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 일본 소설보다 형편없지 않다"

[인터뷰] 총을 의인화한 소설 <나는 권총이다> 저자 오일구

등록 2015.09.01 15:14수정 2015.09.01 16:37
0
원고료로 응원
"어떤 나라 민간인이든 민간인들은 죄가 없다. 총알에도 눈이 있다고 생각하라."

영화 <암살>에서 누구를 암살해야 하는지 등 암살을 지시하는 김원봉에게 단원 중 한사람이 묻는다. "작전 중에 민간인이 죽어도 되냐?"고. 이에 김원봉은 "안 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나 그 단원은 다시 묻는다. "그럼 일본인은 죽여도 되냐?"고. 그러자 김원봉은 이처럼 말한다.


총을 의인화한 소설 <나는 권총이다>(코치커뮤니케이션 펴냄)란 소설을 읽던 중이라 이 장면, 이 말은 특히 강하게 와 닿았다. <나는 권총이다>란 소설은 한국동란 당시 미국의 어떤 무기 공장에서 만들어진 권총 한 자루가 한국동란에 참전한 한 미군장교를 시작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소유가 되어 수많은 살인에 가담, 수많은 살인을 목격하는 이야기다.

살인은 어떤 경우든 잔인하고,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소설이라지만, 책을 통해 수많은 살인을 목격하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어떤 표현으로도 쉽고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는 소재와 장면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책을 읽던 중 영화 <암살>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니 이 장면을 만나지 못했다면 소설을 끝까지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다.

작가도 소설 쓰는 것이 쉽지 않았나 보다. 후기에 "<나는 권총이다>는 어떤 소설보다 살벌한 장면이 이어지기에 집필을 하는 내내 고통에 시달렸다"고 쓴 걸 보면 말이다.

a

<나는 권총이다> 책표지와 작가. ⓒ 코치커뮤니케이션


"독특한 작가죠. 개념 있는 작가고. 참 독특한 소재의 작품들을 쓰는데, <색채처방소>란 소설은 색조를 바꾸는 인간의 실체를 오묘하고 독특하게 그려낸 색채 미스터리로 아무나 쓸 수 있는 소재도, 소설도 아니죠. 게다가 매우 치밀하면서 흥미로워요. 때문인지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영화제작 제의까지 받았어요. 작가로선 솔깃한 제안이죠. 조건도 좋았죠. 그러나 거절했어요. 그 이유가 뭐냐?, 일본이나 중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지면 우리 고유의 색은 물론 우리 고유의 색에 스며있는 우리 민족의 정신이나 삶, 우리 고유의 색 그 본질이나 가치를 잃기 때문에, 다시 말해 우리의 색이 중국이나 일본의 것으로 바뀌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하더군요. 오일구(519)는 그런 작가입니다…." - 출판 관계자와 18일 통화에서

'수많은 살인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고통스러움에도 작가는 왜 써야만 했을까?, 어떤 작가일까?'가 궁금해 책을 펴낸 곳에 전화해 우선 궁금한 몇 가지를 물으니 출판 관계자는 이처럼 말한다. 아래는 작가에게 소설에 대해 물은 것(8월 23일 메일) 중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 <나는 권총이다>, 무섭고 끔찍한 소설이다. 동시에 슬픈 소설이다. 계기나 의도는?
"소설에서 수많은 유형의 살인이 반복된다. 사람들이 참혹한 살인이 벌어지는 환경, 참혹한 살인과 같은 현실에 끊임없이 노출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결국에는 살인의 본질을 잃어버릴까? 그 잔인함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달라질까? 무감각해질까? 아니 무감각, 그 한계가 있어 무감각 그 정반대의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궁금했다. 독자들에겐 좀 죄송하지만, 이를 실험한 소설이기도 하다.

처참한 죽음을 분개하고 진상을 규명하고 그러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역사나 사건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세월호를 비롯하여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여러 죽음들이 있었다. 소설과 현실이 다른 것은, 소설 속 수많은 죽음들은 권총 한 자루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관여한 살인에 의한 것이고, 현실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특별한 목적 때문에 죽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특별한 목적이나, 그 누군가는 결론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점에서 소설 속 총과 다를 것이 없다. 동시에 되풀이되는 역사나 사회현실 그 문제를, 그리고 그에 무감각해진 사람들에게 어떤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 한국동란부터 최근까지, 60여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관여한 권총 한 자루를 통해 많은 시대 상황이 펼쳐진다. 가장 신경을 쓴 시대와 그 이유는?
"미국이다. 미국을 빼고 우리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게다가 '미국의 역사는 총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총을 빼놓고 미국의 역사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무차별 총기 난사로 인한 무고한 죽음이 계속 일어나면서 총기 소지에 분분하나, 총기라는 도구가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든 것은 사실이다. 소설의 흐름 상, 미국과 관련된 직접적인 사건을 배재하고 권총과 인물의 배경에 스며들게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미군 군용잠바, 딸라, 오산 공군비행장 등, 소설에 미국을 연상할 수 있는 많은 아이콘을 넣었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권총이 미국에서 제조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소설 전체에 미국이 흐른다. 미국을 상징하는 권총이 한국으로 흘러오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권총을 소유한 미군 장교가 죽은 후에도 권총은 우리의 역사와 함께 흐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훨씬 의미심장하게, 그리고 재미있을 것이다."

- 권총 한 자루를 통해 우리나라의 지난 시대가 많이 소개된다.
"역사책에 있는 역사보다 우리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역사가 진정한 역사라고 생각한다. 이런지라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보다, 그 물줄기에 휩쓸린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든 역사를 제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또, 시대 혹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건들이 중심이 되어버리면,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제시하고 해석은 독자에게 맡긴다는 소설의 본질이 흐려질 것 같아 시대를 규정하는 연도나 근대화, 현대화라는 단어를 배제했다. 시대의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도 현장을 스케치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포괄적인 상징 단어로 시대를 표현했다.

예를 들어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의 깃발 하나로, 서울의 발전상은 엿장수와 골동품상이 나누는 대화로, 그리고 검은 교복, 고고장, 교련복 등의 소품을 등장시켜 시대를 연결했다. 건설 비리, 투기꾼, 여성 감금, 대기업의 하청, 갑의 횡포,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의 역사적인 사건도 직접 언급하기보다 독자 스스로 그와 관련된, 혹은 접했던 사건을 상상할 수 있도록 폭력이라는 수면 속에 가라앉혔다. 소설을 읽으며 자신이 체험했기 때문에 알고 있던 시대를 규정해 보거나, 정리해보는 것이 좋았다는 독자도 있다."

- 한 소녀가 단란하고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가족에게 총을 겨누는 것이 매우 슬펐다. 
"물론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끔찍한 세상, 희망이 될 만한 것이 모두 사라진 세상이 도래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다. 흔히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자 꿈이라고 표현한다. 워낙 식상해져버린 말이나, 깊이 공감한다.

그런데 슬프게도 어른들의 전쟁터(사회현실 등)에 방치된 채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다. 오색 무지개가 피어나는 동화 같은 세상에서 살게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는 어른을 보고, 어른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세상은 만들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세상이, 그리고 어떤 현실이 아이들을 가장 아프게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

a

오일구 소설들 <색채처방소 1.2>,<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거래> ⓒ 코치커뮤니케이션


- <색채처방소>가 워낙 독특하고 어려운 소재라던데? 궁금하다.
"어렸을 때 학교 대표로 미술 활동을 했다. 물감이나 색연필 같은 물감도구들이 그리 흔하지 않던 때라 미술도구 자체만으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는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입학한 세대다) 어른이 된 후 우연히 우리의 전통색을 접하게 됐고, 그 오묘함에 도취되었다. 전통색의 뿌리가 궁금해 문헌을 찾아봤다. 병졸들의 계급을 색으로 구분하고, 왕실에서 사용하는 색은 백성들에게 금했다는 기록 등을 접했다. 이를 계기로 5000년의 역사를 거슬러 고조선까지 가게 됐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수많은 색들과 함께 하게 된다. 인간들의 심리에, 또는 행동에 색은 어떻게 관여할까? 사람들은 색을 어떻게 바꿀까? <색채처방소>는 이렇게 시작됐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영화 <암살>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뉴스를 접할 즈음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일본 소설이 서점가를 점령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우리가 팝콘을 들고 스크린 앞에 앉아 지나간 역사에 흥분하며 우리의 의식은 애국심에 불타오르고 있었을지 모르나, 또 다른 우리의 의식은 또다시 외세에 점령당했다는 생각마저 들어 씁쓸했다. 게다가 50위권 안에 한국 작가가 하나도 없다는 뉴스까지! 솔직히 눈앞이 깜깜했다.

혹자들에게 실현 불가능해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우리의 소설이, 문학이, 문화가 세계를 점령하는 꿈을 꾸곤 한다. 작가들의 열정이나 의지, 노력만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책 속에 길이 없다'는 독자도 있지만, 없는 길을 만드는 것 또한 독자의 몫이다. 책은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길이 있음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학 작품들이 서점가를 점령하는 일본 소설들에게 죄 밀릴 정도로 형편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작가들을 믿고 성원해주는 독자들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

- 다음 작품도 궁금하다.
"매년 초에 그 해에 이슈가 될 만한 소재를 다룬 소설을 출간하자 계획했다. 그 시작으로 올 초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거래>를 출간했다. 2014년 우리 경제는 난관에 봉착했고, 그 난관이 2015년에도 이어질 거라는 예상을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처럼 힘든 경제 상황을 혹독한 겨울로 상징, 그 겨울을 벗어나 미래를 개척하는 것을 소설로 쓴 것이다. 2016년 초엔 2015년에 주저앉은 우리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소설 <꼬리월드>(가제)를 출간, 그 준비 중이다. 알랑거리는 꼬리보다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역사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내용인데, 소설에 삽입할 그림도 그리고 있다. 동시에 2016년 중반에 발간할 소설 <아이야 아야야>(가제) 마무리중이다. 가장 행복한 곳임에도 가장 두려운 공간이 되어버린, 집이라는 담장 속에 갇힌 채 상처받은 아이들 이야기다. 특정의 색에 노출된 아이들의 상처를 담은 것으로 <색채처방소>에 이은 두 번째 색채 장르소설이다."
덧붙이는 글 <나는 권총이다>(오일구) | 코치커뮤니케이션 | 2015-07-13 | 13,000원

나는 권총이다

오일구 지음,
코치커뮤니케이션, 2015


#권총 #미국 #살인 #장르소설 #색채처방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4. 4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