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아, 만화책보다 이 책이 더 낫지 않을까?"

[말없는 약속 20년 35] '내게 없어서는 안되는 것'을 생각하렴

등록 2015.09.10 16:44수정 2015.09.11 14:5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덕이의 '야자'시간을 위해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무겁게 느껴졌다. 직감 때문이었을까. 담임 선생님을 뵙고 덕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자리도 지키고 반 아이들의 학습에 방해 되지 않는 방법으로 교과목이 아닌 다른 것을 해도 가능할지 여쭈었다. 선생님은 '안 된다'고 하시며 '덕이가 교과목 공부를 계속 해야지, 모른다고 다른 것을 하니 더 모르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한 마디 더 하셨다. "고모가 너무 덕이를 과잉 보호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라고.

나는 위암을 비롯해 2년에 걸쳐 대수술을 3번을 했다. 몸에 기운이 없다보니 정신력 또한 약해지고 인내심, 이해심, 배려심이 예전만 못함을 알 수 있었다.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그건 당신 생각이고"라는 말이 혀에서 맴돌았다. '과잉 보호'라는 말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죽하면 그러겠는가'라는 입장을 살펴준다면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기의 발동, 부글부글 끓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다시 숙여서라도 원하는 목적을 오늘 나는 얻어가리라'라는 오기가 발동했다. 야자를 위해 학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위한 야자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던 나였다. '아니, 이게 이렇게 사정할 일인가. 물론 학생 신분이면 학교의 원칙과 규칙을 따라야 하겠지만 야간 자율 학습 시간이 학생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학생이 야자의 필요를 채우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는 등의 별별 생각이 내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한 마디 나왔다.


"예, 선생님 말씀을 잘 참고하여 덕이를 지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방학 때 '교사 연수'를 강의하면서 현직 선생님들을 통하여 듣게 되었는데∼"

그 뒤를 이어 말하려는데 무슨 일인지 선생님의 태도가 갑자기 변하면서 말을 바꾸어 "덕이가 너무 힘들어하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하셨다. 좀 전의 태도와 너무 달라서 무슨 일인가 싶어 "네?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덕이가 원하는 것을 해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라고 되묻자 '그렇다'는 것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선생님의 태도를 뒤로 하고 교무실을 나오는데 덕이와 함께 마라톤을 하시는 선생님을 만났다. 잠깐이지만 안부 정도의 인사를 나눈 후 돌아와 덕이에게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원하는 책을 골라가 조용히 보거나 써도 된다고 하셨다고 말하자 덕이가 좋아하는 만화책부터 골랐다.

고모 : "덕아~ 선생님께서 허락은 해주셨지만 고모 생각에 만화책은 집에서 보고 학교에는 다른 책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떠니?"
덕 : "무슨 책?"
고모 : "덕이에게 만화책 보다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책?"
덕 : "무슨 책?"

고모 : "나는 덕이가 선생님께 어렵게 허락받은 만큼 그 시간(야간 자율 학습)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어. 학교에서 만화책보는 것을 선생님은 어떻게 여기실까?"
덕 : "담임 선생님?"
고모 : "응. 담임 선생님께서는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덕이가 국어나 수학 같은 공부를 하기 원하시지만 덕이를 존중하기 위해 네게 유익한 것을 해도 좋다고 하셨거든.

덕 : "유익한 것?"
고모 : "응. 예를 들어 지금 당장 재미는 없다고 느껴지더라도 덕이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왜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하고 사람을 사랑해야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렇게 할 때 덕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한 성경의 복음서?"

덕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덕이는 재밌는 만화책을 가지고 갈 생각이었나 보다.

중요한 것은 '헤아리기'

고모 : "고모는 지금 생각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살아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배워서 실천 해보고 싶거든. 예수 그리스도는 아주 멋지게 사신 것 같아서... 그래서 덕이에게 권해보는 거야."
덕 : (아무 말 않고 만화책 몇 권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

고모 : "덕이는 만화책을 가져가고 싶은데 고모가 이런 말 하니까 고민되나보다 그치? 덕아, 나도 덕이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하고 싶으나 한편으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덕이를 책임있게 지도해야하는 나로서는 늘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설명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단다.

사실 나 또한 이런 저런 설명을 덕이에게 해줄 때 덕이가 잔소리로 여길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지만 너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그 다음은 무엇들이 있는지를 알고 생활할 때 너가 우선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서 덜 혼란스러웠으면 좋겠어. 또한 상황에 따라 쉽게 흔들리지 않고 너를 보호하고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래."

덕 : "중요한 것?"
고모 : "응. 중요한 것을 바꾸어 말하면 너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란다."
덕 : "없어서는 안 되는 것?"
고모 : "응, 일단 덕이에게 할머니는 지금 꼭 계셔야 하는 분이지?"

덕 : "응"
고모 : "그러니까 할머니는 너에게 중요한 분이 되신단다. 할머니를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생각한다는 뜻이야~ 나는 덕이에게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쯤 되면 덕이가 "고모도 중요해"라고 해줄줄 알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약간 옹졸해 보일 수도 있으나 내 입으로 물어서 다시 확인하고 싶어졌다.

고모 : "나는 덕이에게 중요한 사람일까?"
덕 : "응"
고모 : "고마워! 나에게는 너가 아주 아주 중요하단다. 나에게 책임감을 지니게 해서 살아갈 힘을 주고 있어."

덕 : "할머니두~"
고모 : "그렇지 할머니두."

다행스럽게도 덕이는 내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설명해주면 잘 받아들인다. 아마도 그래서 덕이가 더욱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덕이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미리 미리 연습을 자주 하곤 한다. 어떻게 해야 덕이의 심정을 먼저 헤아려 이해해주고 그 다음에 지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우선순위 #만화책 #예수 그리스도 #할머니 #고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