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눈치 보는 김무성,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주장] "노조 쇠파이프 대응 못해 10년 고생" 발언이 문제인 이유

등록 2015.09.03 11:26수정 2015.09.0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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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책자를 껴안고 청춘의 몸에 스스로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 그가 외친 말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였다.

'타이밍'이라는 약이 있다. 70년대 산업화 시절 철야 작업을 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이 타이밍이라는 각성제를 먹으며 몽롱한 정신상태로 미싱을 돌리고 기계 선반 작업을 했다. 공장관리자들은 송곳과 옷핀으로 노동자들의 팔을 찔러가며 피곤함에 찌든 노동자들을 깨웠다.

대한민국 산업화는 대단히 다이내믹하게 변화했다. 60년대 산업화 초기 섬유·봉제·신발 등의 단순 소비재 생산에서 출발해 전기·가전 등의 내구성 소비재산업으로 변했다. 이후 철강·금속·정유·조선·자동차등의 중화학 공업을 거쳐 전자·반도체·이동통신 등의 첨단산업으로 발 빠르게 변화해 왔다.

'기득권'으로 왜곡된 노조... 김 대표 발언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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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교섭단체 대표연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김무성 대표는 "새누리당은 개혁적 보수의 길을 걷겠다"며 "더불어 함께 사는 ‘포용적 보수’,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먼저 챙기는 ‘서민적 보수’, 부정부패를 멀리하는 ‘도덕적 보수’,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책임지는 보수’의 길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 유성호


그 과정에서 정부와 권력층은 기업에 각종 특혜와 각종 정책자금을 지원했고, 기업들은 손쉬운 성장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 일부를 권력층에게 반대급부로 제공하며 정경유착이라는 일그러진 단어를 만들어가며 재벌로 성장했다. 이러한 산업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공장의 기계설비의 일부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태일에서 시작해 동일방직, YH무역 노동자 사건은 노동문제의 사회적 인식을 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나 그때뿐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봇물 터지듯 터지던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와 노동조합 운동은 1997년 IMF 사태로 활기를 잃었다.

이후 정권과 보수 언론의 공격으로 민주노총과 전교조, 일부 노동조합은 "기득권을 지키는 이익집단"으로 국민에게 인식되고 말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폭과 마음의 골은 커지고 깊어만 갔다. 수많은 노동자가 싸우고 때로는 목숨까지 내놓았다. 기업들은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해갔고 정부는 기업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노동자들을 구속하고 일터에서 내쫓았다.


새누리당 김 대표가 2일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청년들이 스스로 3포, 5포, 7포라고 자조하고 포기했던 것을 다시 찾아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며 "청년세대들의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게 만든 최대 원인은 바로 일자리"라고 말했다. 또 "노동개혁의 성공 없이 다른 개혁의 성공은 불가능하다. 노동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특히 청년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노동시장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약자인 청년층과 비정규직이 오히려 노조 울타리 밖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특히 대기업 정규직 강성노조가 많이 포함된 민주노총의 경우 노사정위 참여도 거부하고 파업을 일삼으면서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우리나라 대기업, 특히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조는 전부 과격·강성·귀족 노조다. 매년 불법 파업을 일삼았다"며 "불법파업에 공권력이 투입되면 쇠파이프로 두들겨 팼다. 공권력이 그들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 대에서 10년을 고생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3만 불을 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 경제발전 정체의 원인을 대기업 강성노조의 불법파업으로 몰아갔다. 김 대표가 이런 발언으로 노리는 것은 뻔하다. 노동조합의 정상적인 활동을 부정적 의미로 퇴색시키고 전체 노동자의 10%에 불과한 노동조합 구성원들과 비노조 노동자들, 청년층을 갈라놓는 것. 나아가서 내년 총선에서 보수층을 결집하고 일부 젊은 세대층을 껴안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왜 노동개혁만 외치고 재벌개혁에는 입 다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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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기 위해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한 나라의 경제발전은 기업과 정부, 노동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경제성장의 과실은 기업이 대부분 가져가고 노동자들은 그들이 한 역할에 합당한 과실을 얻지 못했다. 김 대표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합당한 요구를 '경제발전에 걸림돌인 불법파업'이라 말하고 일부 과격한 시위행태를 전체 노동자로 확대해서 그것을 국민소득 3만 불 달성 실패의 큰 원인이라고 표현했다.

김 대표의 머릿속에는 재벌의 경제 독점, 정경유착, 비정규직을 양산한 정부의 정책 실패는 없고 오로지 노동자들의 불법파업 밖에 없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하는 노동개혁에 발맞추기 위한 김 대표의 이번 발언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특정 정당의 정치인이라도 최소한의 상식을 갖고 어떤 주장을 하려면 그에 맞는 근거를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김 대표에게 묻는다. 첫째, 어떠한 이유로 "노동자들의 쇠파이프"가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을 달성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한 것인지 구체적인 근거를 말해 보라. 둘째, 왜 노동개혁만 외치고 그 노동을 이용하는 재벌개혁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지 말해보라.

셋째, 재벌 대기업이 국가 경제와 사회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이 달성된다면, 그 성장한 소득이 국민에게 돌아가는가 아니면 기업들에 돌아갈 것인가? 김 대표는 국민의 대표인가, 재벌의 대변인인가?

김 대표가 집권당 대표이고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현실에서, 상식에 어긋나는 재벌 대기업의 상임고문 수준의 발언은 해명해야 마땅하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쇠파이프 #김무성 교섭단체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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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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