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회장님 와도 자가용은 못 탑니다

[행복사회 유럽 23] 신재생 에너지만 사용하는 '독일의 환경 수도' 프라이부르크

등록 2015.09.12 21:39수정 2015.09.1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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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5월,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는 선거의 한복판에 있었다. 유럽의회 선거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공보물이 도처에 나붙었다.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는 유럽 연합(EU)의 입법 기관이다. 27개 유럽 연합 회원국의 국민들이 5년에 한 번씩 직접 의원을 선출한다.

그러나 한국의 선거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거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듯 일상처럼 차분했다. 그 무렵 한국도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중요한 선거를 한 달 앞둔 시점의 한국의 저잣거리는 차분하지 않다. 입후보자나 유권자나 다소 들떠 있거나 소란하다.


몇 달 전까지 한 진보정당의 지방선거 공약을 준비한 나로서는 선거 벽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유럽과 한국의 선거가 어떻게 다른지 관찰하고 싶어졌다. 흥미롭게도 개중 녹색당, 해적당 등 군소 진보정당의 공보물이 단연 눈에 띄었다. 어떤 것은 선거공보물이라기 보다 대학로에 무질서하게 내걸린 문화예술 공연포스터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유럽인들의 정치 문화는 창조적이고 자유로워 보였다. 선거공보물의 디자인만으로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유럽의 선거는 정치인, 또는 입후보자들만의 배타적, 폐쇄적 행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시민들이나 유권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공동체의 축제나 향연에 가까워 보였다. 유럽에서 정치란 재미있거나 즐거울 수도 있었다.

그렇게 프라이부르크에서 유럽의 선거문화를 직접 목격하면서 '한국의 프라이부르크' 과천시의 선거상황이 저절로 겹쳐졌다. 당시 서형원 녹색당 후보는 정의당 황순식 후보와 경선에서 승리, 단일후보로 결정된 상태였다. 일종의 '적록동맹'을 통한 진보정당 최초의 독자적 지방정부를 실현할 호기를 맞이한 것이다.

당시 서형원 후보는 과천시를 '녹색 심장이 뛰는 녹색도시'로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선거구호도 녹색당다웠다. "새싹이 움트듯 나무에 물오르듯 피어라 과천!". 재선에다 과천시의회 의장을 지내는 등 나름대로 과천시민에게 충분한 신뢰와 지지를 확보한 서 후보였기에 일각에서는 당선 가능성마저 조심스레 점쳐졌다.

그때 나도 서 후보가 시장이 되면 과천으로 이사갈 마음의 준비를 약간 하고 있었다. 하지만 19.25%, 7121표 득표로 3위로 낙선하고 말았다. 딱 거기까지였다. 한국에서 녹색당의 꿈, 진보정당의 힘말이다. 한국은 독일이 아니고, 과천은 '독일의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가 아니었다. 독일 녹색당이 창당되고, 독일 최초의 녹색당 시장이 탄생한 그 생태도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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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포스터처럼 자유롭고 창조적인 유럽의회 선거공보물 ⓒ 정기석


프라이부르크는 신재생에너지만 사용한다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은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신재생에너지만 사용한다. 화석연료나 핵연료를 이용해 발전한 전기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시내에서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는 다니지 않는다. 아예 시내로 들어가지도 못한다. 도시 외곽에서 무조건 하차해 트램으로 갈아타거나 자전거를 타야 한다. 아니면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프라이부르크는 독일의 '환경수도'로 불린다.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의 역사는 1970년대 초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반핵운동에서 촉발됐다. 본디 이 도시는 독일에서 가장 품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던 곳이다.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은 포도나무와 와인을 포기할 수 없었다.

프라이부르크의 자산인 포도나무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결국 원전 건설 계획은 철회됐다. 원전 반대 운동으로 도시의 포도나무를 지킨 시민들은 이후 도시의 환경을 지키는 운동에 나섰다. 마침내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시의회는 '에너지자립도시'를 선언했다. '에너지 절약, 신재생에너지 개발, 에너지 효율 신기술 개발'이라는 세 가지 에너지정책을 원칙으로 정했다.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프라이부르크는 '자유의 성(Freiburg im Breisgau)'이라는 뜻을 지닌, 인구 21만의 작은 도시다. 하지만 전 세계에게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대부분 관광이 목적이 아니다. 인류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실증 모델을 벤치마킹하려고 모여드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웬만한 도시 행정가나 설계자들은 이 도시를 찾았을 것이다.

독일 교포 통역가이드 박동수씨는 프라이부르크에 들어서자 유독 말이 많아졌다. 공학도 출신이라 그런지 신재생에너지 생산기술을 비롯한 프라이부르크에 대한 자랑을 자꾸 하고 싶은 것이다. 그의 조국인 한국의 동포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듯했다.

"프라이부르크는 독일의 친환경운동과 정책, 그리고 신재생에너지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어요. 2022년에 완전히 모든 핵발전소를 영구 폐쇄하려는 독일의 정책의 시발점도 프라이브루크입니다. 이같은 정책을 이끌고 있는 녹색당이 바로 이 도시에서 창당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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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없는 도시를 목표로 운영하는 '카셰어링 시스템' ⓒ 정기석


프라이부르크를 재설계한 취리히공대 출신 공무원

"프라이부르크는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2000년 국제산업박람회에 친환경적 도시 프로젝트를 처음 선보였어요. 태양광 발전 등으로 에너지를 자급하고 전체 도시를 생태도시로 재설계한다는 계획이었어요."

한 시대를 규정하는 모든 새로운 역사는 그 문을 열어젖히는 위대한 선각자가 있게 마련이다. 프라이부르크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박동수씨가 그 중 한 사람을 소개했다.

"프라이부르크의 생태도시 전환 계획은 한 시청 공무원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어요. 아인슈타인이 공부한 스위스 취리히공대에서 도시설계를 공부한 드레슬(Dressel)씨입니다. 30여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취직한 곳이 프라이부르크 도시설계과였어요. 아직도 거기서 일하고 있습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직장을 구한 드레슬씨는 이곳으로 이사와 변두리 아파트에서 자취 생활을 했다. 도시설계가인 그의 눈에는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가 뒤섞인 프라이부르크가 무질서하고 지저분하게 보였다. 그는 자신의 일터이자 삶의 터전인 도시를 쾌적한 생활공간으로 리모델링하고 싶어졌다. 그의 그러한 구상을 접한 지역의 주민들은 호응과 지지를 보냈다. 드레슬씨는 도시 전체를 재설계하는 중책을 맡고 그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그는 시청 도시설계과에서 그대로 근무하고 있다. 독일인들은 자신이 일을 시작한 장소에서 평생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이사를 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가거나 그만 두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전문가를 잘 키우지 않는 한국의 공무원 사회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부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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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시브하우스, 에너지플러스 하우스 등 생태건축으로 조성된 에너지자립 생태주거단지. ⓒ 정기석


프라이부르크 시내에서 모든 자가용 통행금지

프라이부르크에서 사는 시민들이나 방문객들은 굳이 자가용 자동차를 탈 필요가 없다. 트램, 버스 등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서남북, 사통팔달 차선들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 트램 노선에는 소음을 흡수하기 위해 레일 사이로 잔디를 심었다. 자동차의 시내주행 제한속도는 30km다.

카 셰어링(Car Sharing) 시스템도 언제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다. 그러니 굳이 자가용을 소유할 필요가 없다. 시내 도심으로는 아예 자가용이 들어갈 수도 없다. 자가용을 소유하고 운전하는 사람을 더 불편하게 만든 시스템이다. 자가용이 없어야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도시다.

시내 도심으로는 자전거와 전차,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만 진입할 수 있다. 차가 함부로 다닐 수 없는 시내 도심은 보행자들의 천국이다. 차보다 사람이 늘 먼저다. 전체도로 540km 가운데 자전거 도로가 410km에 이른다.

작은 실개천 '베히레(Baechele)'가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총 연장 20km가 넘는다고 한다. 1500년대부터 하수도, 소방용수 용도로 독일 전역에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직 프라이부르크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프라이부르크의 명물인 셈이다. 자연스럽게 도시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홍수를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전임 서울시장이 이것을 보고 흉내내서 만든 모사품이 광화문광장에 있다고 한다. 가서 눈으로 직접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서울시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홍수를 조절하는 기능은 있는지.

프라이부르크의 외곽도 생태도시로서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 울창한 흑림(Schwarzwald)이 도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남북 길이만 130km에 달하는 광대한 숲이다. 흑림은 이 도시를 신선하게 유지하는 청정공기의 공급원이다. 흑림에서 불어오는 자연 바람이 도시로 잘 스며들고 통과하게 하려고 프라이부르크는 고층빌딩 건축을 허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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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이 공동 출자, 운영하는 흑림(Schwarzwald)의 풍력발전소. ⓒ 정기석


생태마을 보봉단지에 로자 룩셈부르크 거리가

2차대전 이후 프랑스 군대가 주둔하던 터는 생태마을 보봉(Vauban) 단지로 변했다. 원전 건설 계획을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막았다. 생태마을 건설을 위한 시민자치 모임 '보봉포럼'이 단지 설계를 주도했다. 설계의 기본원칙은 인근 흑림의 목재로 지은 패시브하우스, 에너지플러스 하우스 등의 생태건축,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자급으로 정했다. 

시민들이 건축이나 에너지 기술 못지 않게 더 중요하게 고려한 단지 설계의 원칙은 따로 있다. 바로 이웃과의 교류와 공감이다. 일단 가가호호 집과 집 사이에는 담이 없다. 모든 집들이 마당으로 연결이 되어 문과 벽으로 닫히거나 막히지 않는 허물없는 이웃으로 지낸다. 도시지만 마치 여느 농촌지역의 마을공동체 풍광이 자연스럽게 연출된다. 문과 담이 사이에 가로놓여 있지 않으니 서로 피하거나 외면할 도리도 없다.

2000여 가구, 5천여 명의 주민이 상주하는 보봉생태주거단지의 목표는 '탄소 제로 도시'다. 사용하는 전기는 모두 태양광 발전에 의존한다. 생산량이 사용량을 초과해 남은 전기는 다시 되팔아 부수입도 챙긴다. 차 없는 마을, 자원순환 마을, 태양에너지 주택 등 에너지자립마을 보봉단지가 추구하는 핵심가치다.

단지 내 중심거리에는 사회주의 혁명가의 이름이 붙어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독일 공산당의 전신인 스파르타쿠스단을 설립한 핵심 인물, 스위스 취리히에서 법률학과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유태인, 민족주의보다는 국제사회주의를 옹호한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거리를 거닐면서 그녀의 이름이 붙어 있는 이유를 곱씹어 보았다. 군부대가 철수한 자리를, 원전건설 계획까지 철회 시키고 생태주거단지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시민들의 정신을. 그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현장의 의미를.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를 인간 본위로 해석한 그녀 로자 룩셈부르크의 생애를, 국제사회주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민주주의와 대중혁명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한 그녀, 로자 룩셈부르크가 후세에 남긴 불멸의 유훈을.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은 그 유훈을 거리에, 저마다의 가슴에 깊이 새겨두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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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부르크 보봉생태주거단지의 '로자 룩셈부르크 거리' ⓒ 정기석



○ 편집ㅣ박순옥 기자

#프라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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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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