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내 낡은 기억들의 타임캡슐

서산 부석사 템플스테이

등록 2015.08.12 15:32수정 2015.08.1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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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연못에 피어있는 어리연꽃 ⓒ 권순지


열어놓은 문 바깥에서 들리는 빗줄기 소리가 요란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차분했다. 내 입은 녹차잎을 우려낸 차를 조용히 삼켰고, 양쪽 귀는 바쁘게 소리를 주워 삼켰다. 한쪽 귀로는 쉴 새 없이 내리는 빗소리를 삼켰고, 다른 한쪽 귀는 스님께서 가만가만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빠짐없이 삼키려 애썼다.


"인생이 꿈이라 생각하고 살아요. 그럼 편해요. 꿈에서는 누가 나한테 욕하면 그렇게 쉽게 화가 나지 않잖아요."
"그저 꿈이었구나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잖아요."

내 한쪽 귀에 내리꽂힌 스님의 말씀은 다른 한쪽 귀에 들리던 빗소리까지 정지 시킬 만큼 크게 다가왔다. 그저 삼키는 것이 아까워 자꾸만 곱씹었다. 힘들 때마다 꺼내 듣고 싶었다. 요즘 부쩍 심하게 스트레스였던, 사소한 것에도 주체할 수 없이 소용돌이쳤던 감정이 꿈 이었다면 조금 달랐을까?

뜨겁게 내리쬐는 불볕만큼이나 치열한 연년생 아이들과의 시간들 속에서는 몸도 감정도 좋건 좋지 않건 쉴 틈이 없었다. 오롯이 혼자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오라며 남편이 자신의 여름휴가의 반절을 내게 선물했다. 얼떨결에 휴가를 얻었지만 선택은 망설임 없이 부석사 템플스테이였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한 휴가가 오기 한 달 전, 온 가족이 부석사를 찾은 일이 있었다. 뚜렷한 원인은 없어도 분명하게 느껴졌던 부석사에서의 반나절 동안 평화는, 그 곳을 떠난 뒤에도 계속 잔상으로 남았다. 그 곳이 주는 남다른 기운은 내 금쪽같은 휴가의 발길을 무조건 이곳으로 하기에 충분했다.

사찰에서의 일상 그리고 감상


충남 서산 도비산 자락에 위치한 부석사는 산을 끼고 있는 높은 지대에 위치해서인지 구름이라도 많이 끼게 되면 하늘인 것처럼 느껴졌다. 구름이 걷혀 환상을 접는 게 아쉬웠던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구름 속에서 걷다 보면 실제로 하늘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 기분은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아쉬울 법한 그런 기분이었다.

공양시간에 맞춰 공양청에 가면 입맛에 맞는 소박하고 건강한 음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해준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하게 먹을 수 있었지만, 과하지 않은 메뉴가 마음에 들어 더 맛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열차게 내리쬐는 여름 햇빛이 무섭지 않을 정도로 그늘이 되어주는 나무 밑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그림 그리는 게 지치면 고마운 남편에게 편지도 썼다. 사찰 곳곳에 피어있는 갖가지 종류의 야생화를 찾아 걷다가 넋을 놓기도 했고, 싱그러운 허브 잎을 따먹는 재미도 있었다.

저녁 예불을 한 뒤에는 조용히 사찰 경내를 산책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하였다. 아무런 생각도, 특별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음에도 하루를 충실히 보냈다.

어둑어둑한 밤이 되자 고요한 산사에 이름 모를 산새가 드문드문 울었다. 황토로 정성껏 바른 벽이 사방으로 둘러싸인 그곳에 내가 누워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창살과 문, 거기에 덧대어진 손으로 찌르고 비벼 구멍 하나쯤 내보고 싶은 전통한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이 분명 낯선 것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안했다. 아파트에 사는 길고양이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섬칫했던 밤의 기억은 온데 간데 없었다. 간혹 모기도 바람처럼 간 곳 모르게 날아다녔다.

분명 집에서였다면 모기를 꼭 잡고 자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마음이 불편했을 터인데, 어쩐 일인지 그 곳에서는 모기마저도 내버려두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모기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이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쉬지 않고 열심히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도 느꼈다.

완벽한 적막속의 고요함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자연의 소리들이 줬던 묘한 감상이 있었다. 산사의 여름밤에 들렸던 그 소리들은 아주 오래되고 낡은 서랍에서 꺼내든 빛바랜 사진을 마주했을 때 느낄 법한 그리움이었다. 돌아갈 수 없어서 더 그리운, 너무 그리워 울컥하고 울음을 토해낼 듯한 감상을 불러일으킨 소리들이었다. 도시의 여름밤보다 조금 더 시원하고, 조금 더 고요한 평화 속에서 낡은 기억을 곱씹었다.

기억의 밤이 된 산사의 밤

내 유년기 기억은 대부분 시골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학에 가면서 집에서 나와 혼자 살기까지 농촌의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그 영향으로 우렁이 들어간 된장찌개를 먹으면 논에서 우렁을 잡았던 기억이 났다. 또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그림책에 등장하는 소를 보면서 어릴 적 집에서 기르던 소가 새끼를 낳느라 새벽부터 힘겹게 울어대던 그 소리가 생각나기도 했다.

마당 텃밭에서 기르던 가지를 따서 그대로 입에 베어 물던 기억이 난 날엔 시장에 가서 가지를 사가지고 와 그냥 먹기도 했다. 그때 그 맛이 아니라 실망한 적도 있었다. 근래에 들어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편하긴 하지만 답답한 아파트의 삶에 지치면 시골마을에서 자랐던 유년 시절의 향수가 그리워지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내게 산사에서 들리는 밤의 소리는 특별했다. 잠들기 싫었던 어느 날 밤, 불 꺼놓고 각자의 침대의 누워 동생과 끝말잇기를 하던 그 밤에 우리의 목소리와 함께 속삭였던 귀뚜라미의 목소리. 그 밤은 가을 밤이었나보다.

고등학교 때 만났던 남자애와 헤어지고 그 방에서 울던 날에도 같이 울어주던 소쩍새의 울음소리는, 집 뒤꼍으로 난 내 방 창문을 통해 나지막하게 들려왔었다. 사춘기 시절 매일 밤 듣던 라디오의 음악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던 여름밤의 매미들은 그 울음의 절정을 내게 들려줬다.

템플스테이를 위해 지정받은 작은 방이 마치 어린 시절 지냈던 내 방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산사의 여름밤은 내게 꼭 맞는 밤이었다. 그날 밤, 잠들면 책가방을 메고 낡은 대문을 열며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모습이 보이는 꿈을 꿀 것 같아 조금은 두근거리며 잠이 들었다.

한옥에 대한 오래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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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템플스테이, 한옥으로 마련된 숙소 ⓒ 권순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날, 산사에서의 마지막 날엔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방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툇마루가 있었는데, 그 툇마루에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기만 해도 그 시간이 온전히 나만의 것 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왓장 사이사이에 맺혀있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한옥에 살고 싶다는 갈망까지 일었다.

어린 시절 한옥에 살 때에는 한옥이 참 불편하고 싫었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까지도 우리 시골집은 한옥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보이는 오른쪽의 작은 별채에는 부모님과 우리 남매가 살았고, 마당 깊숙이 들어가면 할머니가 지내셨던 안채가 있었다. 우리가 살던 별채엔 어린아이들이 있어서 그랬는지 일찌감치 보일러가 있었지만 안채에는 아궁이가 있었다. 그 아궁이에서 불을 때서 밥을 짓기도 했었다. 점점 현대화 되어가고 있던 시골마을의 집들 사이에서도 우리 집은 그대로였는데 그 시절의 나는 그게 싫었었다.

어떤 날,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 목적이었는지 선생님이 "집에 00있는 사람 손들어!" 같은 질문을 하면 학생들이 손을 들었고 선생님은 무언가를 적었었다. 질문들 중간에 "집에 보일러 있는 사람 손들어봐"라는 질문이 있었고 나는 고민하다가 손을 들었었다.

그런데 내가 든 손을 부끄럽게 만든 목소리가 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같은 동네 또래 남자아이의 외침이었다. "너네 집에 아궁이 있잖아?!"라며 날 가리키며 얘기하던 그 남자애의 외침에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지던 나를 잊을 수가 없다. 그만큼 그 때는 아궁이 있는 그런 옛날 집에 산다는 게 창피하게만 느껴졌었다.

할머니가 생활하셨던 안채에는 아궁이가 딸린 널찍한 부엌과 지금의 거실로 생각할 수 있는 부엌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마루, 마루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미닫이문이 달린 안방과 작은 방 그리고 작은 방 옆에 딸려있는 골방이라고 불리었던 아주 작은 쪽방이 있었다.

마루에서 마당으로 나가려면 미닫이문을 연 다음 다시 큰 여닫이문을 열어야 신발을 신을 수 있었고, 마당엔 엄마가 심어놓은 꽃들이 잔치를 열 듯 환했고, 텃밭에는 갖가지 채소가 풍성했다. 담벼락 밑에는 보리수나무, 앵두나무, 개나리나무가 듬성듬성 자리 잡아 있었고 집 뒤꼍으로는 오래된 감나무 한 그루가 터줏대감처럼 우뚝 서 있었다.

안채와 ㄱ자 모양으로 배치된 별채엔 우리가족이 살았었는데 안채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아궁이가 없고 보일러가 있다는 것만 빼고는 똑같았다. 외로움을 모르고 사시는 듯 보였던 할머니의 안채생활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기와지붕만 살리고 집을 현대식으로 개조하면서 끝이 났다. 그 후에도 할머니께서는 마당에 있는 구식 화장실을 폐쇄하지 않고 사용하시는 모습으로 예전 생활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셨다.

기록하고 싶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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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 숙소 내부, 간소하고 소박한 방 ⓒ 권순지


부석사 템플스테이 숙소에 딸린 툇마루에 앉아, 내리는 비와 한옥의 아름다움에 넋이 빠져있던 나는 흡사 할머니의 생전 모습과 많이 닮아 있는 듯 했다. 부끄럽고 불편했던 어릴 때의 한옥에 대한 기억이 나자 부석사에서의 한옥 예찬은 세월을 실감케했고, 부끄럽던 기억에 돌멩이를 던지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 책망하기에 이르렀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옛 것에 대한 기억은,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더 이상 가질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석사에서 지내던 2박 3일간 줄곧 느꼈던, 사라지지 않을 꿈같았던 옛 것에 대한 기억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일상을 보내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스님께서 인생을 꿈처럼 살라고 말씀하신 것도 어차피 사라질 꿈이므로 사사로운 것에 연연해하지 말라는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꿈은 없다. 다만 기억할 뿐이다. 그 꿈같던 기억들을 곱씹고 싶어지면 다시 부석사를 찾아야겠다. 혹시 모른다. 다음에는 그 곳에서 다른 어떤 기억을 찾아내 또 다른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기억을 기록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그건, 산사에서의 명상이 발견하게 해준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부석사에서의 여름, 안녕.
덧붙이는 글 블로그(http://blog.naver.com/rnjstnswl3) 중복 게재
#서산 부석사 #템플스테이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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