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모텔에 간 소녀들, 무얼 하고 놀았을까

[김성호의 독서만세 71] <최선의 삶>

등록 2015.09.07 11:02수정 2020.12.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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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신경숙과 박민규의 표절 사태로부터 불거진 일련의 논란은 오늘날 한국 문학계가 어떤 지경에 이르러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잊혀질 만하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표절 논란은 한국 문단은 물론 작가 본인에게도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일이었는데 이번만큼은 대중의 반응이 전과 사뭇 달랐다. 과거 어느 때보다 SNS 및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환경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겠지만 누적되어 온 문단에 대한 불신이 표절 의혹을 사회적 이슈로 키웠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신경숙 사태에서 작가 본인, 창비와 문학동네로 대표되는 출판계, 나아가 문단을 대표하는 유력 작가들마저도 실망스런 대처를 보여줬다. 합리적 의혹에 불합리한 부인으로 일관하거나 일부 시인하더라도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목격한 시민들이 실망하는 대신 차라리 분노하길 선택한 것도 우연은 아닐 테다.

한국 문학이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주는 징조는 지난 십수 년 동안 끊이지 않고 나타났다. 가뜩이나 책이 안 팔리는 서점에서도 한국 소설은 가장 안 팔리는 축에 속했다. 온갖 종류의 자기계발서는 물론 일본과 미국소설에게까지도 밀려 버린 한국소설은 대학교 도서관 대출 순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까지 몰렸다. 독자들이 한국 소설을 외면하는 징후가 명백했지만 문학계에선 이렇다 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독자에게 외면 받으면서도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 버린 구조를 개선하려 하지 않은 문학계가 신경숙 표절 사태로 전 국민적인 반감에 직면한 건 그리 놀랍거나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더없이 위태로운 한국 문학의 오늘을 타개하기 위한 움직임은 어디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까. 많은 의견이 있겠지만 한국문학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작가의 확충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위한 첩경이다.

문학동네가 지난 2011년부터 시행해온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은 한국 문학계에 다양성을 수혈하기 위한 움직임 가운데 하나다. 작가로서의 삶을 선택하기 쉽지 않은 사회구조 속에서 대학소설상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지만 아직 무르익진 못한 청년 작가를 발굴하는 등용문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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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삶 ⓒ 문학동네

임솔아의 <최선의 삶>은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의 다섯 번째 당선작(첫 회에선 두 편의 당선작이 나왔다)이다. 앞서 이 상을 수상한 네 작품이 그랬듯 젊은 작가가 아니면 풀어 놓기 어려운 이야기를 용감하게 써내려간 작품이다.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구성을 지녔으며 대학소설상에 응모한 작품치고는 깔끔한 문장과 흡입력을 자랑한다.

저자인 임솔아는 이 소설을 '열여섯 살 이후로 끈질기게 자신에게 찾아왔던 악몽'에 대한 이야기라고 규정한다. 그는 '오랜 내 다그침으로부터 악몽을 풀어줄 때가 되었다'며 소설을 완성함으로써 '나와 나의 악몽은 이제 최선을 다한 헤어짐을 겪게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가 스스로 악몽이라 말할 만큼 고통스러운 이야기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이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악몽이든, 경험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든 간에 <최선의 삶>이 바로 그 '악몽'을 소설적으로 구현한 작품인 점만큼은 명확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대덕연구단지 연구원들이 사는 대전 전민동 중학교로 위장전입해온 여중생 강이다. 가난한 읍내동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전민동으로 옮겨온 강이는 좀처럼 전민동 아이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점차 스스로를 외부인으로 타자화해 나간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처럼 자신을 구분 짓지 않는, 소위 질이 좋지 않다고 여겨지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소설은 강이가 소영, 아람이라는 친구와 함께 서울로 가출하는 에피소드로 시작해 예상과 달리 험난했던 서울에서의 삶,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모습, 집으로 돌아와 새로운 양상의 갈등을 겪는 과정, 마침내는 파국적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경제적으로 열등한 외부인으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외로운 강이, 예쁘고 공부까지 곧잘 하지만 불만족스런 환경 가운데 엇나가는 소영, 가정폭력과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아람까지. 소설은 강이의 시점에서 다른 두 명의 여학생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조금씩 비틀려 가는 이들의 삶을 그려낸다.

친구의 생일이 다가오면 우리는 몇 주씩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무인 모텔에 갔다. 환하게 불을 밝힌 무인 정산기는 친절했다. 정산기는 우리를 반가워했다.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고, 질문을 하지 않았다. 무인 모텔은 재떨이를 닮았다. 어디에나 있고, 아무나 쓰고, 아무나 더럽히고, 더럽혀도 다시 새것이 되고, 우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곳은 우리에게 집이 되어주었다. ​해변에 온 것처럼 우리는 한꺼번에 옷을 벗었다. 남이 흘리고 간 체모 위에 우리의 체모를 흘려놓았다. 옆방에서도 나올 포르노를 틀어놓았다. 바닥에 둘러앉아 소주를 마셨다. 뒹굴거리다보면 누가 누구인지 잊혔다. 자정이 되면 친구의 생일을 축하했다. 아침이 되면 순서대로 화장실에 들어가 비치되어 있는 칫솔 두 개로 차례차례 이를 닦았다. 같은 샴푸로 머리를 감고 같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거울 앞에 놓인 스킨과 로션을 같이 발랐다. 아무나 쓸 수 있는 샴푸 냄새와 로션 냄새를 똑같이 풍기며 같은 냄새가 되었다. 나는 친구들이었다. 전날에 묵었던 손님이었다. 옆방, 윗방, 아랫방 손님이었다. 내일 묵을 손님이었다. 아무나였다. 그날은 세상 누구나의 생일이었다. - 32p

​집안 환경부터 외모나 성적 등 여러모로 다른 조건을 가진 아이들은 가출 후 처음 얼마 동안은 서로의 같음을 확인하고 묘한 일체감까지 느낀다. 소녀들은 아무도 자신들을 모르는, 자신들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며 스스로의 방식으로 조금씩 세상을 알아간다. 하지만 그들이 만난 세상은 아직 어리고 나약한 소녀들이 살아가기엔 어려운 환경이었고 이내 소녀들은 세상으로부터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받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그들을 힘들게 한 건 그들 서로가 결코 같지 않고, 같아질 수도 없다는 데 있었다. 힘든 환경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했던 아람과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려던 강이, 부모에게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고 싶었던 소영은 가출의 동기부터가 같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자신의 꿈을 부모에게 허락받기 위한 수단으로써 가출을 택한 소영은 가출이 대안이었던 아람이나 목적이었던 강이와는 결코 같아질 수 없었다. 결국 아람과 소영의 거리는 조금씩 벌어지게 되고 그들의 가출은 갑작스레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소영의 선언과 함께 막을 내리고 만다.

소설은 가출했던 시간 동안 서로의 다름만을 확인한 세 아이의 이야기에서 학교로 돌아온 뒤 빚어지는 일련의 갈등으로 곧장 옮겨간다. 여중생에게 학교는 곧 세계와도 같기에 그곳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폭력을 경험하고 자기들의 세상으로 돌아와서는 서로에게 또 다른 폭력을 가하는 아이들. 세상을 경험하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꼭 아름답고 긍정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는 걸 소설은 말하고 있다.

서로를 구분 짓고 편 가르며 따돌리고 폭력을 행하는 아이들의 삶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소설의 제목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싶었던 아이들은 왜 이토록 망가지고 서로를 망가뜨려야 했던 것일까. 소설은 이 질문에 끝내 답을 내리지 못하지만 처음부터 답을 내리고자 의도했던 작품이 아니었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전반부는 매력적이었다. 가볍고 경쾌한 이야기가 순식간에 깊고 아픈 이야기로 독자를 끌고 들어가는데도 별다른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반부의 매력적인 전개에 비해 후반부가 진부하고 때로 촌스럽게 느껴지긴 했지만 소설의 가치까지 퇴색되진 않았다. 아마도 내면과 진솔하고 끈덕지게 대화한 끝에 얻어낸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 한 편에 존재하는 불합리한 면을 소녀들의 세계 안에 구현한 솜씨도 대학소설상에 응모한 작가의 것 치고는 상당했다. 뚝뚝 끊어지는 전환이 세련되지 못하고 위기와 결말도 전형적인 에피소드들로 꾸려지는 등 완성도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쉽게 잘 읽히는 작품이란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장점이다.

언젠가는 한국문학작품 가운데서도 <데미안>이나 <호밀밭의 파수꾼>, <젊은 예술가의 초상>, <토니오 크뢰거> 등과 비견될 만한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단박에 최고수준까지 치닫긴 무리겠지만 임솔아와 같은 젊은 작가의 등장은 한국문학의 미래를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게끔 하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늦었지만 그녀의 수상을 축하한다. 부디 노력하고 분발해 독자들에게 진솔하고 매력적인 작품을 선사하는 작가로 성장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최선의 삶>(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5.07. / 1만원)

최선의 삶 -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임솔아 지음,
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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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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