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그만" 뒤틀린 당신에게

단원고 고 박수현군 아버지가 한 말씀 드립니다

등록 2015.09.02 19:57수정 2015.09.0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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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많은 국민을 슬픔으로 몰아넣었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500일(8월 28일)이나 지났습니다. 이 정도면 그날의 상처가 치유될 법도 한데, 피해자의 상처는 아물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부 사람들의 악담과 진상규명 활동에 대한 의도적인 방해 등으로 인해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과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저는 이 참사의 직접적인 피해자로서, 그들의 언어폭력 등에 대하여 더 이상 침묵하는 것은 먼저 간 아들의 죽음을 욕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잘못된 견해를 바로 잡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이 나라에 더 이상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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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우선 세월호 참사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헌법 조문 등을 거론하며 대통령과 국가의 책임을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그렇다면, 지난해 5월 16일 유가족 면담은 왜 하였으며, 같은 달 5월 19일 담화문에서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라고 왜 고백한 건지 궁금합니다. 대통령은 이 참사와 관련, 유가족과 국민을 상대로 몇 가지 약속을 했으나, 현재까지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하여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며, 이 자리에서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물러나야 한다." - 2014년 4월 17일 진도체육관 방문 당시

"특별법은 만들어야 하고, 특검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진상 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 (중략) 언제든 다시 만나겠다." - 2014년 5월 16일 유가족 청와대 초청 당시

"그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중략) 이번 사고와 관련해서는 국가가 먼저 피해자들에게 신속하게 보상을 하고, 사고 책임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특별법안을 정부입법으로 즉각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 2014년 5월 19일 대국민 담화

그러나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좋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는 당신들이, 대통령을 감싸고 보고하고 싶더라도 최소한 대통령이 약속을 이행했는지 여부는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은 당신들과 굳게 맹세한 약속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미 대통령의 고백이 이어진 부분에 대해 "교통사고"라 고집하는 일부 몰지각한 국민과 여당 정치인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왜 저항과 오해를 감수하며 버티나

좋습니다. 백번 양보하여 교통사고가 확실하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교통사고에 준해 조사한 뒤 결과를 발표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하면 끝날 일인데, 정부는 왜 많은 오해와 국민들의 저항까지 감수하면서 버티는 겁니까. 왜 대통령과 여당 다수 국회의원들은 특조위 설립과 조사행위를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있습니까.

교통사고든 재난이든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국가는 빨리 상황을 수습하고, 주어진 법과 제도 내에서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합니다. 이것을 요구하는 것은 국민의, 그리고 납세자의 너무나 당연한 권리에 해당합니다.

당신들의 일상은 안전합니까? 악담으로 피해 당사자들을 욕보이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들에게는 절대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도 그런 부류 중의 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안전불감증은 생활화 되어 있었고, 대문 밖을 나서면 곳곳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세월호 유가족이 되고 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이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야 국가조직이 위부터 아래까지 썩어 문드러져 있었고 시스템은 정지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식 있는 많은 국민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러한 구조 문제를 개선하고, 개혁하는 방법을 찾자고 외쳤던 것이고,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여 다시는 이 나라 이 땅에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고 외쳤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외침에 피로를 느끼고, 지치고, 환멸을 느낀다면서 "이제 그만 좀 하자"고 야유를 퍼붓는다면 그들은 이 나라 이 땅에서 안전하게 살 권리가 없습니다. 문제점을 찾아내어 원인을 제거하고, 제도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똑같은 경험을 되풀이하자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땅은 저승사자가 상주하고 있는 정글과도 같은 곳입니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 1995년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 1999년 인현동 호프집 화재사고, 2013년 해병대 캠프 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014년 10월 17일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사고... 모두 우리의 일상과 매우 밀접한 곳과 관련돼 있으며, 대다수가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자리에 있었거나 그곳을 지났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 사고가 발생할 때 당신들이 그 자리에 없어서 화를 면했던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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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500일 추모국민대회 2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세월호참사 500일 추모 국민대회'가 유가족과 시민 수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참가자들은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미수습자 9명을 가족품으로" "세월호특조위 탄압중단"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광장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 권우성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을 지나 2년을 향해 가고 있는 이 마당에,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끄고, 당신들이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을 굳이 욕할 국민들은 전혀 없습니다. 많은 국민들은 당신들의 그 뒤틀린 잘못된 관심 때문에 오히려 많이 피로해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당신들의 잘못된 생각을 국민이란 이름으로 위장하지 마십시오.

한편으로 전 당신들을 이해합니다. 세월호 유가족이 몇 억 원이라는 돈을 한꺼번에 받는다고 하니, 마치 로또 맞은 사람들처럼 보이겠지요. 그러나 자기 자신보다도 더 소중하고 사랑하는, 자식과 가족들의 죽음입니다. 아이가 품고 있었던 원대한 꿈의 나래를 단 한 번도 펼쳐보지 못했고, 열매를 맺기는커녕 아직 꽃봉오리도 터트리지 못한 열일곱 청춘들의 한 많은 죽음입니다. 결코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원통하고 억울한 죽음입니다.

이 사건의 본질을 금전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사람들은 이미 삼류입니다. 이 사건은 아주 많은 피해자가 존재하니 단정적으로 말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많은 유족들은 여전히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안전한 나라 건설"을 간절히 원하고 있으며, 그것이 성취된 후에야 배상 문제를 논하고 싶어 합니다. 엄격히 말해서 현 시점에서 배·보상을 논하는 것은 정부의 의지이며, 이는 유가족을 분열시킬 불순한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게 다수 유가족들의 입장입니다.

거짓 위로, 이제는 사양합니다

작년 희생자의 형제자매들 중 특례로 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은 단 1명도 없습니다. 아니 특례입학제도 자체가 없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지난 11년 동안 대학 입학을 목표로 달려 왔고, 가장 중요한 시기에 국가의 잘못된 개입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었는데, 국가가 그것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검토했다면, 그것은 특혜가 아니라 당연한 배려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학입학제도에는 비난받아도 마땅할 특례제도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예인 특례입학, 외교관 자녀 특례 입학 등. 차라리 비난을 하고 싶으면 지금까지 사회적 강자에게 당연하게 그리고 부당하게 주어졌던 그러한 특례제도에 대하여 강력하게 항의를 하십시오.

지금도 그렇지만 지난해 특별법 제정과 관련하여 풍찬노숙을 할 때 고맙게도 매우 많은 국민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매우 많았습니다. "법을 공부하는 학생인데 세월호 참사는 안타깝지만 법치국가에서 기소권과 수사권을 달라는 유족들의 요구는 잘못되었다. 유족들이 법에 있어서 비전문적이라 부당한 요구를 감정에 휩쓸려 하는 것",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은 알겠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위로, 이제는 사양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이들에게 거짓된 위로의 말을 듣고, 위안을 받을 생각도 그리고 도움을 청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당신들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하여 우리는 지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싸울 것입니다. 

2004년 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 고 김선일씨 피살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 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매우 멋진 말입니다. 적어도 박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세월호 침몰사고가 없었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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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500일 추모합창문화제 29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500일 추모합창문화제' 마지막 순서로 참석자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나는 박 대통령의 이 발언이 아직도 유효한 것이며, 이 발언을 기억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적어도 김선일씨 피살사건은 한 사람의 생명권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국가의 이익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외교적인 문제가 있었나요. 그냥 정상적인 구조시스템을 가동하여 구조만 하면 되는 문제였고,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 방지대책을 수립하면 끝나는 문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여일이 지나도록 왜 계속 버티고 있는 것일까요.

제 블로그를 방문한 분이 어느 날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법은 있는 자들의 편에서 항상 유리하게 작용하고, 대단한 권력 앞에선 속수무책하며, 한없이 나약한 힘입니다. 하지만 한 방울의 빗방울이 땅을 패게 하고, 작은 개미 한 마리에 의해 거대한 기둥이 무너지는 법이니, 힘겨워도 지치지 아니하고 계속 싸우다보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입니다. 그들의 권력이 다하는 날, 맺혔던 한은 반드시 풀어질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진실은 학생들이 죽음을 앞두고 남긴 사진과 동영상 속에 모두 있으며, 못된 자들이 혼란은 줄 수 있으나 은폐나 조작으로 진실을 결코 가릴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과 권력의 중심에 있는 자들이 국민들을 버렸습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그들을 반드시 심판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위기 때마다 나라를 살린 건 모두 국민이었습니다. 세월호를 시작으로 대한민국은 가라앉고 있습니다. 이를 다시 끌어올리려면 국민들의 굳은 의지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세월호 선체를 인양해야 하며, 눈을 크게 뜨고 정부를 감시해야합니다. 학생들의 억울한 죽음을, 숨넘어가는 고통을, 바닷속 깊은 곳에서 느꼈을 고통을 결코 잊지 말고 진실을 꼭 밝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한 세월호의 진상은 꼭 밝혀져야 합니다. 이것은 유가족의 몫이 아니라 이 나라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몫입니다. 오늘 통치자의 압력이 두려워 이것을 포기한다면, 내일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약자를 짓밟고 얻는 쾌감보다 거대권력에 맞서 싸워서 정의를 수호한 성취감이 훨씬 더 크고 값지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박수현군의 아버지입니다.
#세월호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인양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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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범한 회사원 입니다. 생각이 뚜렷하고요. 무척 객관적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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