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말고 홍보회사로 간판 바꿔라

[시시비비] 저널리즘 사라진 언론, 민주주의도 위기

등록 2015.08.12 15:41수정 2015.08.1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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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시시비비'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김동민(한양대 겸임교수), 김성원(민언련 이사),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김은규(우석대 교수), 김택수(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서명준(언론학 박사),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이기범(민언련 웹진기획위원), 이병남(언론학 박사), 이용마(MBC 기자), 정연우(세명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말

[장면①] 유사언론 실태에 대한 언급 회피하는 언론

얼마 전 한국광고주협회가 '2015유사언론 실태'를 발표했다. 명단을 모두 공개한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주요 언론행세를 해오던 언론들도 대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체계적으로 분석한 것이 아니라 기업홍보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우리 언론들이 무더기로 사이비 언론으로 취급된다면 이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참 요상한 것은 기자들이나 언론사가 광고주를 상대로 명단을 공개하라거나 근거를 대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쉬쉬하며 덮거나 외면하기에 바쁘다. 이에 대한 보도는 고사하고 기자들이 이를 추적하거나 파헤치려는 노력을 했다는 소식도 없다. 뭐가 켕기는 거나 아니면 돈줄노릇을 하는 광고주협회가 두려운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한국의 기자나 언론이 더 이상 진실의 수호자가 아님을 노골적으로 밝힌 상징적 사건이다. 물론 언제나 기자와 언론은 이익과 정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오긴 했다. 그래도 겉으로는 정의와 진실의 편에 선다고 애써 주장하고 또 스스로도 믿으려 했다. 이제 그 최소한의 사회적 공감대나 믿음조차 사실이 아니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해도 입도 뻥끗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진실을 전달하는 민주주의의 보루가 아니라 단순히 언론 권력을 무기로 협박과 갈취를 하는 부당한 이익조직이라는 비판 앞에서도 항변조차 못하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기자들은 시민들로부터 '기레기'라는 비난을 받고 광고주로부터는 사이비 언론으로 조롱받고 있는 현실이다.


[장면②] 대통령 담화 발표... 입도 벙긋 않는 기자들

지난 8월 6일 대통령의 담화 발표에서 기자들은 한마디 질문조차 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담화내용을 받아쓰기만 했다. 질문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언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청와대 출입하는 기자들이 이에 어떠한 항의나 취재 거부를 했다는 얘기도 없다. 청와대가 결정하니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는 패배감 때문인가? 정부가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1조 3천억 원의 경제 효과와 4만6천 명의 고용유발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을 때 왜 조목조목 따져 보는 언론과 기자들은 얼마나 되었나?

기자는 단순히 기록하는 자가 아니다. 진실의 기록자다. 진실은 저절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언제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제약요인들이 가로막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서 진실에 한 치라도 더 가려는 치열한 노력이 바로 기자정신이다.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정부나 대기업을 비롯한 정보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보도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견강부회와 아전인수, 특정 사실의 강조와 부각, 맥락과 상황의 왜곡, 은폐와 조작, 관점의 변경 등을 끊임없이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넘어서서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비판적 사유와 합리적 의심에 기초한 질문이다.

진실에 이르는 길은 기존의 사고와 정보의 틀을 벗어나서 다른 관점으로 살펴보고 파헤쳐 보는 데서 비롯된다. 질문하지 않은 기자는 진실의 끄트머리라도 들여다 볼 수 없고 자칫하면 진실의 은폐자에 부역하는 꼴이 된다. 정부를 비롯하여 취재원이 불러주는 대로 또박또박 받아서 두루뭉수리 전달만 하는 기자들은 홍보 담당자일 뿐이다. 기자와 언론은 진실을 파헤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존재다.

저널리즘이 실종되면 민주주의도 위기

포털, 페이스북 등을 비롯한 새로운 정보 유통경로의 등장으로 인해 매체 환경이 엄청나게 바뀌었고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위상이 이전과 많이 달라진 것도 이러한 현상을 불러온 주요원인 가운데 하나다. 독자와 시청자들이 점점 줄어드는 기존 매체에 대한 광고주들의 관심이 줄어드니 광고 수주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 탓도 있을 것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언론과 기자들이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키려는 치열한 정신을 잃어버린 데서 비롯된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진실을 캐내려는 집요한 노력, 국민의 눈으로 이들이 감추거나 얼버무리려는 것의 실체적 모습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언론의 존재 이유다.

기자 지망생들은 언론사 입사시험을 언론 고시라고 부른다. 그만큼 기자되기가 어렵다는 것은 빗대어 한 표현이겠지만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왔다는 자부심이 은연중 배어 있다. 그런 이들이 진실보도를 향한 열정과 기개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권력과 자본의 머슴이 되어간다. 영혼 없는 기자, 영혼 없는 언론의 참담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다. 일부는 기자들은 오히려 영혼을 팔고 알량한 출세와 권력의 단맛을 즐기기까지 한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주고 그 부스러기나 받아먹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한국 언론과 기자들은 권력으로부터 언론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오만한 자본으로부터는 아예 사이비 언론으로 취급될 뿐만 아니라 시민들로부터는 쓰레기라고 비판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통렬한 반성은커녕 이에 대한 반발과 부정조차 없다. 도발적 자극에 꿈틀거리는 반응마저 않는다면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스스로도 이를 인정하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그렇다면 기자를 그만두거나 언론사 대신 솔직하게 홍보회사 간판을 내걸어야 할 것이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은 좀 곤란하지 않는가? 가히 한국 언론이 죽어간다고 할만하다. 저널리즘의 죽음과 함께 민주주의도 앙상해진다.
#대통령 #기자 #한국언론 #기레기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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