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전설이 된 위선적인 청춘 지침서

[김성호의 독서만세 73]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록 2015.09.23 09:28수정 2020.12.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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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책 표지 ⓒ 쌤앤파커스


어떤 책은 나오자마자 고전이 되어버리곤 한다. 2010년 겨울 출간돼 꽁꽁 얼어붙은 출판시장 속에서도 한 달 만에 15만부를 팔아치운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그런 책 가운데 한 권이다. 자기계발서와 멘토링 서적 등이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에 이름을 올리던 당시의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이 책이 거둔 성공은 놀라운 것이었다. 저자인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가 싸이월드와 네이버 카페에서 소위 스타 멘토로 불릴 만큼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기에 어느정도의 성공은 예상된 일이었지만 독자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며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키리라고는 출판사와 작가 모두 예상치 못했을 테다.

하지만 고전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책인 건 아니다.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널리 읽혀온 작품이 모두 걸작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우리 주변엔 존경보다 멸시를 받는, 찬사보다 비난을 받는 고전도 충분히 많이 존재한다. 출간된지 겨우 5년이 된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 역시 앞으로도 오랫동안 비난을 받는 고전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높아진 건 출간 2년 정도가 지나면서부터였다. 포털사이트에 마련된 도서비평란은 물론이고 각종 커뮤니티와 블로그 등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조금씩 늘어나더니 급기야 유명인들까지 가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2년 가을 영화감독 변영주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언급하며 거칠게 비난했고 이것이 트위터 등 SNS상에 퍼지며 급기야 김난도 교수가 변영주 감독에게 불편한 멘션을 보내는 일까지 생겼다. 그리고 이 사건은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되며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이름을 더욱 널리 알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비판의 강도는 점차 세지다가 마침내 해학으로 승화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본방송이 아니더라도 영상을 통해 많은 이들이 접했을 유병재의 드립은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례에 속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15일 방송된 케이블채널 tvN의 'SNL 코리아'에서 "아프면 환자지. 청춘이냐"는 대사를 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고 회사를 떠나는 인턴사원 역을 맡은 그가 "너무 상심하지마.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위로하는 상사를 향해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냐, XXX야"라고 분노의 일갈을 날리던 장면은 SNL 코리아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기에 충분한 순간이었다.

최근에는 책의 제목을 변형한 '아푸니카 촌충'이라는 말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은 헬조선 등의 신조어와 엮여 유행하는 이 말은 거꾸로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이 시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비록 긍정적인 영향만은 아니었을지라도.

내가 이 책을 선물받은 건 또래보다 한참 늦은 군생활을 하고 있던 2011년 가을이었다. 당시 고시를 준비하던 친구가 휴가나온 내게 건넨 책 몇 권 가운데 한 권이 바로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다. 당시 같이 받은 책으로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우석훈·박권일의 <88만원 세대>가 있었는데 고립된 지역에서의 군생활로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 당시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훑어 산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바로 이 책을 읽지는 않았다. 가진 것 없고 기약된 것도 없으며 팍팍한 군생활을 하던 와중이었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것만큼 불안하거나 불행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독자에게 위로와 위안을 던지는 이런 종류의 책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자기계발서나 각종 세대론에 반감을 갖고 있던 내게 이 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읽지 않아도 알만한 것들로 여겨지기도 했다. 아무튼 그 모든 이유로 나는 이 책을 바로 읽지 않았다.


내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펼쳐든 건 지난달이 되면서였다. 어쩌면 많이 아팠을지 모를, 너무 아파서 아픈 줄도 몰랐을 그 불안한 시간을 건너 취업을 한 직후였다. 휴일을 맞아 방 책꽂이를 정리하다 이 책이 눈에 들어왔고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궁금해져 책을 펼쳐들었는데 쉽게 술술 읽히는 문장에 손에서 놓지 않고 주욱 읽어내려간 것이다. 너무도 유명한 책이었고 극명하게 엇갈리는 평가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작지 않았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명백한 구조의 문제를 외면한 채 속편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기성세대의 꼰대질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는 척 미사여구만 늘어놓는 모습이 위선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그 짧은 글 안에서조차 서로 엇갈리는 내용이 적지 않다는 점이었다. 한 장의 내용이 다른 장의 내용과 반대되고 같은 장 안에서도 전반부와 후반부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부분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책 자체에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된 부분도 많이 보였는데 이 모두가 저자가 자기자신을 기만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건 자네가 얼마나 교수가 되고 싶은가 하는 '열망'의 문제네. 자네 전공에 맞는 채용공고가 언제 날지 전혀 장담할 수도 없고, 그때까지는 이렇게 불안정한 생활을 계속해야 하니 말일세. 그걸 모두 견딜 수 있을 만큼 교수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다면, 그 열망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있다면, 이번 제안은 거절하고 더 기다려보게." - 26p

교수가 되기를 간절히 원함에도 자리가 나지 않아 고민하던 도중 사기업으로부터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후배에게 저자가 쓴 편지의 일부다. 저자는 학문의 길을 걷고 싶지만 채용 공고가 나지 않아 고민하는 후배에게 자신의 열망이 얼마만큼인지 돌아보고 확신이 있다면 제안을 거절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이 책에 편지의 내용을 고스란히 옮겨놓으며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열망이 얼마나 중요성한가를 역설했다.

나는 그의 이런 태도가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열망이 중요하다는 걸 누군들 모르겠는가. 문제는 대학이 비정규직 강사의 비율을 늘려가는 상황에서 젊은 학자들이 열망을 지키며 기회를 기다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은가. 교수직 채용공고가 언제 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학자의 길을 이어가야하나 고민하고 있는 후배에게 보낸 이같은 글을 불특정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에 옮겨놓은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고 대안을 제시하긴커녕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모든 걸 개인의 열망에 돌리는 그의 판단에선 결코 건전한 비판의식이나 시대를 꿰뚫는 통찰 등 유효한 가치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대, 좌절했는가? 친구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그대만 잉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잊지 말라.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않은 화려한 기개를 뽐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라. 그대의 계절을 준비하라. - 40p

이 대목 역시 마찬가지다. 취업에 성공하고 시험에 합격하는 등 승승장구하는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좌절하고 있을 젊은이들에게 저자는 이와 같은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모든 젊음은 꽃과 같이 언젠가는 피고 말테니 고개를 들고 다가올 계절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꽃이 아니다. 심지어 꽃조차도 어떤 환경에선 영영 피지 못한다는 걸 그는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고 있다.

고용절벽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취업이 어렵고 기껏 일자리를 구해도 태반이, 통계에 따르면 신규취업자의 80% 이상이 비정규직인 세상에서 이처럼 속편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당혹스러울 뿐이다.

누군가 젊은 시절의 내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의 성숙한 내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웃기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성숙, 그런 거 안 해도 좋으니까 그런 어려움은 절대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그런 시련일랑 나중에 조금 더 어른이 되어, 그런 종류의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때가 됐을 때, 그때 맞아도 충분하니까. - 92p

자가당착이란 건 바로 이런 걸 가리키는 말일테다. 저자는 자신의 개인사를 언급하며 이제까지의 논조와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내내 역경이 사람을 키운다며 수많은 개인을 무너뜨리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외면하더니 이 장에 이르러서는 시련이란 견딜 수 있을 때 맞아도 충분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도 얼마 가지 않는다. 이내 시련이 사람을 더 크게 만들기에 시련을 겪어야 한다는 예의 주장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독자 입장에선 반전에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무조건 많이 쌓은 스펙이 좋은 것이 아닌데도 많은 젊은이들이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취업의 장을 스펙의 경연장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수단이 목적으로 변해버리는 전형적인 예다. - 274p

이 말을 믿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일부 예외가 있겠지만 대다수는 서류에서 모두 걸러진다. 전형적인 꼰대세대의 속편한 이야기가 아닌가. 굳이 덧붙이고픈 말이 없다.

'괜찮은 직장'에 대한 경쟁이 사상 최악으로 치열해진 것이 문제다. 대학졸업자는 과거보다 크게 늘어났는데 고용 없는 성장은 지속되고, 기성세대의 기득권 사수가 누적되면서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는 정체를 거듭하고 있다. 인력에 대한 수요는 제자리인데 공급은 폭증했으니, 경쟁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치열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략) 일단 기차에 올라타라는 것이다. - 292p

책에서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고 진단한 몇 안 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좋은 조건의 일자리가 없고 공급이 폭증하는 걸 문제로 지목하며 나름의 해법을 내놓는다. 일자리는 상황이 좋아지면 옮길 수 있으니 일단 눈을 낮춰 취업부터 하라는 게 그가 내놓은 결론이다. 기차에 올라타라는 그의 제안은 일견 구글 CEO 에릭 슈미츠가 현 facebook COO 쉐릴 샌드버그에게 구글입사를 제안하며 했던 말을 연상시킨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로켓에 자리가 나면 일단 올라타세요"라고 말했고 쉐릴 샌드버그는 주저하지 않고 로켓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 로켓은 진짜였다.

하지만 김난도 교수가 이야기하는 기차는 어떤가. 청년세대가 그토록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이유를 그는 진정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일자리의 질을 포함해 사회 전반에서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스스로 눈을 낮춰 열악한 일자리를 택하라고 권하는 그의 태도에 열불이 날 지경이다. 아무 기차나 타면 아무 곳에나 떨어진다는 걸 청년세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일단 좋지 않은 기차를 타면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도, 더 나은 기차로 옮겨타기도 어렵다는 걸 김난도 교수 빼고는 모두가 안다. 그래서 처음부터 좋은 기차를 타기 위해 그토록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스스로를 소모해가면서까지.

이처럼 책은 온갖 위선과 자기기만, 시대착오적 조언으로 가득했다. 한 해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였고 지금까지 꾸준히 팔려나가는 저작치고는 너무도 수준이 낮은 책이었다. 이 책으로부터 받는 위안이란 일종의 마취주사나 다름없다. 실제를 가리고 이쁘게만 포장해서 내놓은 청춘 지침서. 부디 이 땅의 청춘이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12. / 1만 4천원)

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쌤앤파커스, 2010


#아프니까 청춘이다 #쌤앤파커스 #김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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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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