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색깔 지우기'가 세월호 참사 불렀다

[서평] 권력과 진급을 향한 별들의 전쟁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

등록 2015.08.04 14:45수정 2015.08.0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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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500톤급 이상 선박에 대해 전 세계 어디서든 조난이 발생하면 즉각 청와대가 이를 파악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 있었다면. 만약 해경의 주요 경비정에 설치된 CCTV 화면을 청와대가 직접 볼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었다면. 그랬다면, 세월호가 가라앉는 걸 그리도 허망하게 지켜보고만 봤을까.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논의하자는 게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위기관리센터에 이런 시스템을 마련해 놓았었다. 해난사고가 발생하면, 청와대가 그 상황을 얼마든지 모니터링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랬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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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권력과 진급을 향한 별들의 전쟁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 ⓒ 메디치미디어

군사문제전문가 김종대는 저서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 노무현 정부의 색깔 지우기에 집중하다 보니, 국가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위기관리의 연속성과 국가 보위의 기본을 망각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국가위기관리센터 핵심 요원들에게 보직 해임 통보와 함께 중앙공무원연수원에 입교해 교육에 참가하라 명했다. 그날 밤 9시 뉴스에는 생뚱맞게도 '정부가 무능한 퇴출 공무원을 재교육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위기관리센터는 위기관리상황실로 바뀌고, 센터장 자리도 행정관급으로 격하됐다. 국가 위기나 재난 상황에 대비하던 상황판은 가려지고 대신 각종 물가지수나 증권지수를 표기하는 새로운 데이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 조직의 첫 성과는 누리꾼 '미네르바'를 구속한 일이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이 '업적' 덕분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란 발언을 할 수 있었다. 멋진 콤비플레이다.

부임 6개월 육군참모총장이 전역지원서 낸 사연


'국가안보'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자청하는 정권에서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책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은 바로 그 이면에 숨겨진 사정을 솎아낸다. 군 최고 정점에 자리한 장군들의 숨겨진 비화를 들며 실상을 파헤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책에 담긴 주장을 단순한 '위기론'이 아닌 엄중한 '실제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누가 진짜 '국가안보'를 생각하는지.

위기관리센터가 위기관리상황실로 격하된 이유는,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노무현 지우기'의 일환이었다. 안보를 중시한다고 외치면서 행동은 정반대였다. 국민의 목숨보다 전 정부의 흔적을 지우고 싶었다. 장군들도 그에 휩쓸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군에서도 덩달아 난리가 난다. 전 정권에 줄을 대던 장군들은 인사에 불이익을 받고, 쓸쓸히 퇴장했다. 이를 지켜보는 장군들도 자연히 몸을 사렸다. 지금 우리 군에 '정치장교'들이 득실대는 이유다.

군인은 그들이 주적이라고 말하는 북한을 바라봐야 하는데, 이런 인사 풍토는 그 시선을 청와대로, 국방부로 향하게 했다. 여기에 육군 야전의 작전 출신들이 군의 거의 모든 핵심 요직을 장악함에 따라 다양한 전문성이 존중되는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이 동질화되는 이른바 '집단사고'의 위험성이 커진 것은 안보에 매우 불길한 조짐이었다. -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에서

지난 2010년 12월, 부임한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황의돈 육군참모총장이 전격 경질된다. 시작은 신문기사였다. 같은 해 12월 9일 <조선일보>는 갑자기 8년 전 용산 삼각지 빌딩 매입 사실을 들춰내며 '부동산 투기 의혹'을 보도했다.

책에 따르면 <조선일보> 고위 관계자들은 "우리는 대장 하나쯤은 너끈히 날릴 수 있다"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 주변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결국 나흘 뒤, 황 총장은 국방부장관에게 전역지원서를 제출했다.

황 총장은 부임하면서 "앞으로 나는 청와대 실세 누구의 입김에 구애받지 않고 인사를 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청와대는 '황 총장을 한번 손보겠다'고 벼르고 있었고, 이 발상을 결국 비열한 방식으로 표출했다. 저자는 이 사건을 "날조와 음해로 군을 길들이는 후진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정치권력의 횡포"라고 규정했다. 

미군장교 "한국군이 이라크군보다 못하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런 일들이 왜 문제인가.

군인이 가장 위험한 결정적 순간에 몸을 사리고 자신만 살 기회를 엿본다면 이미 군인이 아니다. 군인의 군인다움이 사라진 빈자리에 명예와 권력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결코 영광이 아니다. 이런 군대는 군대가 아니라 군중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 정치권력은 군인에게 군인다움을 보여줄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정권의 이해득실에 따라 군인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장군의 명예를 존중하기보다는 군인을 줄 세우겠다는 의도가 깔린 잘못된 군관리다. -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에서

책은 장군들이 외부 요인에 의해 받는 정치적 압력을 주로 다룬다. 이는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구조적인 문제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장군들 스스로도 바뀌어야 한다고도 지적한다. 전시작전권 문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어떤 장교도 자신의 군대를 남이 지휘하고 통제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상하게도 미군이 한국군 작전을 통제해주길 바란다. 책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다음날 열린 한미연합사 간부회의에서 연합사 정보작전부장 존 맥도널드 소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이라크의 신생 군대도 자기 목숨이 걸린 상황이 되면 스스로 판단한다. 그런데 어제 합참에서 뭘 해도 되느냐는 전화가 매 시간, 매 분 수도 없이 왔다. 어떻게 한국군이 이라크군보다 못하단 말인가?" -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에서

이쯤에서 생각나는 연설이 있다. 책임은 지기 싫고 권리만 누리려는 이들을 우리는 흔히 '무임승차자'라고 부른다. 국가 안보는 그 어느 자리보다 막중한 책임감이 필요한 자리다.

"위에 사람들은 뭐했어. 작전통제권, 자기 나라 자기 군대 작전통제권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나 국방장관이요, 나 참모총장이요.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 자기들이 직무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 노무현 전 대통령, 2006년 12월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 연설'에서

여전히 부끄러운 줄 모르는 '무임승차자'들은 군에서 사고가 터지면 이를 숨기기에만 급급하다. 영관은 장군이 되고 싶고, 장군은 장관이 되고 싶다.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사병들만 더욱 몰아붙이고 통제하려 든다. 내부 압력은 쌓이고 증기를 내뿜다 터진다. 이 때문에 앞길 창창한 청년 몇이 목숨을 잃었던가.

이를 개선해야 할 국방부는 절대 외부의 훈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갈 길은 멀어진다. 국민 모두가 아는데 자신들만 모른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국민은 결코 우매하고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2014년 3월부터 5월까지 이어지는 정국(세월호 참사-기자 말)에서 우리 안보와 도덕의 경계는 무척 모호했고, 여러 사람을 혼란스럽게 했다. 여기서 청와대를 비롯한 집권세력에게는 국가 기강을 유지하고 정부의 위신을 세우는 데 안보의 위협은 매우 긴요하게 활용될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즉 국민에게 북한의 위협을 수시로 일깨우면서 경각심을 불어넣고자 하는 일련의 활동은 국가 기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발상은 일반 국민 대중이 우매하고 나약하면서 불완전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나온다. 반명 국정을 주도하는 지도층은 명령하고 조작하고 윽박지르는 특권이 있다는 내재적 결론을 이끌어낸다. -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에서
덧붙이는 글 <위기의 장군들> (김종대 지음 / 메디치미디어 펴냄 / 2015.05 / 1만6500원)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 - 권력과 진급을 향한 별들의 전쟁

김종대 지음,
메디치미디어, 2015


#김종대 #메디치미디어 #위기의 장군들 #시크릿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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