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대회 지휘자' 덕이... 자 다시 시작하자!

[말없는 약속 20년 33] 꼬박꼬박 연습에 참석해, 실수 없이 지휘해

등록 2015.09.01 17:02수정 2015.09.0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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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덕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인문계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입시에 대한 압박감을 더 받기 때문인지 '한두 학생'을 제외하곤 공부를 소홀히 하는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한두 명의 학생에 속하는 우리 덕이는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타고 난 마라토너'란 애칭으로 불리며 꽤 인기가 있었다. 한 선생님은 "덕이는 날씨가 더운 6월에 하프코스를 완주하고도 땀이 나지 않을 정도의, 마라톤을 하기 좋은 체력 조건을 지녔다"면서 부러워했다.

이 무렵, 절에 가지 않으면서 다른 한 종교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종교단체에서 청소년 축제를 열었을 때, 합창을 담당한 한 선생님이 덕이에게 합창 지휘를 권하기도 했다. 사분의 사박자 곡이라, 덕이가 몇 번 훈련하면 할 수 있다고 여긴 것 같다. 덕이는 어려서부터 태권도와 마라톤을 해 키가 또래들보다 큰 편이었던 터라, 양복을 입고 지휘하면 멋스러움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기 때문인지, 덕이는 부끄럽기도 하고 잘 할 수 있을까, 부담도 갖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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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가 합창단 지휘를 맡았다. ⓒ sxc


"덕아, 선생님께서 이번 청소년 축제 때 덕이가 지휘를 하면 좋겠다고 하셨단 이야기를 들었어. 고모 생각엔 그렇게 권해준 선생님이 덕이의 좋은 점을 잘 보신 것 같아. 무엇보다도 덕이는 사람들이 모두 화합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지휘자가 딱이라고 여기신 것 같아. 나도 덕이가 지휘하면 좋겠다."
"몰라."

"덕이로서는 그럴 것 같아. 할지 말지 망설여지고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도 조금 있을 것 같고... 그래서 지금은 모른다고 하지만,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응, 몰라."

"고모는 덕이가 잘 할 것 같아, 덕이는 무엇을 하기 시작하면 잘 할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서 성실하게 하니까 충분히 가능하리라 여긴단다. 고모 말이 맞지?"
"응."


"그리고 덕이의 가장 큰 능력은 눈으로 보면 기억을 잘 한다는 거지...  고모가 한 번 해 볼게 따라해볼래?"

내가 사분의 사박자로 지휘하는 동작을 하자 덕이가 몇 번을 따라하더니 박자에 잘 맞게 따라했다.

"지금 해보니까 충분히 할 수 있지?"
"응."

축제날까지 꼬박꼬박 지휘 연습에 참여한 덕이

그렇게 하여 덕이는 지휘를 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일주일에 두 번 연습하는 수요일과 토요일 저녁 연습에 빠짐없이 참여하였다. 아무래도 청소년들이라, 합창연습에 참여하는 학생 수가 들쭉날쭉했다. 많은 아이들이 참석했다가 그 다음주에는 시험공부를 해야 해서 못 나오고를 몇 번 반복하는 중이었으나 덕이는 축제날까지 꼬박꼬박 연습에 참석해 최선을 다했다.

중간·기말고사에 관계없이 우리 가족은 정기적으로 주말이면 1박 2일 여행을 즐겼으나 덕이가 매주 토요일 저녁에 연습을 해야 했으므로 축제 끝난 후 다시 1박 2일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당분간은 당일 일정으노 가까운 곳에 가 바람을 쏘이기로 합의했다. 여행을 함께해 온 가족들이 협조할 정도로 덕이는 우리 집에서도 중요한 아이였다.

가끔은 나도 합창 연습을 하는 모습을 관찰하곤 하였는데, 어느날은 덕이가 몹시 불편해 보여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 알고보니, 고 2학년 형이 "덕이 너는 못하니까 내가 지휘를 할거니까 지도자 선생님께 지휘를 그만둔다고 하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습해야 할 일이었다. 꼬박꼬박 잘 참석하며 겨우 덕이가 지휘자로서 면모를 다져가는 중에 다른 아이가 자기가 하겠다고 물러나라고 했다니...

고2 아이를 만난 후에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기로 결정하고 그 아이를 만났다.

"내 이름은 OOO이고 덕이 고모야 덕이보다 1년 선배라고?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
"OOO인데요."
"응, 반가워. 아까 연습할 때 노래하는 모습이 멋있던데, 바로 너구나."
"……."

"사실은 덕이가 일주일에 두 번씩 와서 꼬박꼬박 연습을 했거든. 그러다 보니 지금은 덕이가 스스로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보람도 있어 하고. 그러다 보니, 다른 아이들도 지휘를 하고 싶어 할 수 있을 것 같아. 혹시 너도 지휘를 하고 싶은 거니?"
"아니, 그게 아니라요. 저는 고2라서, 연습할 때마다 매번 참석을 못하니까... 다른 애들하고 화음이 잘 안 맞고 그래서... 지휘가 쉬워 보여서요 그래서 그런 건데..."

"그랬었구나. 아무래도 고2이고 학교 성적도 신경써야하고 또 합창도 잘하고 싶다보니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해 보았나 보구나. 그리고 덕이는 연습 때마다 참석하니까, 화음을 잘 맞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거니?"
"예~"

"한편으로 덕이는 얼마 남지 않은 축제일까지 지휘를 더 열심히 연습해서 함께 연습한 사람들과 또 가족들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 같아. 그리고 할머니나 나에게도 기대해도 좋다고 말하곤 한단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냥 제가 하던 대로 할게요. 덕이 보고 지휘하라고 하세요."
"그렇게 이해해주면 정말 고맙지. 덕이도 형이 자기를 이해해주었다고 여겨서 형한테 고마워할 거야. 넌 참으로 멋진 친구구나!"

합창 당일이 되었다. 덕이도 내심 떨리고 긴장이 되는 듯해, 약국에서 약을 하나 사 먹였다. 이제 합창을 시작할 차례. 단원들과 지휘자 덕이가 청중을 향해 인사를 하고 합창을 시작했다. 덕이도 덕이지만 덕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나와 할머니는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무사히 잘 끝내고 덕이가 뒤돌아 청중을 향해 인사를 하고 무대를 내려갔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할머니와 덕이와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잠들기 전에 덕이에게 오늘 지휘한 기분이 어떤지 물었을 때 힘있는 목소리로 "좋다"며 살인미소를 날려주었다.

"그래 사랑하는 덕아 이제부터 우리 다시 시작해보자!"
#축제 #합창 #지휘 #선생님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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