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상의 우호관계? 청와대의 '오역' 해프닝

시진핑 주석 발언 잘못 번역해 과장된 내용 배포... "기자들 빨리 지원하려다가"

등록 2015.09.02 23:36수정 2015.09.0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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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동대청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을 마치고 나서 오찬장인 서대청으로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럼? '역대 최상의 우호관계'란 말 자체가 없었던 겁니까."

2일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을 취재 중인 기자단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이날 열린 한중 정상회담 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발언이 잘못 번역돼 배포된 게 화근이었다. 청와대가 뒤늦게 '오역'임을 알리며 회수를 시도했지만 늦었다. 이미 각 언론은 "현재 한중 관계는 역대 최상의 우호관계로 발전했다"라는 시 주석의 발언을 주요 머릿말로 보도한 뒤였다.

처음 청와대에서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시 주석은 "한중 양국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강점에 맞서 싸웠고 마침내 두 민족은 목숨 걸고 맞서 싸웠다"라며 "마침내 두 민족은 목숨 걸고 맞서 싸워 해방을 이뤄냈다"라고 강조했다. 또 "오늘 날 박 대통령과 저의 협력으로 현재 한중 관계는 역대 최상의 우호 관계로 발전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 덕분에 한중 양국은 부분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등 현 양국관계의 발전을 박 대통령의 '업적'으로 평가했다.

단 두 문단에 불과했지만 그 발언 강도 덕분에 이는 크게 기사로 다뤄졌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다시 수정해 배포한 자료에서는 시 주석의 발언 강도가 크게 낮아졌다.

시 주석은 먼저 "한중 양국은 우호적인 이웃국가"라며 "역사적으로 한중 양국 국민은 식민침략에 항쟁하고 민족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단결하고 서로를 도왔다"라고 말했다. "목숨을 걸고 싸웠다" 등의 애초 표현은 없었던 셈이다.

"역대 최상의 우호관계로 발전했다"는 말은 없었다. 시 주석은 "한중 관계는 현재 정치적 상호 신뢰, 경제·무역 협력, 인적 교류가 함께 진전하는 기쁜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지지 덕분'이란 표현도 없었다. 시 주석은 "저와 박 대통령의 상호방문을 통해 (양국은) 일련의 중요한 공통인식을 달성했으며"라는 표현으로만 박 대통령의 대(對) 중국 외교 기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자칫 잘못됐다면 외국 정상의 공식 발언을 '마사지'해 성과를 포장하려 했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청와대 해명 "동시통역 때문에 발생한 해프닝, 양해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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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은 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동대청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당시 모습. ⓒ 연합뉴스


청와대 측은 이번 정상회담을 이례적으로 '동시통역'으로 진행하면서 생긴 해프닝이라고 해명했다. 통상 진행되던 순차통역의 경우, 외국 정상의 발언을 쉽게 옮길 수 있었는데 동시통역으로 회담이 진행되면서 시 주석의 발언에 대한 통역 내용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순차통역'에 비해 짧은 시간 안에 풍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던 '동시통역'이 사고를 불렀다는 역설이기도 하다(관련 기사 : 박 대통령 메뉴판에 적힌 '이심전심', 중국은 왜?).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시 주석의 발언을) 녹음한 것을 사후에 듣고 문화원 관계자에게 요청해 번역했는데 (이 관계자가) 오역했다"라며 "나름대로 최대한 빨리 취재기자들을 지원하려다 보니 오류가 발생한 것인 만큼 양해해달라"라고 말했다.

결국, '동시통역'은 끝까지 말썽이었다. 박 대통령과 리커창 중국 총리 면담 역시 동시통역으로 진행됐다. 리 총리의 모두발언은 청취불가로 판정돼 사실상 자료로 배포되지 못했다.

'오역' 해프닝은 이후 정부 발표의 신뢰도도 떨어뜨렸다. 실제로 중국 측이 따로 발표한 한중 정상회담 결과 자료에 한국 측에선 발표했던 ▲ 중국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지지 ▲ 10월 말~11월 초 중 한중일 3개국 정상회담 개최 합의 등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중국은 오늘 오시는 분들이 많고 많은 분들과 정상회담을 하시기 때문에 (발표를) 자세히 못한 것으로 안다"라며 "제가 알기론 '지역의 평화 번영 발전을 위한 노력들을 모색한다'라고 (중국 측 자료에) 기술돼 있다"라고 해명했다.
#박근혜 #시진핑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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