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디·태양 앨범 재킷까지, "그래피티 범죄 아니에요"

[인터뷰] 그래피티 작가 레오다브

등록 2015.09.03 11:17수정 2015.09.03 11:1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5월 서울과 대구지하철 전동차에 외국인 두 명이 그래피티를 그린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김해공항을 통해 홍콩으로 출국했고,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른바 '트레인 바밍'이라하는데, 그래피시스트 사이에서는 최고의 경지로 통한다.


건물 벽면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는 '예술과 불법의 경계'에서 시험 중이다. 새로운 예술로 각광받고 있는 반면,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범죄나 테러로 보는 시선이 우세한데, 완성도가 높은 작품도 많습니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래피티 작가 레오다브(본명 최성욱·37)를 8월 24일, 인천 중구 신포동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창문까지 검정색과 노란색으로 칠한 사무실의 벽은 커다란 캔버스 같았다.

낙서가 아닙니다, 문화이자 예술입니다

a

레오다브 그래피티 작가 ⓒ 김영숙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지난 6월,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 그래피티 전용공간을 마련했다. 그래피티를 양성화하자는 시도로 진행한 이 프로젝트의 예술가는 레오다브다.


"녹사평역이 지하 4층까지 꼬불꼬불 이어지고 공간도 많아 작업하는 데 재밌습니다. 작업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사진을 찍고 관심도 많이 보입니다."

그래피티에 대한 거부감이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겠지만 많이 접하면 이미지가 바뀔 수 있다고 믿는 레오다브는 '그래피티는 낙서가 아닌 문화이자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그래피티의 역사가 낙서에서 시작한 건 사실이죠. 초기의 벽화인 동굴벽화도 낙서에서 시작했으니까요. 그림도 낙서인거죠. 그림의 바탕이 캔버스인지, 동굴인지, 거리인지가 다를 뿐이죠. 작품이 갤러리를 벗어나 거리로 나온 겁니다."

요즘 그는 둥근 모양의 카무플라주(=군복처럼 얼룩덜룩한 무늬)에 톡톡 튀는 색깔을 조합한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이 모양처럼 사람들이 서로 다양성을 존중하며 살아가길 꿈꾸며.

힙합동아리에서 그래피티를 만나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레오다브는 힙합동아리에 들어갔다. 외국 뮤직비디오를 보는데 배경으로 그래피티가 나오자, 선배들이 레오다브에게 동아리방을 꾸며보라고 제안했다. 처음엔 스프레이로 하는 건지도 몰라 락카나 붓, 매직으로 꾸몄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 후 학교건물 뒤, 동네 터널 등, 그의 도화지는 넓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 다른 일을 하기도 한 그는 그래피티에 '올인(all in)'하겠다는 마음으로 2007년 고향인 인천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친구 여럿과 작업을 같이 했지만 모두 떠나고 혼자 남아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지만, 대학 동기인 임진수씨가 재작년부터 매니저로 활동해 더욱 든든하다.

"인천에서 저 빼고 그래피티 작가가 대학생 한 명밖에 없어요. 전국적으로도 많지 않죠. 2013년 30대 그래피티 작가 한 분이 희귀병으로 사망한 일이 있는데 전국에 있는 작가들이 모여 200~300m 벽면에 추모 그림을 그린 적이 있어요. 그때 처음으로 작가 50여명을 봤죠. 각자의 색깔이나 생각이 워낙 강해 집단으로 모여서 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그래피티는 특별한 규칙 없이 자유롭게 그리는 거죠. '이렇게 그리는 거야'라는 게 따로 없어요. 내가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는 거예요."

빅뱅 뮤직비디오 작업에 참여
   
a

녹사평역에서 작업하고 있는 그래피티. ⓒ 김영숙


부가킹스·드렁큰 타이거·바다·박정아·AOA·지누션·빅뱅. 열거한 뮤지션들의 공통점은 뭘까? 지난 4월 말 빅뱅 컴백 콘서트가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다. 3만여 관중으로 꽉 찬 공연장 무대 대형 화면에는 레오다브가 그린 그래피티 '하우지(How Gee)'가 배경화면으로 뜨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지디와 태양의 '굿보이' 스페셜 앨범 재킷 작업을 하기도 했다. 작업하는 동안 뒤에서 지디와 태양이 보고 있었단다.

8월 7일부터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광화랑(광화문역사 내 지하보도)에서는 '나의 그들'이라는 제목으로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전을 하기도 했다. 레오다브는 이 전시회에 독립운동가 그래피티 작품을 출품했다. 레오다브는 독립운동가 그래피티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지난 3월에는 광복 70주년, 3.1운동 96주년을 기념해 유관순 그래피티를 했다.

'고등학생의 나이였던 한 소녀는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올바른 역사 인식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우리와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레오다브의 블로그에 작품 사진과 함께 올라온 그의 글이다.

"그전까지는 역사의식이 없었는데 재작년 아이가 생기면서 달라졌어요. 감춰진 진실이 많다는 걸 알았고,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림이라는 생각을 했죠."

2013년 서울 삼청동 정독도서관 외벽에 독립운동가 유관순·이봉창·안창호·윤봉길 의사의 그림을 그렸다. '그분들이 지금 살아계셨으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그들의 업적도 중요하지만 인간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단다.

"유관순 누나는 이어폰을 꽂고 있고, 두 아이의 아버지였던 윤봉길 아저씨는 지금 계셨으면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을까 해서 양복 입고 커피잔을 들고 있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봉창 아저씨는 어릴 때 빵집에서 일했으니까 지금 계셨으면 베이커리 사장이 됐겠죠?"

벽에 그림을 그려놓으면 여행 온 외국인이 궁금해 할 테고, 가이드가 설명해줘 역사수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의 의도대로 그림을 그린 다음날 찾아가보니 부모들은 아이들한테, 한국인 친구는 외국 친구에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가 차고 있는 '리멤버 20140416'가 새겨진 노란 팔찌와 노란 리본이 그려진 그의 모자가 이해됐다.

그래피티 스쿨로 청소년들에게 기회를
   
a

녹사평역에 단채 신채호 선생 초상화를 그래피티로 표현했다. ⓒ 김영숙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좋아해 '레오다브'라는 예명을 사용하고 있는 그는 청소년 교육에 관심이 많다. 2013년부터 신흥·석남중학교 그래피티 스쿨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국·영·수 위주의 수업 편재라 미술교육이 많이 줄었고, 그나마 도화지에 한정된 그림을 그리다가 넓은 공간에서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면 아이들이 좋아해요. 흥분하면서 감정을 뿜어내거든요. 잘 하는 친구들도 나중에는 현실적인 선택을 해 그래피티를 포기하는데 어쩔 수 없는 구조적 문제죠. 조금이나마 관심 있는 친구들에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합니다."

큰 창고를 빌려서 환풍기를 설치해 주말마다 아이들이 그래피티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레오다브는 합법적인 공간이 없어 몰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아쉬워했다.

"압구정에는 그래피티 토끼굴이 있어요. 서울의 명소가 됐죠. 호주 멜버른에도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촬영지로 유명한 그래피티 거리가 있는데 꼭 들르는 여행지가 됐잖아요. 인천시나 산하 자치구에서도 허가된 지역을 만들어주면 관광명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시사인천>에 실림
#그래피티 #레오다브 #녹사평역 #트레인 바밍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3. 3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4. 4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5. 5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