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여전히 무죄다" 다시 돌아 본 '한명숙 재판'

거짓과 억지로 '블랙코미디'를 연출한 법의 세상

검토 완료

강기석(kskang)등록 2015.08.23 19:34
 한명숙 전 총리가 건설업자 한만호 사장으로부터 9억원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는 대법관 8인.
6억원을 받은 증거는 없으나 최소 3억원을 받은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관 5인.
한 사장으로부터 단 한 푼도 받은 일이 없다는 한명숙 전 총리.
유죄와 부분유죄와 완전한 무죄, 누가 옳을까.

유일한 물증인 1억원짜리 수표가 포함된 3억원이 관건이다. 2007년 3월말 한 사장이 직접 한 전 총리에게 전달했고 한 전 총리는 이를 동생에게 줘 개인용도로 쓰게 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반면 이 돈은 한 전 총리의 보좌관 김 아무개씨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한 사장으로부터 빌린 것이라는 게 김 보좌관과 한 사장의 일치된 증언이다. 김 보좌관은 추후 2억원은 돌려 줬고 1억짜리 수표는 자신이 (한 사장의 양해 아래) 계속 보관하고 있었는데 2009년 2월 한 전 총리의 여동생이 이사하는 과정에 5천만원이 급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빌려줬다가 보름도 안 돼 되돌려 받았다.

3억원 "한 전 총리가 직접 받았다" 검찰 vs 변호인 "보좌관이 받았다"

김 보좌관은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2010년 4월8일 한 사장과 연계된 한 총리에 대한 별건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신문보도를 보고 비로소 자신이 개인용도(남편이 구상하는 관광사업 자금)로 한 사장에게서 돈을 빌린 사실이 있다는 것을 털어 놓았다. 이후 6월17일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실은 개인용도 명목으로 빌린 것이 아니라 (한 전 총리 당내 대선후보)경선기탁금 명목으로 빌렸다"고 고백해 당시 자리에 배석했던 한 전 총리에게 크게 혼이 났다고 한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7월, 그러니까 김 보좌관이 한 사장으로부터 돈을 빌린 지 4개월 후에 은행에서 2억5천만원을 대출받아 경선기탁금을 충당한 바 있다. 김 보좌관이 한 사장에게서 빌린 돈은 경선기탁금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만일 한 전 총리가 정치자금이 급해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수표로 정치자금을 받을 만큼 무모했다면, 그렇게 받은 돈을 쌓아 놓고도 대출을 받아 경선기탁금을 충당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 보다는 김 보좌관이 한 사장과의 친분과 대통령감 한 전 총리의 위세를 빌려 개인적인 돈욕심을 냈다가 일이 터졌다고 보는 것은 어떨까. 이후 대권이 어려워지자 일단 2억원을 돌려주고 1억짜리 수표는 (한 사장의 양해 아래)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검찰은 김 보좌관이 한 사장에게서 무슨 명목으로 얼마를 빌려 어떻게 쓰거나 보관했든 그건 그 돈이고, 한 전 총리가 받은 9억원은 따로 있으며 동생이 사용한 1억짜리 수표는 그 9억원에 포함된 것이라고 본다. 재판 과정에서도 한 사장이 2007년 3월, 4월, 8월 3차례에 걸쳐 3억원씩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은 인정됐다. 이 돈들이 모두 한 전 총리에게 전달됐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고, 3월 조성된 돈은 김 보좌관에게, 나머지 2번은 교회 신축공사를 따내기 위해 교회 장로 등 2명의 브로커에게 줬다는 것이 한만호 사장의 증언이다.   

이 중요한 대목에서 검찰은 한만호-브로커 간 커넥션을 전혀 수사한 흔적이 없다. 구체적으로 지목된 브로커들인데도 그들의 계좌를 슬쩍 들춰보는 흉내라도 전혀 내지 않았다. 한 전 총리의 유죄를 입증한다는 절대적 목표를 위해서라면 다른 아무리 중요한 것들도 다 피하거나 덮는다는 것이 검찰의 일관된 태도였다. 그 결과 한 전 총리가 받았다는 1억 수표 외 8억원의 사용처를 전혀 특정하지 못했다.

6억원 받았다는 건설 브로커들 전혀 손대지 않은 검찰

2011년 6월 8일 속개된 제15차 공판정의 한 풍경이다.

(...) 그런데 검찰 신문 중 증인(김 아무개 보좌관)이 갑자기 화가 났다. 주심검사를 똑바로 쳐다보며 불쑥 한 마디 던진다. 

"나름 성심성의껏 답변하고 있는데 계속 거짓말을 한다고 하니,(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고 "당신 거짓말하는 거 다 안다"는 식으로 힐문하는 검사의 태도에  자신이 증인이며 동시에 피고인이라는 처지를 잊고 순간적으로 울컥한 것이다. 주심검사가  당황하자 옆에 있던 다른 검사가 동료를 편든다.

"증인이 (신문에 답변을 안 하고) 의견표명을 하는 셈인데, 그런 것 처음 봅니다. 웃깁니다."

이번에는 증인의 변호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난 그런 검사가 더 웃깁니다."  (...)

수사와 재판의 전 과정에서 웃기는 검찰의 모습은 더 있다. 아주 많다.

첫째,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었다. 2009년 5월 검찰을 앞세운 이명박 정권의 핍박 속에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고 슬픔과 분노의 열기 속에 9월 노무현재단이 출범했다. 그 초대 이사장을 한 전 총리가 맡자 그를 표적으로 수사를 펼친 것이다. 한 전 총리는 야권의 구심점이었을 뿐 아니라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대통령감이었다. 야당 정치인 중에서도 가장 깨끗하고 포용력있는 이미지의 정치인이었다.

둘째, 끝내 유죄가 확정된 이번 '한만호 정치자금제공 사건'은 악명 높은 '별건수사'였다. 1차 '곽영욱 뇌물공여 사건'이 무죄판결받을 상황이 확실시되자 궁지에 몰린 검찰이 감옥에 있던 한만호 사장을 윽박지르고 구슬려 사건을 만들어 낸 것이다.

셋째, 검찰 수사단계에서 검찰에 협조했던 한 사장은 이후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다가 결국 2차 공판에서 "한 총리님은 지금 누명을 쓰고 계신 겁니다. 저는 돈을 준 적이 없습니다."고 양심선언을 하자 다급해진 검찰은 그때부터 전면적인 재수사를 벌이면서 공판을 진행했다.

적어도 2심부터는 법원도 코미디의 공동 주연이 됐다. 검찰은 2심 3차공판에서 공소장 변경을 시도했다. "한 전 총리 자택 근처 길거리에서 돈이 든 트렁크를 주고 받았다"는 기소 내용이 1심 막바지 현장검증에서 말도 안 된다는 사실이 드러나 무죄판결로 이어지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는 생각에 '돈 전달장소'를 변경하려 했는데 정형식 주심재판관이 거부한 것이다. 처음에는 정 판사 역시 검찰의 행동이 터무니없다고 여겨져서 그랬는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길거리에서도 얼마든지 돈을 주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음이 드러났다. 정 판사는 현장검증 한 번 없이, 단 3번의 공판만으로, 23차례 공판 끝에 무죄를 내린 1심 판결을 가볍게 뒤집었던 것이다. 

검찰과 법원이 공동주연한 블랙 코미디

그리고 결국 대법원도 코미디같은 2심판결을 인정함으로써 법과 양심이 우스갯거리로 전락하는데 크게 일조하고 말았다. 6억원을 받은 증거가 없다고 한 5인의 대법관은 다를까. 그들 역시 검찰이 확실히 입증하지도 못했고, 오히려 피고인 측의 해명과 증인의 증언이 더 유력한 3억원 수수를 인정함으로써 외눈박이판관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만호 사장은 한 전 총리 지역구의 중견 사업가였을 뿐 아니라 종친이기도 하다. 이런 인물이 한 전 총리와 음으로 양으로 어떤 관계를 맺지 않았다면 그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실제로 한 사장이 (김 보좌관을 통해) 한 전 총리 행사 때 차량지원을 했다던가, 사무실 얻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이번 9억원 사건과는 전혀 별개의 사실들이, 한 총리 흠집내기 차원에서 재판과정에서 제기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 전 총리는 1원 한 푼 받은 적이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부정할만한 증거나 증언이 제출된 적은 없다. 그러므로 한 전 총리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무죄다. 무죄인 사람이 오늘 감옥에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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