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에 불 지피던 물골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한 장의 사진] 강원도 물골 할머니

등록 2015.10.02 15:00수정 2015.10.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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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할머니 지난 가을, 여름의 끝자락인가 싶었는데도 물골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했고, 물골 할머니는 가마솥에 물을 가득 붓고는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 김민수


인연이 닿아 물골을 드나든 지 꽤나 오래되었다.


맨 처음 그곳을 찾아갈 때에는 갑천에서 산길을 걸어걸어 들어갔고, 이후에는 서석쪽에서 제법 큰 개울을 건너 물골을 찾았다. 개울이라고 하기엔 크고, 계곡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강이라고 하기엔 턱없이 작은 물길이었고, 그 물길은 청계산 자락에서 흘러와 갑천으로 이어지는 물길이었다. 그 이후의 물길은 가늠만 될 뿐이다.

거반 30년, 그 세월동안 변한 것은 그닥 많지 않다. 아니, 많을 수도 있다.

새까맣던 다슬기와 온갖 1급수에 살던 물고기와 반딧불이는 귀한 존재가 되었고, 물골도 이젠 그 이름과는 달리 가뭄도 든다. 물골에 집 서너채가 들어왔고, 할아버지는 몇 해 전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그 사이 증손주들을 많이 보셨다. '많이', 오랫동안 만났지만 세세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의 간격이다.

나는 그 사이 결혼을 해서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물골에 모셨고, 이후엔 더 자주 그곳을 들락거리며 물골 할머니를 만난다. 그냥 거시적으로 보면 할머니나 나나 크게 변한 게 없다. 눈에 확 띄게 변한 것이 있다면, 물골 할머니의 집이 초가지붕에서 슬레이트지붕으로, 양철지붕에서 기와모양을 낸 프라스틱 빨간 지붕으로 변했다는 것일까?

아주 서서히 변했기에 30년 전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했음에도 지금 그 모습이 그때 그 모습처럼 느껴진다. 그건 나의 착각일 것이다. 그 착각은 나만 늙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며칠 전 오랜만에 조카가 한잔 하고 싶다며 아이들을 불러낸다.

무슨 일일까 싶어 따라나섰더니만 조카가 나를 보고 대뜸 "삼촌, 왜 이렇게 늙었어" 하며 우는 시늉을 한다. 뒤통수를 한 대 줘박으며 "임마, 그런 농담은 하지말어, 그리고 이젠 늙을 때도 됐지 뭐" 했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하다.

물골 할머니는 언제나 그 모습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를 보면서 마치 어머니에겐 사춘기 시절도 없었던 것 같은 착각을 한 것처럼 말이다.

시월 첫날, 전국적으로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종일 내렸다. 가을비가 내린 후, 이제 본격적인 가을을 알리는 듯 서울의 아침도 쌀쌀스럽다. 이미 여름에도 간혹 군불을 넣던 물골은 가을 초입부터 아침 저녘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폈을 것이다.

지난해 가을이었다.

물골 할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계셨다. 이전에 소를 키울 적에는 가마솥에 여물을 삶기도 했는데, 이젠 소도 없고 영감도 없이 홀로 사신다. 물을 뎁혀놓으면 이래저래 쓸 곳이 많다는 할머니, 어쩌면 따스한 온기가 그리우셨을 것이다. 아랫목은 적당히 눌어있어 몸을 지지기 좋았다. 잠시 손만 넣어보고 온 것이 이내 후회스럽다.

아침 저녁으로 물골 할머니 집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를 것이다. 찬 바람이 불어오니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물골 할머니가 생각난다.
#물골 #사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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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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