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누구를 위한 명절인가

지나친 형식보다는, 우애를 다지고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에 집중해야

등록 2015.09.27 19:25수정 2015.09.27 19:2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다. 낡은 시골집에 모여, 전을 부치고 음식을 나누며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담소를 나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재롱을 부리고, 오랜만에 만난 형제자매들은 윷놀이를 하며 우애를 다진다. TV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명절의 모습이다.


이런 고전적인 명절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하루 혹은 길어봤자 반나절 이내에 제사를 지내고 각자의 집으로 귀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 경기권에 인구의 대다수가 몰려 있기 때문에 반나절, 혹은 하루면 친척집에 다녀오는 데에 무리가 없다.

아침 제사를 마치고, 일찍 귀가하라는 부모님의 배려에 잠시 아내와 함께 차나 한잔 할까 하며 삼청동에 들렀다. 대부분 사람이 서울에서 지방으로 빠져나가는 명절은, 삼청동이나 명동 등 평소 사람이 많아 들리기 어려웠던 곳에서 조용히 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왠걸, 가는 길부터 차가 막히는 품이 심상치 않아 보이더니, 삼청동과 경복궁 주변은 중국인 관광객들과,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히려 평소의 일요일보다 더 복잡한 모양새였다. 추석이라 하면, 나이 드신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계신 지방으로 내려가 음식을 마련하고 제사를 지내며 며칠을 지내다 오던 과거의 추석과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스트레스가 되어 버린 명절

사촌들을 만나 놀이를 하고, 모처럼 신나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추석은 정말 옛날이다. 가족들이 모여 있으면 정이 돈독해지고 가가호호 웃음이 넘쳐날 것 같지만, 근래의 실상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명절에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일단 '며느리들'이다. 며느리들에게 추석이나 설 등은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스트레스다. 시댁 식구들의 눈치를 보는 와중에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고 잔심부름을 하며 가족들을 수발해야 하는 며느리들. 이들의 짜증은 자연스레 남편에게 돌아오고, 괜히 억울해진 남편은 형제나 부모에게 그 화풀이를 하며 가족간에 웃음소리보다는 고성이 오간다.

어른들은 "옛날에 비하면 하는 것도 없으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하며 혀를 찬다. 며느리들도 처음에는 입술을 깨물며 참아보지만, 차츰 울분이 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중간에 낀 남편들만 애꿎은 담배를 태우며 어찌할 줄 모른다. 즐거워야 하는 명절에, 왜 이러한 감정적 부담이 생기는 걸까.

경제적 역할의 변화

유교가 우리나라에서 유래된 종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조선 중기에 이르며 유교를 국가적으로 받아들이며,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고 장자, 적자의 역할을 강화 시켰다. 농업이 근간이 되던 과거의 사회에서, 집안의 어른인 가부장(家父長) 은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지닌, 현대에 비유하자면 일종의 사업주라고 볼 수 있겠다.

집안의 아들들은 그 밑에서 피고용인 역할과 상속자로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으며, 별도로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여성들은 남성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여성들은 이름도 제대로 갖지 못하고, 집안의 온갖 허드렛일을 떠맡으면서도 적극적인 변화를 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회가 현대화되면서,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뛰어들었고 우리나라의 3차 베이비붐 세대인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태생에 이르러서는 남성과 여성의 사회 진출에서의 차이가 거의 사라졌다. 의료인, 법조인 등 전문직에서도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게는 절반에 가깝게 늘었고, 대기업을 포함한 유수의 회사들, 공무원 등의 직종에도 여성이 대거 진출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형제 자매간의 교육적 불평등도 크게 감소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집안이 어려워 장남에게만 대학 교육을 시킨다거나, 큰 딸은 집안의 밑천(교육보다는 일찍부터 취업에 뛰어들어 돈을 번다는 개념에서)이라고 믿었지만, 현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는 현실감 없이 낡은 이야기들이다.

그러다 보니 장자는 장자대로, 동생들은 동생들대로,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불만이다. 제사나 부모님 부양 등 집안의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장자는 자신만 희생한다고 생각하며, 딱히 자신을 위해 해준 것도 없는 형을 평생 모시고 아랫사람 노릇 해야 하는 동생도 약오른다. 재산이라도 차별을 두어 받는다면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자기 돈 벌어서 자기 앞가림하고 시부모님 용돈에도 기여하는 며느리는, 일터에서 뼈빠지게 고생하고 명절이 되어 좀 쉬어볼까 하면 집안일이 쌓여 있으니 혈압이 오른다. 이 모든 꼴을 보고 있는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요즘 젊은이들은...' 이라고 혀를 찰 수 밖에 없다.

변화 없이는 해결도 없다

분명히 사회는 많이 변화하고 있다. 변화한 사회에, 변화하지 않은 명절의 모습을 적용하려 한다면 부작용만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변화를 전통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성을 억압하고 가부장과 장자를 우대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본래' 전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본래 고려시대 및 조선 초기까지 우리나라는 여성에 대한 평등이 적은 사회였으나, 사회적 필요에 의해 유교가 도입되며 여성을 천시하고 가부장과 장자를 우대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명절이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크게 '조상에 대한 공경'과 '가족 간의 화목 다지기'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 '가족 간의 서열 다지기'나 ' 재산 분할하기'가 명절의 중요한 의미가 아니다. 일터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와 명절의 가사에 혹사당하고, 그 스트레스가 남편에게 이어져 부부싸움 및 가족싸움으로 이어지는 명절이 도대체 누구에게 기쁠 것인가. 산 사람은 접어두고 조상님들이라도 기뻐할 것인가? 아닐 것이다.

사회가 변화한 만큼, 가족 내 남, 녀, 장자, 차자의 구별을 명확히 하기 보다는 가족 구성원 마음 깊이에 있는, 돌아가신 어른들을 기리는 마음을 더욱 살려야 한다. 화려한 제사상보다는 단촐하더라도, 다툼없이 가족들이 모여 조상을 공경하는 모습을 조상님들도 더욱 좋아하실 것이다. 집안일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압축하고, 남는 시간들을 나들이에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평소에 얼굴보기도 힘든, 바쁜 현대인의 가족 내 우애를 다지는 것이 조상님 보기에도 더 좋고 의미있는 명절이 되지 않을까.
#추석 #명절 #명절증후군 #화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변화는 고통을 수용하지만, 문제는 외면하면 더 커져서 우리를 덮친다. 길거리흡연은 언제쯤 사라질까? 죄의식이 없는 잘못이 가장 큰 잘못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4. 4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5. 5 김종인 "윤 대통령 경제에 문외한...민생 파탄나면 정권은 붕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