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 시집 가?"... 덕이는 심각했다

[말없는 약속 20년 37] 내 심장에 있는 '앙금'

등록 2015.09.22 14:43수정 2015.09.26 13:2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퇴근후 일과를 마무리 하고 덕이에게 잘 자라고 인사하려는데 덕이가 심각한 모습으로 책상 앞에서 팔장을 끼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앉아 있었다.

고모 : "덕아~ 무슨 일 있니?"
: (입을 꽉 다문채 대답이 없다.)
고모 : "덕이 표정을 보니까 무슨 중요한 일 같기도 하고, 아니면 심각한 일 같기도 한데 혹시 무슨 일 있니?"

: "고모 시집가?"
고모 : "응? 무슨 소리야?"
: "고모 시집간대."
고모 : "그게 무슨 소리?"
: "오늘 학교에서 집에 왔을 때 옆집 아줌마와 할머니가 이야기하는 말 다~ 들었어. 고모 시집간대."
고모 : "어? 내가 처음 듣는 말인데 내가 시집간데?"
: (눈에 힘을 주면서) "응! 고모 시집간데!"

덕이가 나도 모르는 말을 불쑥 했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아볼 일이지만 내가 시집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불안한가 보다.

고모 : "나는 덕이가 장가 가기 전에는 시집가지 않을건데?"
: " 정말이야?"
고모 : "응, 고모는 지금 사귀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시집을 가니?"
: "알겠어."


내가 결혼하는 것이 덕이에게 이렇게 불안한 일인가 싶을 정도로 안심하듯 참았던 한숨을 내쉰다. '그랬었구나.'

사실관계를 파악해보니, 우리와 아주 가깝게 지내는 옆집 아주머니(그분은 부녀회장인데다가 사회활동을 하시느라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고 한다)께서 내 어머니께 중매를 권하셨단다. "딸이 시집 가면 손주와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고 걱정하시며 외삼촌께 전화를 거셨던 어머니는 마음을 바꿔 옆집 아주머니의 중매 제의를 들어보셨던 것이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된 덕이가 잠시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고모 시집갈까봐 걱정되니?"... 덕이의 대답은

고모 : "덕아~ 고모 시집갈까봐 걱정되니?"
: "응."
고모 : "왜?"
: "그냥."
고모 : "(덕이의 심정을 알 것 같아서) 나도 그냥 물어봤어."

내겐 늘 심장 한 켠에 앙금이 있다. 덕이에게 무슨 충격적인 일이 발생하면 덕이가 혹시 예전처럼 몸이 아프게 될까봐 늘 걱정됐다.

고모 : "덕아~ 지금까지 고모가 덕이에게 약속한 것 중에 지키지 않은 게 있니?"
: "아니."
고모 : "고모가 지금까지 덕이에게 한 약속을 다 지킨 거야?"
: "응."
고모 : "기억해줘서 고마워. 나는 덕이와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려고 노력하거든."
: "알아."
고모 : "다시 말하지만 고모는 덕이가 장가 가기 전에는 시집 안 갈 거야."
: "응."

덕이는 "응"이라며 아주 평화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아이인 것을….

고모 : "이렇게 덕이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고마워. 그리고 점점 덕이의 생각을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아니?"
: "내가 말하는 게 좋아?"
고모 : "그럼 말이라고…. 나는 덕이가 나에게 학교생활이나 친구들과의 관계 그리고 태권도에서의 일들을 이야기해주면 좋겠어."
: "알겠어."
고모 : "그러면 앞으로 이야기를 해주겠다는 거니?"
: "응, 해줄게."

상처를 극복해 진주를 만들어낸 진주조개

내심 내가 놀랐다. 덕이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아이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믿기가 어려울 정도로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아마도 그동안 '표현력 부족'이라는 이유로 말 대신에 침묵속에 숱한 생각들과 고민을 했던 과정들이,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잠언'이나 '복음서'를 필서하면서 본인이 나름 착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입증의 표현들이 좋은 효과로 작용한 것 같아 나와 덕이는 함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대화 내용의 문장 또한 매끄럽게 잘 표현됐다.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마치 상처를 잘 극복해 진주를 만들어낸 진주조개처럼 대견하다.

고모 : "덕아~. 지금 이야기해 보니까 덕이가 말을 진짜 잘하는구나. 너의 생각과 상대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배려해서 말하는 것 같아서 고모는 기뻐."
: "(덕이도 자신이 이렇게까지 고모와 대화가 술술 이뤄질 줄 몰랐는지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모가 기뻐?"

고모 : "응. 지금 덕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흐뭇해. 역시 덕이는 되는 사람이란 걸 확인할 수 있게 돼 놀라워. 그동안 덕이가 얼마나 노력했을까 생각하니 네가 한없이 대단해 보인단다. 그리고 너가 그동안 얼마나 이런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는지 고모는 알고 있어."
: "어떻게 알아?"

고모 : "나는 덕이를 사랑하다 보니까 너의 태도를 통해 '지금 덕이가 즐거운지' '행복한지' 아니면 '지금 괴롭고 힘든지' '외롭고 슬픈지'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 "나두."
고모 : "너두? 그러면 내 마음을 너가 느끼고 있다는 거니?"
: "응."
고모 : "아~, 그랬구나. 나는 지금까지 나만 너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줄 착각했지 뭐니, 역시 덕이는 대단해!"

나와 함께 생활한 지 약 17년 만에 나타난 덕이의 발전·성장 모습이었다. '역시 덕이는 되는구나' 싶어서 흐뭇하다.
#결혼 #외로움 #버림받음 #의지 #발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3. 3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4. 4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5. 5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