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빠를 만났다, '카톡'에서

[다다와 함께 읽은 책22] 하세가와 요시후미 쓰고 그린 <아빠, 잘 있어요?>

등록 2015.09.08 20:26수정 2015.09.0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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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만우절 전날 아빠는 '거짓말처럼' 돌아가셨다. 쓰러진 지 하루 만에. 경황 없이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내내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이 분들에게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또 나에게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할수록 아빠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후회되는 건 별로 없는데, 아쉬운 건 많았다. 하세가와 요시후미가 쓰고 그린 <아빠, 잘 있어요?>을 읽으며 부끄럽고, 부러웠던 이유다.

'하늘나라에 계신 아빠에게... 아빠, 잘 있어요?'


요시 후미는 아빠에게 편지를 써.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 누나와 엄마랑 세 식구 잘 살고 있다고 아빠를 안심시키는 착한 요시 후미. 그러면서도 아빠와 함께 했던, 그리 많지 않은 추억을 하나 하나 되새기는 아직은 어린 열살 소년, 요시 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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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가와 요시후미 쓰고 그린 <아빠, 잘 있어요?> ⓒ 사계절


아빠와 함께 캐치볼을 하다 잘 하지 못해 울면서 돌아온 일(아빠가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캐치볼을 좀 더 많이 하는 건데), 뭔가 잘 못 해서 아빠에게 머리를 쥐어 박힌 일(아빠가 살아 있어 한 대 더 맞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절대 사주지 않는 길거리 핫도그를 아빠가 처음으로 사주신 일 그리고 아빠랑 처음 본 비행기쇼 등등 아빠를 떠올리면 그리운 게 너무 많은 요시 후미.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마냥 어린 소년도 아니야. 어른들의 '괜한 걱정', 이를 테면 "쯧쯧 가여워라,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었구나", "쯧쯧 불쌍해라" 따위 말에 상처받지 않고 오히려 '아빠가 더 불쌍하다'고 말하는 요시 후미.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 요시 후미가 쑥쑥 커가는 모습을 아빠는 볼 수 없으니까.

그래서인지 요시 후미는 씩씩해. 아빠를 그리는 미술 시간. 선생님은 요시 후미에게만 따로 "엄마를 그려도 돼" 말했지만, 끝까지 그대로 아빠를 그렸다는 속마음을 고백해. 선생님은 괜한 걱정을 한다면서. 그런 요시 후미가 딱 한 번, 우연히 길 앞에서 아빠를 만나는데….

"'애야 괜찮니?' 말해주던 그 사람, 아빠 맞죠?"


돌아가신 아빠를 만났다, 카톡에서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도 딱 한 번 "아빠 잘 지내요?" 물은 적이 있다. 오빠의 결혼식장에서. 생전 아빠의 가장 큰 걱정 거리는 '결혼하지 않은 아들'이었다. 장례식장을 찾는 조문객마다 오빠 앞에서 혹은 뒤에서 빼놓지 않는 이야기도 오로지 하나.

"결혼은 언제 할거니? 아버지 생전에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빠의 장례식이 오빠에겐 아버지를 여읜 슬픔을 위로 받는 시간만은 아니었을 터.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자식된 도리'를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더 힘들지는 않았을까. 결혼식장에서 "신랑 입장" 구호 소리와 동시에 내가 아빠의 안부를 물은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아빠, 걱정 말아요. 이제 오빠도 가정을 이루고 사니까.'

그리고 딱 한 번, 나도 요시 후미처럼 우연히 아빠를 만난 적이 있다. 카톡에서. 아빠의 전화 번호를 누군가 새로 사용하고 있던 것. 전화 번호만 같은 '아빠'의 프로필 문구는 '기다림'. 이쯤에서 고백 하나. 요시 후미가 아빠의 안부를 물은 건 그리움 때문이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림책을 읽으며 부끄럽고 아쉬웠던 이유다.

ps. 사실 이 책에는 소년의 이름이 요시 후미라고 밝히진 않았다. 그런데 어찌 이름을 아냐고? 이 책의 짝꿍(?) 버전격인 또 다른 그림책 <엄마가 만들었어>를 먼저 봤기 때문. 어떤 책을 먼저 봐도 상관없지만, 두 편은 모두 읽어보시길.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베이비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빠, 잘 있어요?

하세가와 요시후미 글.그림, 고향옥 옮김,
사계절, 2011


#다다 #그림책 #아빠, 잘 있어요?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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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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