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과 한국의 정치경제 그리고 대안

[서평] 이병천 교수의 <한국 자본주의 모델> ②

등록 2015.09.15 14:13수정 2015.09.1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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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 모델> 표지 ⓒ 책세상

* 지난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저자의 한계와 '특권'이라는 잣대

책 <한국 자본주의 모델>의 장점은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한 점이다.

역사에 대한 진보의 시각을 '자학사관'으로 부르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으나 현대사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에 대한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그뿐 아니라 보수의 자만사관의 논리가 얼마나 구멍이 많고 왜곡돼 있는지도 잘 집어내고 있다.

그리고 민주정부 10년 동안의 성과가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를 분석하면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한 것은 한국현대정치경제사에 대한 내공이 깊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진보개혁 세력의 필독서로 삼아도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저자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한계가 있다. 첫째는 대기업 재벌에게는 엄정한데 비해 대기업과 공기업의 정규직 조직노동에 대해서는 관대하다는 점이다. 한진중공업의 희망버스가 실패한 이유 중의 하나로 광범위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본문 222쪽), 어찌해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검토하지 않는다.


사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엄청난 격차를 낳은 원인 중에는 공기업과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의 조직 이기주의도 한몫한다는 점,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구조조정의 안전판으로 여긴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더구나 대기업 정규직이 고수하는 연공임금-종신고용 체제를 고치지 않고서는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저자의 편향적인 태도는 아쉽게 다가온다.

둘째, 토지를 중요한 변수로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동산 투기 이익을 누락시키고 박정희 정권기의 분배 상태를 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점(본문 94쪽), 농지개혁을 중요하게 다룬 점,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부동산 재테크에 열을 올렸다는 점 등을 다룰 때 토지 부동산을 언급하고 있지만, 토지가 생산과 분배에서 그리고 정치와 경제의 유착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제대로 검토하고 있지 못하다.

셋째, 평가 기준의 모호성이다. 식민지,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그리고 민주정권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일관된 기준이 필요한데, 그런 기준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승만 정권에 대해서는 퇴행적 유착관계를,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는 생산적이지만 폐쇄적인 유착관계를, 민주정권에 대해서는 재벌체제가 오히려 강화되었음을 지적했는데, 이 전체를 꿰뚫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다.

이승만의 정치적·경제적 특권

하여 필자는 '특권' - '특권'이라는 아이디어는 경북대 김윤상 석좌교수에게 얻었다. 자세한 내용은 <특권 없는 세상> 참조 - 이라는 잣대로 한국의 정치경제사를 들여다 볼 것을 제안한다. 특권으로 보면 모든 부면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빠짐없이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먼저 이승만 정권을 평가해보자.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특권 자체도 문제지만, 여기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정치적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적 특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거부정과 무리한 개헌을 통해 정치적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양민 학살 등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승만 정권은 경제적 특권을 소수 재벌에게 몰아주면서 거액의 정치자금을 챙겼고 그 돈을 부정선거와 정치공작에 마구 쏟아 붓다가 붕괴해버렸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이 특권해소에 기여한 것이 있다. 그것은 성공적인 농지개혁과 교육기회의 확대이다. 농지개혁은 토지특권을 구조적으로 완전히 해체한 것은 아니나, 지주들의 특권을 궤멸시킨 것은 분명하고 교육기회 확대도 교육특권을 해체한 측면이 크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거의 모두가 교육기회 확대와 농지개혁이 대한민국 공업화의 기반이었다고 하는 것에서 우리는 경제발전의 진정한 토대는 특권타파임을 여기서 확인하게 된다.

특권으로 본 박정희 정권의 공업화

앞서 말했듯이 이승만과 박정희의 다른 점은 성과 규율 체계 존재 여부에 있었다. 은행을 틀어 쥔 국가가 집중적으로 육성할 전략산업(target industries)을 선택하고 여기에 호응하는 소수의 재벌에게 엄청난 자금을 몰아주고 수출이라는 실적을 요구했는데, 이것이 바로 공업화를 이끈 요인이다.

그러나 국가는 특혜가 낳은 열매를 특혜에서 배제된 중소기업과 노동과 나누도록 강제하지 않았고, 재벌이 독차지하게 만들었다. 또한 박정희 정권 때에는 토지특권도 기승을 부렸다. 경북대 이정우 교수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 초기 3조 원이던 전국 지가총액이 1979년에 가서는 329조 원, 즉 박정희 정권기간 동안 지가 불로소득이 326조 원(생산소득의 2.5배)이나 되었는데, 이것이 국민경제와 대중의 삶에 끼친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다(이정우, 2011, "개발독재가 키운 두 괴물, 물가와 지가", 유종일 역음, <박정희의 맨얼굴>, 시사IN북, 86쪽).

이렇듯 특권은 불로소득을 낳고 불로소득은 사회와 경제 전체를 병들게 한다. 박정희 정권이 재벌에게 온갖 특혜와 특권을 몰아주고 성과를 요구한 것으로 경제는 성장했지만, 특권을 부여받은 주체들은 특권에 대한 대가를 사회에 지불해야 된다. 특권이익을 사유화하게 두면 결국 엄청난 비효율과 수많은 피해자를 낳기 때문이다. 1960~1970년대 수많은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은 토지특권이 낳은 불로소득과 재벌이 누린 특권이익 때문에 자신들이 일한 대가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소수의 특권그룹과 한 배를 탔기 때문에 특권이익을 환수하지 못했고 결국 비극적 결말로 끝을 맺게 되었다.

민주정부 이후에 탄생한 '하위' 특권 그룹

앞서 다룬 것처럼 재벌의 특권은 민주정부 내에서 더욱 확대·심화됐다. 재벌의 특권이 심화되어 공고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결국 중소기업이 그만큼 위축되었다는, 다른 말로 하면 중소기업이 자신이 노력한 것을 재벌 대기업에게 지속적으로 빼앗겼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새롭게 탄생한 특권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공기업과 재벌 대기업 정규직 노동의 특권이다. 이들이 무슨 특권을 누리고 있냐고 할 수 있으나, 이들과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의 처우수준과 비교하면 특권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구별을 위해서 대기업 재벌을 '상위'특권그룹이라고 한다면, 이들은 '하위'특권그룹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금융기관인 채권자에게 우호적인 파산법도 하나의 특권을 만들어내는 제도로 봐야한다. 이병천 교수가 지적했듯이 "국가로부터 공짜로 돈 장사를 할 수 있는 면허 특권을 받은" 은행이 "위험을 거의 중소기업, 창업기업에 전가"(본문 269쪽)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특권이익은 금융기관과 금융기관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향유하고 있다.

그렇다. 지금 한국은 재벌이라는 '상위' 특권 그룹과 공기업과 대기업 재벌 정규직과 금융기관 등의 '하위' 특권 그룹이 특권 이익을 누리고 있고, 국민의 90%는 특권의 희생자가 되어 있다. 여기에 특권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토지특권이 바탕에 깔려있는데, 유동성 과잉 시대인 2000년대 이후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토지특권이 낳는 불로소득을 맛보기 위해서 부동산 투기에 달려들었다가, 결국 가계부채가 폭발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특권이라는 안경의 유용성

이렇게 분석해보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해진다. 그것은 바로 특권해체다. 재벌과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특권을 해체하여 바닥을 기고 있는 중소기업과 창업기업이 마음 놓고 생산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대기업·공기업·금융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특권을 점차적으로 내려놓도록 하여 정규직-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대기업 노동 간의 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 그리고 만성화되어있는 토지특권을 해소하여 경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이병천 교수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검토는 우리에게 상당한 통찰을 준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그러나 공기업과 대기업 정규직 노동이 누리는 기득권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중요한 변수인 토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한계라 할 수 있다.

이런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분석 틀이 필요한데, 여기서 필자는 하나의 대안으로 '특권'을 제시했다. 한국 현대사 전체를 놓고 보면 특권을 해체한 것 - 농지개혁을 통한 토지특권 해체와 교육기회 확대를 통한 교육특권 해체가 여기에 해당된다 - 이 경제성장과 분배개선에 도움이 되고, 오히려 특권을 방치하거나 강화한 것이 양극화와 경제위기, 사회불안의 주된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권의 강점은 무엇보다 이해하기 매우 쉽다는 점이다. 특권을 없애야 한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맑은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리고 특권은 재벌뿐만 아니라 금융, 토지, 노동 등에 두루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어서, 지금까지 진보가 보여준 편향성과 보수가 보여준 억지 논리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 자본주의 모델> 서평 두 번째 글입니다.
#이병천 #토지정의 #특권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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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전 국민 주거권과 토지공개념 실현, 토지보유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인 토지배당제를 위한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땅에서 온 기본소득, 토지배당》(2023, 공저), 《아파트 민주주의》(2020),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2018, 공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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