컸다. 피곤하다며 일찍 자리에 누운 아내를 억지로 깨워 옥상으로 올려보낼 정도였으니, 두말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별을 보고 싶다고 조르는 아이가 있다면, 지금 당장 천문대로 향할 것을 추천한다. 소중한 아이에게 별을 보여주고 싶은 부모도 마찬가지다. 가서 직접 보라, 그리고 온몸으로 느껴라. 온 우주가 정성껏 차려놓은 화려한 만찬을 한입씩 베어 무는 그 감동의 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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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관측실의 대형망원경 대형 망원경을 통해 낮에도 태양뿐만아니라 별을 관찰할수 있다. 사진은 금성 관찰하는 모습이다. ⓒ 이정혁


#예천천문우주센터 #별자리 관찰 #은하수 #천체망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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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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