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언니들 "인생 가장 멋진 일은 노동조합 활동"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창립 20주년 <언니들에게 듣는다> 펴내

등록 2015.09.14 14:37수정 2015.09.1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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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참 잘 살았다", "그때 너무 많이 아팠겠구나", "네가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었어", "훌륭히는 아니지만 이 자리에서 니 역할을 하면서 그런대로 잘 살고 있네", "제 인생에서 가장 크고 멋진 일은 노동조합 활동했던거라예", "별거 아니두만, 감옥 가는 것도…."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일하고 노동운동했던 여성노동자들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말이다. (사)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을 되살리는 구술집 <언니들에게 듣는다>를 펴냈다.

20대에 머리띠를 두르고 '노동해방'을 외쳤던 여성노동자들은 이제 50대 아주머니가 되어 있기도 한다. 이 곳 출신 가운데는 경남도의원과 창원시의원을 지낸 이도 있어,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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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을 되살리는 구술집 <언니들에게 듣는다>를 펴냈다. ⓒ 마창여노회


마산수출자유지역 외자기업의 폐업과 집단해고에 맞서 싸웠던 여성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투쟁과 삶을 총 458쪽에 걸쳐 정리한 책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한 복판에서 직접 몸으로 부대끼며 수출자유지역을 활보했던 주역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가감없이 담겨 있다.

여성노동자회는 올해 6개월 동안 집담회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여성노동자회는 "구술작업은 80년대 수출자유지역 여성노동자들을 주축으로 진행하였다"며 "80년대 수출자유지역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노동조합 활동, 일상적 삶을 그대로 복원하고자 하였다"고 밝혔다.

마산수출자유지역에 대해 여성노동자들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고, 대부분 20대 초반의 나이에 토요일이나 일요일도 없이 보냈다"며 "어린 10대들은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일했고, 관리자들의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분위기에 쥐꼬리만한 월급봉투를 쪼개 동생들 학교 보내고 집안 가장 역할을 하는 동료들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87년 노동자대투쟁에 앞장서기도 했다. 여성노동자회는 "당시 마산수출자유지역 언니들은 '우리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민주노조 깃발을 움켜쥐고 거리로 뛰쳐나갔다"며 "한때 민주광장이라 불렀던 수출자유지역 후문을 생각하면 그 찬란했던 투쟁의 기억들이 어제 일같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수출 안 골목골목은 최루탄 냄새로 뒤덮였고, 그 골목을 우리는 해방구라 부르며 열심히 뛰어 다녔다"고 덧붙였다.

1992년 2월 26일이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창립일이다. 이들은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는 우리의 희망은 자본철수로 무너졌고, 거리로 내몰린 우리에겐 또 다른 무기가 필요했다"며 "외자기업의 폐업과 집단해고에 맞서 싸웠던 여성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모임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마수자와 공창원의 사랑가" 꽁트 유행

<내사랑 마창노련>을 펴낸 김하경씨는 이 책 추천사에서 "수출자유지역 여성노동자들은 창원공단 남성노동자들과 나란히 마창노련을 이끄는 쌍두마차였던 것"이라며 "'마수자와 공창원의 사랑가'라는 꽁트가 유행될 만큼 둘의 존재는 팽팽했고 막강했다"고 밝혔다.

몇몇 여성노동자들이 밝힌 경험담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5년 동안 3교대를 했는데, 야간은 정말 피 말리는 거였거든요. 야간 들어갈 때 잠이 오니까 뜨거운 물도 안 주고, 야식도 안 주고, 아무 것도 안 주니까 잠을 안 잘라고, 동서식품에서 처음 나온 네모 난 커피믹스가 있었어요. 뜨신 물도 없으니까 그걸 그냥 씹어 먹고 들어가요. 그걸 몇 개 사가요. 잠이 올 때마다 그걸 씹어 먹어요. 여름에는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에 잘 풀리지도 않는 커피믹스를 타가지고 마시고, 남는 건 결국 또 씹어 먹죠. 잠 안 오는 약, 타이밍은 수시로 복용했습니다. 제가 평생 먹지 못할 타이밍을 이때 다 먹지 않았나 싶은데"(이연실).

"남자들 군복 줄 만들어서 하는 것처럼 해서 입고 다녔어요. 그리고 제가 들어간 83년도에는 아마 잔업 쎄빠지게 하고 9만원 받았고, 잔업 안 하면 급여가 7만 얼마를 받았던 거 같애요. 83년 7월, 8월에. 90년 해고 당시에는 제가 얼마를 받았는지 보니까, 한 달에 24만 원 정도를 받았더라고예. 보너스를 두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받았으니까"(김해영).

"말이 그냥 욕으로 섞여서 하는 게 일반적이었구요. 뺨 때리는 것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죠. 그래서 신흥화학이 노조를 만들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뭐였냐 그러면, 언어폭력, 사람 때리고 이랬던 관리자들 갈아 치우는 게 첫 번째 요구였어요. 그래서 결국은 관리자들 해고시켰죠. 노조를 만들면서 같은 노동자의 해고를 요구하는 게 정당하냐, 할 수는 있지만, 그 당시에 워낙 그런 울분들이 강했기 때문에 노조가 첫 번째 요구를 그걸로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죠. 남성들도 그때는 들어갈 때 머리도 깎기고, 길다고. 조인트 맞고 그랬을 때라고 그러니까. 그 당시는 현장 분위기가 인권이라는 게 찾아볼 수 없었죠. 그래서 우리가 노조 만들면서 제일 첫 번째 요구들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구호였죠"(이종엽).

이밖에 이옥선(역사의 빈 공간을 메우려 합니다), 강인순(동생 노동자들에게 들려주는 언니,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 권옥선·김순자·김해영·이한금(한국동경전자, 우리들의 20대가 자랑스럽다), 김경영(한국웨스트전기, 나와 세상이 같이 가는 운동), 송미옥(한국웨스트전기,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됐어요), 한경숙(동경전파, 힘이 있어야 돼요), 이옥선(한국태양유전,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 손성란(한국스타, 내 인생에서 가장 크고 멋진 일), 하영란(소니전자, 가제트 팔)씨 등이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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