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월급 31억, 그 여자 돈의 출처

[평화어머니 미국 백악관 원정 투쟁기③]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등록 2015.09.01 10:33수정 2015.09.0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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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히드 마틴사. ⓒ 고은광순


지난 8월 25일에는 미국 워싱턴 바로 위 메릴랜드주에 있는 세계 1위 무기판매회사 '록히드 마틴'을 찾았다. 내가 미국 원정 투쟁을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록히드 마틴의 여성 CEO 메릴린 휴슨은 1년에 370억 원의 연봉을 받아 지난 4월 '연봉 퀸'에 올랐다. 한 달에 약 31억 원의 월급을 받는 셈이다. 누군가의 아들딸을 죽이는 무기를 파는 대가로 돈을 받으면 기분이 좋을까. 그녀는 지금까지 한국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은 록히드 마틴이 생산하는 F-35A를 2018년부터 매년 10기씩 총 40대를 사기로 했다.  군수 지원비용 등을 제외하면 한 대당 1211억 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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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히드 마틴사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는 평화 어머니들. ⓒ 고은광순


돈이 없어 서민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낸다는 비판을 받는 대한민국 정부가, 돈이 없어 학생들 의무급식도 하지 못하겠다는 정부가 누구를 위해 그렇게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걸까. 2015년 국방 예산 청구액은 40조 원을 넘었다. 그 돈을 물 쓰듯 쓰는 국방부는 선거를 위해 불법 댓글이나 달지 않았던가. 하지만 국방부에서 반성이나 사과의 말은 나오지도 않았다.

펜타곤 퇴근 시간을 놓칠 수 없어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펜타곤 굴다리 시위를 마치고 펜타곤 앞 보잉사에 들렀다. 이로써 세 번째 방문. 검은 신사복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이곳은 사유지니까 길 건너편으로 가라'며 은숙씨를 몰아낸다. 마침 백악관으로 이동할 시간이 돼 나는 은숙씨를 데려오면서 말했다.

"당신들 사유지라고? 지구나 망가뜨리지 마시지!"(Don't destroy OUR Earth!)

미국에서 만난 세월호 노란 리본

8월 26일, 백악관 13차 시위를 마치고 보잉에 4차 시위를 갔을 때였다. 차를 몰고 가던 어떤 여인이 급히 차선을 바꾸고 창문을 열더니 뭐라 큰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거친 행동과 달리 그녀가 외쳤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의 행동에 대해 깊이 당신들에 대해 사과한다. 신의 축복이 당신들과 함께 하기를…."

그녀는 신의 축복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선 사라졌다. 그녀의 차 범퍼에는 커다란 세월호 노란 리본 마크가 달려 있었다. 아, 이런….

8월 28일, 원정 16일째. 우리는 아침에 잠깐 백악관에서 14차 시위를 벌이고 뉴욕으로 향했다. 그곳에 유엔이 있기 때문이다. 68년 전 한반도의 분단을 결정한 그곳! 비싼 비행기 타고 미국까지 왔는데 '본전'을 뽑으려면 워싱턴에서 자동차로 4시간 거리인 그곳에 가야만 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모든 여정이 기적의 연속이었다. 지난 24일 아침 펜타곤에서의 시위를 위해 가톨릭 워커 하우스의 캐시 할머니가 제안한 대로 일요일(23일)에 들어가 숙박을 시작했다. 천사 같은 캐시 할머니는 텐트 생활이 불편하고, 캠핑장으로부터 펜타곤까지 거리가 멀다면서 우리를 그곳에서 며칠간 머물 수 있게 해줬다. 기적 같은 일이다.

한 할머니의 손길, 기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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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워커' 캐시 할머니와 함께. ⓒ 고은광순


텐트 생활에서 가장 치명적인 건 비다. 아침에 비 예보를 듣고 공원 관리실에 삽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어둑해져 캠핑장에 돌아가면 더 깜깜해지기 전에 아침에 해놓은 밥을 먹고 씻고 자야 하는데, 야속하게도 캠핑장에 돌아가는 길에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폭우가 내렸다. 빗물이 텐트 안으로 마구 밀려들어왔다. 저녁밥은 고사하고 잠자리와 짐을 건사하느라 깜깜한 밤에 생난리를 쳤다.

주변에 도랑을 만들어야 하는데 쓸 수 있는 도구라고는 숟가락 밖에 없으니 이를 어쩔 것인가? 은숙씨는 습기에 특히 취약해 곤욕을 치렀다. 다음 날 저녁에 비가 또 쏟아져서 텐트가 빗물에 떠 있는 형국이 됐다. 관리실에 도움을 청했더니 남자가 와서 "This is camping thing"(이런 게 캠핑이다)이란다. 그러곤 '숲은 특별 관리 지역이라 함부로 삽을 사용해 땅을 팔 수 없다"며 염장을 지르고 갔다. 도랑을 파는 건 고사하고 웅덩이를 평탄하게 고르는 작업도 못 하게 하다니…, 이런….

이런 상황에 캐시 할머니가 가톨릭 워커 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했다. 이게 기적이 아니고 무엇일까. 캠핑장보다 백악관과 훨씬 가까운 그곳에서 며칠을 함께 지내는 동안 나는 캐시 할머니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24세였던 1967년부터 지금까지 48년간 반전평화를 위해 투쟁한 전사였던 것이다. 그곳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마이클은 대단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는데, 베트남 전쟁에 다녀온 이후 40여 번의 체포를 당할 정도로 반전평화 운동에 앞장서왔다.

마이클은 라이스 수녀 등과 함께 2012년 테네시주의 오크리지 핵 시설에 울타리를 끊고 2시간이나 언덕을 오르내리며 시설물에 다가가 스프레이로 반전반핵 구호를 쓰곤 체포됐다. 며칠 뒤 그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라이스 수녀(85)도 만났으니 우리는 미국에서 평화운동가들을 제대로 만난 셈이었다. 라이스 수녀는 "다른 나라에는 핵 비확산을 주장하면서 자기는 핵무기 생산공장을 만들기에 정신이 없는 미국은 국제법을 마음대로 어기고 있다, 정말 나쁘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젊은 날부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게 많이 후회된다고 했다.

캐시 할머니가 보여준 신문 기사에서 그들이 평화를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싸웠는지를 봤다. 자기들의 피를 빼서 아기 젖병에 담아 군사시설에 잠입해 뿌리는 일도 마다치 않았던 그들. 나는 그들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냈다.

미국인에게 동학 설명해주니...

우리는 캠핑장에서 가톨릭 워커 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세탁기를 돌렸다. 누군가 착각으로 세제 대신 락스를 넣어 은숙씨의 모든 옷에 얼룩이 생겼다. 다음 날 캐시는 중고 옷가게를 함께 가자며 은숙씨를 잡아끌었다. 은숙씨가 돈이 없다며 재차 사양하자 자기가 사주겠다면서.

은숙씨가 3~4달러짜리 청바지를 고르는 동안 캐시도 부지런히 물건을 골랐다. 계산대에 가지고 온 그녀의 물건을 보니 분홍색 티셔츠, 보라색 원피스…. 모두 어린 아이들 옷이었다. 가톨릭 워커 하우스에 사는 어린 아이들 옷을 고른 것이다. 근처에 사는 시각장애인 노숙인의 바지도 샀다. 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약한, 아니 따듯하기만한 지구의 평화 어머니렷다.

나는 그녀에게 여성동학 다큐소설 홍보물을 보여주며 생명·살림·빛의 사상이었던 120년 전의 동학을 이야기하며 15명의 여성이 13권의 책을 쓰게 된 이야기를 설명했다. 동학의 군율 1조가 죽창 끝에 피를 묻히지 않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캐시는 마이클을 돌아보며 감동의 눈빛을 나눴다.

나는 그녀에게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보여줬다. '벌써 나를 빨갱이며 종북으로 모는 댓글이 달렸다'고 했더니 '동물을 울타리에 가두지 말라'는 주장을 해도 미국에서는 테러리스트 소리를 듣는다며 웃었다. 그녀가 우유도 달걀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는 김밥에 스팸햄을 넣었는데,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조금 더 신경을 써봐야겠다.

우리가 뉴욕의 유엔본부에 가서도 시위를 할 계획이라고 하니 캐시 할머니는 숙소 걱정부터 했다. 우리는 뉴욕에서 캠핑을 할 작정이었다. 그러더니 캐시 할머니는 분주하게 수소문해서 뉴욕 가톨릭 워커 하우스를 소개해줬다. 또 한 번의 기적.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사했다.

평화 어머니들, 유엔본부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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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평화 어머니들. ⓒ 고은광순


8월 27일 아침, 백악관 앞에서 14차 시위를 하고는 우리는 뉴욕으로 떠났다. 뉴욕의 가톨릭 워커 하우스. 낡았지만 이곳은 어느 왕궁보다 아름다웠다. 우리는 얼른 짐을 풀고 유엔본부로 달려갔다. 곧 주말이 다가오니 목요일·금요일 두 번은 시위를 할 수 있을 터. 조금 더 여유 있는 시위를 할 수 있을까.

페이스북 친구가 된 김봉준 화백이 뉴욕 유엔본부 앞 시위 때 사용하라며 자신의 그림 몇 점을 메신저로 보내줬다. 오 마이 갓, 그중 1981년 <어머니>라는 이름의 목판화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우리 평화 어머니의 구호 '양쪽 군사 모두 어머니 자식'과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가. 그의 허락을 얻어 평화 어머니 로고로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는 점심 뉴욕 유엔본부 시위에 가져갈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이 그림은 앞으로 많은 기적을 낳게 될 것이다. 고마운 김봉준 화백님, 고마운 메신저, 고마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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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작 <어머니> ⓒ 김봉준 화백 제공



○ 편집ㅣ김지현 기자

#고은광순 #평화어머니 #유엔 #록히드 마틴 #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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