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서 집착 말고, 제대로 된 선거법 개정 논의 해야

등록 2015.08.17 10:13수정 2015.08.17 10:13
0
원고료로 응원
국민 정서라는 말이 있다. 정치가들은 이 말을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대한 논리로 종종 써먹는다. 예컨대 '그 결정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식이다. 무책임한 말이다. 국민의 생각이 하나밖에 없는 양 매도하며 자신의 논거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전 국민이 합의한 정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는 방향성만이 있을 뿐이다. 선거제도 개정에 따른 의원 정수 확대 논의에서도 이 국민 정서라는 불합리한 논리가 이용되고 있다.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것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식이다. '국민 정서'에 파묻혀 정작 제도 개정의 핵심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도입에 있어 많은 토의가 이뤄지고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장점이 상당히 많은 제도이다. 우선, 우리나라 선거의 고질병인 지역 구도를 완화한다. 선거구를 권역별로 나눠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기 때문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19대 총선에 적용한 결과, 새누리당은 호남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영남에서 의석수가 늘었다. 그리고 소수정당의 의회진입을 도와 여성, 노동자, 농민 등 직능별 대표성을 강화할 수 있다.

다당제의 구도가 되면 국정이 마비될 것이라는 걱정이 있다. 기우다. 현재의 양당 구도에서 두 거대 정당은 각각의 당리당략에 따라 행동하며 대립과 반목을 일삼는다. 하지만 거대 정당이 사라지고 원내 교섭단체가 많아지면 정책 통과를 위해 타협은 필수가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당 득표율과 실제 의석수를 일치시키기 때문에 사표를 줄여 국민의 정치적 의견과 국회 의석수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극대화하려면 의원 정수 확대는 필연적이다. 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은 채로 현행 지역구 246석, 비례대표 54석의 상태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제도의 장점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비례대표 의석수가 부족해 초과의석의 문제가 발생하고 정당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의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2:1의 선거구간 인구 편차를 지키기 위해서도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 일부의 주장대로 지역구를 줄이며 헌재 결정을 따르면 인구가 적은 농촌 지역의 선거구는 통폐합돼야 한다. 그러면 농촌 지역 주민을 대표할 국회의원이 적어진다. 의원 정수를 확대함으로써 비례대표도 늘리는 것은 당위의 차원에서도 맞다. 우리나라는 비슷한 인구 규모의 OECD 국가와 비교해서 인구수에 비해 의원수가 부족하다.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많아져야 진짜 민주주의도 가능해진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의원 정수를 확대하기 위해선 먼저 이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따라서 비례대표 공천의 투명성 강화는 필연적이다. 비례대표 공천 때마다 불거지는 당내 계파 간 갈등과 뇌물 수수 문제를 척결하기 위해 정치권이 앞장서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 기간 때마다 정당은 분당과 합당을 반복하고 의원들은 검은돈을 주고받아선 국민이 국회를 신뢰할 수가 없다. 비례대표의 전문성 강화도 필요하다.


19대 국회의 비례대표 의원 중 한 개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한 사람도 있다. 비례대표로 선출된 의원의 의정 활동 능력을 높이지 않는다면 비례대표 수를 늘릴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와 GDP가 비슷한 국가들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국회의원 1인당 세비도 삭감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전체 국회 예산을 동결함으로써 의원 정수를 늘리자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해 국민의 부정적 여론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를 이끌어야 할 정치가들이 이해득실에 치우쳐 이러한 여론이 통일된 '국민 정서' 인양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헌재의 결정을 따르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인구 규모에 알맞은 국회를 꾸리기 위해선 의원 정수 확대가 필요하다.

비례대표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비례대표 의원들의 전문성을 제고함으로써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전제로, 상당한 장점이 입증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 이를 통해 개표가 끝나면 사장되던 민의를 국회로 끌어온다면, 직접 민주주의를 행했던 아테네 민주정치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선거법 #선거제도 #국회의원 #의원정수 #국민정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2. 2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