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 묘지공원 한 번 만들어 봅시다"

[인터뷰]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행동가' 오성규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등록 2015.09.18 20:53수정 2015.09.1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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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규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이 '웰다잉과 성숙한 장례 문화를 위하여'란 주제로 지난 11일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서울시설공단 최우영


서울시설공단이 '상식'을 깨고 있다. '서울시 소유 시설물을 관리하는 곳'이란 통념을 뛰어넘는 다양한 행보를 선보이고 있는 것.

최근 '생사 문화의 날' 행사만 봐도 그렇다. '장례 문화 개선 시민 캠페인'을 서울시설공단이 주최한다는 자체가 어찌 보면 낯설다. 지난 5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서울형 착한 장례 서비스'나 코리아해리티지센터와 함께 만든 여행 프로그램, 삶과 죽음의 공간을 함께 돌아보는 '웰다잉 투어' 역시 '응?'이란 물음표가 따라붙을 만하다.


이런 변화에 대한 공무원 조직의 평가는 후한 편이다. 지난해 서울시설공단은 서울시 산하 공기업 중 행정자치부, 서울시 지방공기업 평가, 기관장 평가 등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혁신의 중심에는 시민운동가 시절부터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행동가'란 평가가 따르는 오성규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이 있다.

2013년 6월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으로 부임한 지 어느덧 2년 3개월. 지난 11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오성규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을 만났다. 서울시설공단이 주최한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올바른 사생관 정립의 중요성을 막 역설하고 돌아온 다음이었다.

"아이디어는 느닷없이... 생사 문화 주간도 공단 직원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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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장례 문화 개선 시민 캠페인', '생사 문화의 날' 행사 ⓒ 이정환


- 컨퍼런스 참여 소감을 먼저 듣고 싶다.
"사람들이 살기 각박하다. 젊은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통받고 있고,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어르신들에게는 슬픔 또는 자괴감이 있다. 모든 세대에 걸쳐서 대부분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문제들의 근원을 쭉 쫓아가 보면 올바른 사생관의 사회적 부재, 더 정확히 표현하면 왜곡된 인식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죽으면 끝이란 생각이 너무 지배적으로 굳어져 있다 보니, 치열하게 경쟁해서 전취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올바른 사생관의 정립이 필요하다. (컨퍼런스는)이런 문제를 성찰하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근원을 찾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 생사문화주간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는지? '내 뜬 생각 토론회'를 실시하는 등 평소 직원들에게 상상력 발휘를 강조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관료 조직에 몸을 담다 보면 보통 본인이 갖고 있는 상상력이나 무궁무진한 능력 자체가 오히려 쪼그라들거나 제약당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우리 공단에 젊은 직원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왔는데, 젊은 직원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개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이 탁월하고 열정도 꽤 높다. 이런 보배같은 인적 자원을 잘 북돋아 주면 공단 발전은 물론 나아가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전도사가 될 수 있다.


아이디어는 느닷없이 나오는 거다. 길게 회의한다거나 숙제시키듯 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또 그 생각을 실제 프로세스로 발현시켜주는 것이 조직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생사문화주간도 한 젊은 직원이 '내 뜬 생각 토론회'를 통해 제안한 것이다. 국제심포지엄을 통해 외국에서는 사회적으로 죽음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비교해서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한 장점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함께 추진을 결정하게 됐다."

현대 사회에서 장례문화에 더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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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과 성숙한 장례 문화를 위하여'를 주제로 11일 열린 국제심포지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해 장례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표시했다 ⓒ 서울시설공단 최우영


- 생사문화주간 보도자료를 통해 이사장님은 "이번 국제심포지엄을 비롯한 생사문화주간 행사가 우리 사회의 성숙한 장례문화 확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 장례문화에서 미성숙한 부분은 무엇일까.
"상당히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데도 정확한 정보가 없다 보니 유족들은 굉장히 피곤하다. 그러다 보니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이 싸우는 모습도 종종 발생하곤 한다. 장례업체가 추천하는 대로 장례를 후딱 치르고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고 울다 돌아가기 마련이다. 장례식장에서도 고인에 대한 이야기, 어떤 삶을 살아오셨고, 뭔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그냥 얼굴을 보여주기 위한, 안 가면 좀 그래서 가는, 이런 모습들을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보면, 과도한 비용을 들여 장례를 치를 이유가 전혀 없지 않나. 지금 화장하는 비율이 전국적으로 80%가 넘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주 고급 관, 아주 고급 수의 같은 걸 하는 경우가 있다. 24시간밖에 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데도 그렇게들 한다. 이런 걸 강요하고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 지난 4월 YTN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는 비효율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런 문제는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고, 장례를 문화적 측면에서도 짚어봐야 한다. 예전처럼 마을이나 공동체가 살아 있을 때는, 그 동네 어떤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면, 그분의 삶, 그 궤적이 공동체 안에서 오롯이 공유됐다. 진정으로 애도하고 함께 상여를 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익명 사회다. 돌아가신 분 삶의 궤적을 누군가 설명하지 않으면 잘 모르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겉치레에 집착하게 되고, 장례 의미를 '돈'으로만 따지게 되는 것이다."

"결혼이나 장례, 공공부문에서 책임의식 가져야 할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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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규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 이정환


- 서울시설공단은 10대 혁신 과제에 시민 장례 비용 절감을 포함했다. 장례비용 거품을 걷어내자는 취지로 '서울형 착한 장례 서비스'를 선보였고, '웰다잉 투어'를 진행하는가 하면 이번에는 생사 문화 주간 행사를 개최했다.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서울시설공단이 '꼭 해야 할 일인가'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시설공단 하면, 일반적으로 하드웨어를 관리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딱딱하거나 관료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걸 극복하려고 이사장 취임 이후 가장 많이 노력했다. 하드웨어에 대한 효율적이고 안전한 관리는 기본 중 기본이고, 하드웨어가 갖고 있는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질 좋은 서비스를 개발해서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것 또한 우리 역할이다. '서울형 착한 장례 서비스'나 '생사 문화 주간' 행사 등을 그런 차원의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단순히 '시설 관리'라는 차원을 넘어서 그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뭔지, 또 바람은 뭔지 우리가 알고 서비스해야 한다. 예전에는 화장을 잘할 수 있도록 하고 묘지를 잘 관리해주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시민들은 더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요구하고 기대한다.

결혼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 다문화 가정을 꾸리려고 하는 사람, 또는 기초생활수급권자, 사실혼 관계인데 경제 형편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부부라든지, 이런 분들을 대상으로 결혼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단체가 있다. 그 단체에 어린이 대공원이나 상암 월드컵 경기장, 시 청사 등을 무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관혼상제를 사적 영역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결혼이나 장례 등은 사회적 의미도 분명히 갖고 있다. 공공 부문에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 영역이라고 본다."

- 시민 장례비용 절감을 위한 노력, 완료형은 무엇이고 진행형은 무엇인가.
"서울의료원에 우리 직원 2명을 파견했다. 착한 장례 서비스의 필요성을 알리는 동시에 실제 이용 방법과 장례 관련 절차를 안내하는 일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설공단의 취지에 공감해서 착한 장례 서비스를 이용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의미 있는 시작이라고 본다. 다만 시가 갖고 있는 장례식장이 많지 않아 양적으로 바로 확대를 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이 때문에 장례업체와도 협의를 진행할 생각이다. 예를 들어 한 장례업체가 한 달에 100건 정도 장례서비스를 한다면, 그 중 일정 비율은 사회 공헌 차원에서 공단과 같이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또한 착한 장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의미 뿐 아니라 효율성 측면에서도 탁월하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프로그램을 발전시킬 계획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묘지공원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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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설공단과 코리아해리티지센터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웰다잉 투어. 삶과 죽음의 공간을 연계시킨 여행 프로그램이다 ⓒ 서울시설공단


- 임기 3분의 2가 지났다. 임기 만료까지 반드시 완료할 과제가 있다면? 또 계속 진행형이 되어야 하는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시설 관리만이 우리 역할이란 생각에서 직원들이 확실히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과제를 제대로 발굴해서 해결할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임기에만 해당하는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문제 해결을 선도할 수 있는 바탕,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유럽을 보면 도시 한가운데 공원처럼 잘 꾸민 묘지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서 돌아보는 문화가 익숙하다. 이와 같은, 일종의 성스러운 장소가 도시란 공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서울에는 그런 공간이 없다. 오래된 역사 유적은 많이 멸실됐고, 빌딩 숲으로 이뤄져 있다. 더욱이 경쟁으로 내몰리는 우리네 삶을 생각한다면, 우리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자기 생활을 정리해볼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 작게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적절한 위치에 그런 공간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본다. ('서울 한복판에?'라고 묻자) 이왕이면 서울 한복판에, 또는 우리 집 근처에(웃음)."

○ 편집ㅣ박정훈 기자

#오성규 #서울시설공단 #웰다잉 #장례식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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