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범칙금 70%는 경찰 몫" 황당한 부패근절책

[해외리포트] 캄보디아, 범칙금 인센티브 상향 조정 논란... 시민들은 부정적

등록 2015.08.05 16:26수정 2015.08.0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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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 높은 교통경찰들의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캄보디아 정부가 교통범칙금 중 70%를 장려금으로 주기로 발표해 논란이 되고 있다. ⓒ 박정연


지난해 2월 중국 설날. 이른 새벽부터 오전 내내 100여 명이 넘는 경찰들이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있는 어느 부잣집 대문 앞을 서성였다. 이들 중에는 군복을 입은 이도 적지 않았다. 이들이 정초부터 한꺼번에 남의 집으로 몰려든 이유는 뭘까? 놀랍게도 이들이 이곳에 모인 목적은 따로 있었다. '앙 빠오'라 불리는 중국 설 세뱃돈을 받기 위해서다.

캄보디아 부자 중 한 명인 초응 소페압은 중국 화교 출신 여성 재벌로, 매년 중국 설 때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색 봉투에 세뱃돈을 넣어 집으로 찾아오는 경찰이나 군인들에게 나눠주는 행사를 해왔다. 이 봉투 안에는 늘 빳빳한 5만 리엘짜리 새 지폐가 들어 있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만 3천 원 정도다.

지난해에는 이 일이 현지 언론을 통해 알려져 비난 여론이 들끓기도 했다. 국가 공무원의 체면을 구긴, 한 마디로 '수치스러운 일'이란 의견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한편에선 '오죽 박봉이면 일선 경찰들까지 거지처럼 부자들에게 손을 벌리겠냐'고 옹호하는 동정론이 일기도 했다. 또 일부 재야단체는 이런 근본적 책임이 경찰공무원들의 처우 개선에 무관심한 정부의 무능함에 있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결국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자, 이 재벌은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듯 올해 설에는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세뱃돈을 나눠 주지 않았다. 그러자 이날 아침 내내 기대감에 부풀어 문 앞을 서성이던 경찰들은 낙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아쉬운 듯 입만 쩝쩝 다시며 발걸음을 돌렸지만, 근처 또 다른 부잣집에서 세뱃돈을 나눠준다는 소식이 퍼지자 또다시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월급'만으론 도저히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평범한 캄보디아 경찰 공무원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가난한 나라, 박봉에 시달리는 현지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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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내무부 산하 프놈펜 광역경찰국 전경 ⓒ 박정연


캄보디아는 국민소득이 1000달러 남짓한 가난한 나라다. 노동자 최저임금이 128달러인 이 나라에서 일선 경찰들의 평균월급은 고작 150달러 수준이다. 각종 수당을 합쳐도 200~250달러 안팎의 월급을 받는다. 도시에서 이 돈으로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최근에는 장바구니 물가마저 가파르게 올라, 5년 전보다 100달러로 구매할 수 있는 식료품이 절반도 안 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공무원 월급은 정부가 국가 예산 등을 고려해서 해마다 인상분을 책정하는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대다수 공무원은 늘 박봉에 시달린다. 프놈펜 북부 뚤꼭구에 소속된 지역 교통경찰 쏘은 나릇(43)씨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한 달 대략 200~220달러 정도를 집에 가지고 간다고 했다. 하지만 이 돈으로는 아내와 중고등학교 다니는 두 자식을 먹여 살리기도 빠듯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캄보디아 경찰공무원들은 자연스레 부정한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소개된 바 있는, 캄보디아 국제공항에서 외국인에게 1달러 급행료를 요구하는 관행이 대한민국 외교부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라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관련기사 : 캄보디아 공항 '웃돈' 관행, 정말 한국인 때문?).

도로의 숨은 권력자 교통경찰

고인 물이 썩듯 30년 넘는 훈센 정권의 장기 독재도 이 나라를 동남아 국가들 중 가장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국제 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부정부패지수는 전 세계 조사국 175개 국 중 156위에 머물렀다.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경찰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도 심한 편이다. 따라서 힘없고 평범한 시민들에게 하늘색 경찰제복은 늘 두려움의 대상이다. 외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외국인 운전자들 사이에 캄보디아 교통경찰들은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교통경찰들은 외국인 운전자로 보이면 무조건 차부터 세운다. 교통법규를 위반하지도 않았고, 운전면허증이나 차량등록증 등 합법적인 서류를 갖고 있어도 이런 저런 핑계와 구실을 들어 금품을 요구한다. 통상 현지인에게 부과하는 벌금의 최소 2, 3배에서 많게는 무려 10배까지 요구하기도 한다.

사실 캄보디아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 이런 불쾌한 일을 한두 번 이상 경험하지 않은 운전자는 거의 없을 정도다. 그나마 외국인은 좀 나을 수도 있다. 외국인들은 항의라도 하지만, 현지인 운전자들은 고압적인 교통경찰의 기세에 눌려 대꾸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말해 도로 위의 무소불위 권력자(?)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교통경찰들도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다. 고위 공무원이 탄 차나 고급 차량이다. 특히 억대를 호가하는 값비싼 외제 SUV차량이 나타나면 교통경찰들은 오히려 못 본 척하거나 적당히 통과 시킨다. 이 나라에선 대부분 돈을 가진 자들이 권력도 함께 갖고 있거나, 권력과 유착관계가 심하다. 괜히 건드렸다가 자칫 본전도 못 찾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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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경찰은 외국인 운전자에게 벌금 영수증도 발급하지 않은 채 수 배 이상의 벌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박정연


이 나라에선 경찰만큼 군인들의 힘도 막강하다. 그 사실을 입증하듯, 빨간색과 파란색이 들어간 군용차량 번호판도 도로 위에선 일종의 무사통행증(?)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민간인 중에는 적당히 뇌물을 주고 군인들이 사용하는 차량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불법을 저지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반 차량을 모는 평범한 여성들 중 보조석 앞자리에 일부러 남편이나 가족의 고위경찰제복을 눈에 잘 띄게 걸어놓고 다니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상황이 이러니 교통경찰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절대 고울 리 없다. 그럼에도 현지 경찰들은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갈수록 교통단속을 강화하고 딱지를 떼는 데 혈안이 되어가고 있다.

골목에 몰래 숨어 있다가 단속하는 함정단속도 흔하다. 그렇다면 이들이 교통안전 지도이나 도로통제와 같은 업무가 아닌 교통위반차량 범칙금 딱지를 떼는 데만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이 나라에선 단속 교통경찰이 교통 벌칙금이나 각종 벌금으로 걷어 들인 금액 중 50%를 합법적인 수입으로 챙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인센티브인 셈이다.

교통범칙금이나 벌금이 그들의 월급과 맞먹는 부수입으로 직결되다 보니 교통단속에만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바람에 교통경찰들은 교통위반 딱지를 떼기 좋은 장소를 두고 자리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교통이 혼잡한 시내 교차로 같은 신호위반 딱지를 떼기 좋은, 소위 알짜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교통경찰들 사이에선 이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상납이 이뤄지기도 하고, 서로 프리미엄을 사고판다는 소문도 돈다.

경찰 부정부패 막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안은?

이런 가운데 교통경찰들의 부정부패 관행을 근절 시키고자 캄보디아 당국이 최근 특별한 대책을 마련해 현지 운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교통 범칙금이나 벌금으로 걷어 들인 수입의 70%를 교통경찰들에게 인센티브 방식으로 주기한 것이다. 지금보다 20% 인상한 안이다. 게다가 2016년 초부터는 벌금도 지금보다 단계적으로 5배 가량 올리기로 했다.

현재 안전벨트 미착용 시 부과되는 범칙금이 미화 1.25달러인데, 내년 초부터 5배인 6.25달러로 인상된다. 그중 70%인 4.38달러를 담당경찰은 자기 몫으로 가져갈 수 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지금 받는 월급보다 부수입이 훨씬 더 커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7월 27일(현지시각) 캄보디아 내무부 경찰국 티 롱 부국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이러한 인상 조치는 2016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전체 걷어 들인 범칙금이나 벌금 중 70%는 수당으로 주되 나머지 30% 중 25%는 근무 경찰서의 각종 물품구입 및 업무비로 사용하고 나머지 5%는 재정부에 납부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티 롱 부국장은 "이러한 조치로 경찰들의 생활이 안정되는 한편 교통단속이 강화되어 안전사고 방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선 교통경찰들은 이 소식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최근 만난 현지 교통경찰 초응 폴라(32)씨도 기대가 큰 듯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생활이) 훨씬 나아질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교통안전 분석가 차리야 이어씨 역시 최근 현지 영자신문 <프놈펜 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교통경찰들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수입을 얻게 되어, 그동안 낮은 월급을 충당하기 위해 부정부패에 기대는 일도 점차 없어지게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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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교통경찰의 역할에 대한 내용. 당국의 인센티브 정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 박정연


그러나 이번 정부 발표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현지 운전자는 물론이고 외국인 운전자들도 이번 정부 결정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현지 일본인 잡지 편집장 나오 기요노(42)씨는 공식 벌금이 올라간 만큼 외국인들에게는 요구하는 벌금 액수가 더 올라갈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또 다른 교민 김재옥씨도 "그동안 낸 부당하게 낸 벌금도 많은데 경찰들 배만 더 불리게 될 것 같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정부의 인센티브 인상 정책이 부정부패 단절이라는 당초의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도 쏟아져 나왔다. 현지 언론인 요윽 데소폿(42)씨 역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의 인센티브 정책이 시행되면, 교통경찰들의 수익만 늘 뿐 부패를 근본적으로 막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부정부패를 합리화하는 명분만 가져다 줄 것이다. 게다가 일선 교통경찰들이 교통사고예방 같은 업무에 소홀해지는 대신, 개인 수입이 확실히 보장되는 교통 범칙금이나 벌금을 매기는 데만 오히려 더 혈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보다 교묘한 방법으로 온갖 트집을 잡아 돈을 뜯어낼 것이 분명하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캄보디아 #박정연 #교통경찰 #70% 인센티브 #프놈펜 경찰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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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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