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민 MBC PD "'빡치는' 일 너무 많아"

[기자간담회] '해고, 정직, 인사발령 무효' 소식에 "상식적인 판결"

등록 2015.09.25 16:35수정 2015.09.2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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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사옥앞에 선 권성민PD 회사를 상대로 한 정직 및 해고 무효 소송 1심에서 승소한 MBC예능국 권성민 PD. ⓒ 권우성


해고도 무효, 정직도 무효, 인사 발령도 무효!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 노동자의 손에 들린 피켓 문구가 아니다.

24일 서울지방법원 제11민사부가 권성민 MBC PD의 손을 완벽하게 들어주며 내린 판결은 이렇게 단순하고도 명확했다. 개인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린 만화로 인한 해고 조치는 부당하다고 했다. '정직 6개월'의 중징계 역시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올린 글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다고 했다. 정직 기간이 끝난 후 PD를 비제작부서로 발령 낸 행위 역시 힘을 남용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MBC 측은 즉시 반발했다. 판결이 나오자마자 '회사 비방과 시청자를 모욕한 미성숙한 행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이 발표됐다. "반복적이고 맹목적인 해사 행위를 좌시할 수 없다"며 항소 방침을 천명했다. "기형으로 난 떡잎은 잘라내야 잡초로 자라지 않는다"거나 "회사와 동료를 조롱하고 비웃은 권성민" 등 한 언론사의 공식 입장이라고 하기에는 거친 표현도 담겨 있었다.

"해고 무효보다 부당 전보 판결이 더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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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서 졌으면 물론 굉장히 낙담했겠지만, 3개 사안에 대해 다 상식적인 판결을 내려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MBC예능국 권성민 PD. ⓒ 권우성


25일 MBC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권성민 PD가 참석한 가운데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먼저 이야기의 화제는 어제 발표한 MBC 측의 입장문. 조능희 MBC 노조위원장은 "선택한 단어들을 보며 자괴감을 느꼈다"고 했다. "방송사 이름을 걸고 나오는 글이라고는 상상이 안 된다"고도 했다. 김혜성 노조 홍보국장은 "10분 만에 그 글이 나온 걸로 안다"며 "어떻게 보면 질 걸 뻔히 알았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싸움을 왜 계속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당사자인 권성민 PD는 회사의 항소를 예상했느냐는 물음에 "당연히"라고 답했다. 회사 입장 글은 보지 않았다고 했다. "당연히 질 수 없는 판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해고 당시 회사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글로 커다란 '벽'을 느낀 듯 했다. 그는 "재판에서 졌으면 물론 굉장히 낙담했겠지만, 3개 사안에 대해 다 상식적인 판결을 내려주셔서 기분이 좋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부당 전보를 회사 경영권으로 인정하면, 해고 무효가 나와도 회사에서 원래 있었던 경인 지사로 가라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노동자로서 회사에 복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능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일할 수 있는 부분까지 존중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반가운 판결이었어요."

옆에 있던 김혜성 홍보국장 역시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 등 지금 비슷하게 진행 중인 사안들이 있기 때문에 부당 전보라는 판결은 다른 조합원에게도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동료나 선배들 반응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권 PD는 "예능 PD 선배들한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어서 편집 지옥으로 돌아 오라'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지옥 같은' 일상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자연스레 '복기'도 시작됐다.

해사 행위? "자학 개그 예민하게 받아들여"

- '오늘의 유머'에 글을 올리거나 웹툰을 올린 이유, 다시 한 번 말해달라.
"글을 올린 건 사실, 안타까워서였다. 동료들이나 선배들이 지금 어떤 상황이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데, 바깥에서는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변했구나'는 식으로 보고 있는데 대해 안타까움이 컸다. 왜 이런 뉴스가, 왜 이런 방송이 나가는지,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란 표현을 쓴 것도 그래서였다.

웹툰은 '오늘의 유머'에 올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예전에도 예능국에 웃기는 사람이나 에피소드도 많고 그래서 만화로 그리면 재밌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선배들 캐리커처를 자주 그렸었다. 수원까지 출퇴근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예능국을 떠나 나 스스로를 나름대로 되새길 겸 올린 것이었다. 선배들에게는 일종의 '잘 살고 있다'란 신호를 보내는 의미도 있었다."

- 회사에서 해사 행위라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는가.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보일 거 같은 내용은 최대한, 일부러 그리지 않았다. 물론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자조는 있었다. 유배라는 말은 사실 공공연하게 쓰이는 표현 아닌가. '예능국은 정말 빡센데, 지금 정시 퇴근하고 있다', 이런 건 사실 자학 개그 같은 것이었는데, 회사에서 이런 부분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더라.

사실 정직 기간, 6개월 동안은 조용히 있었다. 선배님들이 징계가 끝나면 예능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해서 더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정직 끝나기 하루 전까지만 해도 아무 얘기가 없다가... 그 날 6시였나? 갑자기 수원으로 가라고 하더라. 그래서 예능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기보다는, 조심스럽게라도 여기서 내가 만들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예능국 너무 그립지만..."지금은 당장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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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부터 관심 있던 주제들이 있다. 소외나 빈곤의 문제, 이걸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재밌게 볼 수 있을까. 예능으로 이런 메시지를 풀어내는 게 참 어려운 것 같다" MBC예능국 권성민 PD. ⓒ 권우성


-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뉴스타파> 객원 PD로 '타파스'란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고 있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에서 영상제작 실습 수업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만들고 싶었던 콘텐츠들 기획해서 만들고 있다. 나와서 보니까 예능을 바깥에서 만들기는 쉽지 않더라. 출연자에 의존하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걸 실감한다."

- 예능 PD로서 '감'을 유지하려고 어떤 노력을 하는지?
"가장 중요한 건 예능 모니터링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PD가 어떤 지시를 했구나, 어떤 생각으로 자막을 썼구나, 그런 게 어느 정도 보이니까. 그런데 해고 데미지가 가장 클 때가 예능을 볼 때라서(웃음)... 그래도 봐야지."

- 다시 예능국 복귀하면 '이런 거 만들고 싶다', 그런 게 있다면?
"학생 때부터 관심 있던 주제들이 있다. 소외나 빈곤의 문제, 이걸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재밌게 볼 수 있을까. 예능으로 이런 메시지를 풀어내는 게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런 걸 한참 배워가고 있는 중이라서,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사실, 미래에 대해서는 잘 생각 안 하는 편이라, 지금은 회사 바깥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거만 고민하고 싶다."

- 언제 MBC 예능국에서 다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앞에 선배님들 사례가 있다. 대법원까지 가면 3년 넘게 걸리지 않겠나. 그보다 다소 시간이 조금 적게 걸릴지 모르겠지만,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징계를 당하는 선배님 경우를 보면, 예능국으로 돌아가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사실 난 디즈니 좋아하는데...'빡치는' 일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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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상대로 한 정직 및 해고 무효 소송 1심에서 승소한 MBC예능국 권성민 PD가 25일 오전 마포구 MBC상암사옥 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권우성


- 결국 MBC 안에서는 예능 PD로서 불투명한 셈인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그때 가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제가 삶에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다.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으면 ('오유'에 글을 쓰거나 웹툰을 그리거나 하지) 안 그랬을 거다(웃음).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거 하고, 그때는 그때 가서 할 수 있는 거 하려고 한다."

-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이 남다른 듯 하다.
"기본적으로 콘텐츠 만든다는 자체가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행위 아니겠나. 그게 진지한 메시지가 될 수도 있고,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나 혼자 만들고 만족하자는 게 아니니까, 이런 생각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기본 값인 거 같다.

정말 솔직히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건... 사실 난 디즈니 좋아한다. 사회적인 거랑 아무 상관없는 거 하며 살고 싶다. 정직 기간에 한 15년 만에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을 했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 재밌더라. '주인공이 어떻게 악당하고 싸우면 게이머들이 더 재밌을까', 그런 고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 보였다.

그렇게 즐겁게 만들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이면 좋겠는데, 못 본 척 하기에는 '빡치는' 일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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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무효 판결받은 MBC PD, '사원증'은 언제쯤... 권성민 PD는 정직 및 해고 무효 소송 1심에서 승소했지만, MBC사옥을 출입하기 위해서는 '외부인'들 처럼 '방문증'을 받아야 한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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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프로 전시장 보는 권성민PD MBC예능국 권성민 PD가 25일 오전 마포구 MBC상암사옥 노조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며, 건물 로비에 전시된 예능프로그램 전시장을 쳐다보고 있다. ⓒ 권우성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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