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교육장을 금천구 학교로? 난리가 났다

[서평]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의 <징검다리 교육감>

등록 2015.10.12 17:04수정 2015.10.1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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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징검다리 교육감>을 읽었다.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이 701일 간 서울교육 수장으로 있으면서 꾸려간 '교육혁신' 기록이다. 얼핏 '교육감 회고록'이나 '교육계 생태보고서'로 볼 수 있다. 곽 전 서울교육감은 "교육개혁 매뉴얼, 특히 '개혁동학(synamics)'에 관한 시론"(7쪽)으로 평가받기를 희망한다고 적고 있다. "실현가능한 교육개혁이론을 정립하고 싶었다"라는 표현에서 책의 색깔이 짐작된다.

나는 서울의 첫 진보교육감으로서 내가 나아간 지점과 실패한 지점에서 생생한 교훈을 정리해 개혁적인 후임자들의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여주고 싶었다. 누가 진보교육감이 되어도 나의 허물과 한계를 답습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내가 어디서 시작해 어디까지 나아갔는지, 더 나아가기 위해 유의할 점은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싶었다. (6쪽)

책은 곽 전 서울교육감이 물려받은 서울교육의 현실을 출발점 삼아 공교육과 교육행정의 표준을 세우기 위한 '곽노현표 교육정책'(2부), '곽노현표 교육행정'(3부)들을 두루 살피고 있다. '성찰과 제언'이라는 제목이 달린 마지막 4부에는 교육개혁리더이자 정무직 직선교육감으로서 얻은 교훈을 '교육개혁 10계명'으로 정리해 놓았다.

곽 전 서울교육감은 2010년 취임 당시의 우리나라 공교육을 '오체불만족'으로 규정했다. 그가 보기에 아이들은 '세계 1등'의 피사(PISA) 성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공부에 대한 지적 흥미와 자발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인성 없는 교육은 원칙 없는 정치, 도덕성 없는 사업, 인류애 없는 과학, 양심 없는 쾌락, 노동 없는 부, 희생 없는 신앙 등등 일찍이 간디가 설파한 7대 악의 뿌리가 되어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었다.

"20년 후 우리 사회는 지금의 학교 교실에서 만들어"(24쪽)진다는 사실이야말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 아닐까. 곽 전 서울교육감은 인성 없는 교육을 이끌어가는 관료제의 톱니바퀴를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그가 보기에 학교교육은 관료제의 부정적인 특징인 무사유, 무성찰, 무비판, 무기력, 무책임이라는 '암' 덩어리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곽 전 서울교육감의 취임 일성은 "중학교를 혁신한 교육감으로 평가받고 싶다"였다. 공교육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학교를 혁신함으로써 보편적인 공교육의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문·예·체 교육 활성화, 체벌금지 정책 실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학생자치와 현장 교사 중심의 학교폭력 대책, 친환경무상급식 확대 등 '곽노현 표 교육정책'이 학교 현장에 속속 도입되었다.

곽노현이 서울교육감 취임 이래 겪은 시행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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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교육감> 겉표지. ⓒ 메디치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교육행정의 새 표준'을 표방한 3부다. 곽 전 서울교육감은 교육행정을 교육정책을 담는 그릇이자 전달 통로에 빗댔다. 실제 각 학교의 색깔은 학교 구성원들의 면면에 따라서뿐 아니라 상급기관인 교육청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교육행정 개혁과 혁신은 학교개혁과 혁신으로 귀결된다"(160쪽)는 그의 진단은 핵심을 제대로 짚은 것이다.

곽 전 서울교육감은 교육행정의 변화원칙으로 정보공개, 참여와 협치, 데이터기반 실사구시를 꼽았다. 서울교육청을 이른바 웹3.0 지방교육정부로 진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인사행정, 감사행정, 예산행정, 시설행정, 조달행정, 사학행정 등 모든 분야에 예외 없이 다층적 거버넌스로 참여의 제도화를 도모했다.

'곽노현표 교육행정'은 중식지원비율을 활용한 교육격차 해소부터 시작되었다. 곽 전 서울교육감은 중식지원비율을 '매직 넘버'에 비유했다. 다양한 교육성과와 두루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빈곤층 비율이 높을수록 학교의 교육성과도 빈곤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교육계의 철칙으로 규정하면서 "부모효과, 동네효과, 계급효과는 교사효과, 학교효과, 공교육효과를 7 대 3 정도로 압도한다는 것이 교육계의 연구결과"(170쪽)라고 역설한다.

강남교육장부터 금천구의 고등학교로 발령을 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난리가 났다. (중략) 일차적으로 중식지원비율을 25퍼센트 이상 학교에서 재직한 교장은 중식지원비율 5퍼센트 미만 학교로 이동시켰다. 같은 이치로 5퍼센트 미만 학교에서 재직한 교장은 25퍼센트 이상 학교로 전보했다. 누구도 양지에서만 근무할 수 없고 누구도 음지에서만 근무하지 않게 했다.(169쪽)

곽 전 서울교육감은 0퍼센트부터 73퍼센트(대부분은 5퍼센트에서 20퍼센트 사이에 있다고 한다)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서울지역 학교들의 중식지원비율을 활용해 역량 있는 교사, 교장, 장학관, 교육장을 중식지원비율이 높은 열악한 지역으로 보냈다. 인사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타 시·도 교육감들이 크게 참조할 만한 사례다.

쪽지인사와 결별하면서 원칙 있는 인사행정을 펼치는 노력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과거에는 정기인사 때마다 교육감에게 로비와 청탁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인사담당자 책상에 교육감실은 물론 부교육감실, 국과장실, 교육장실에서 암암리에 내려보낸 청탁성 쪽지들이 몇 백 장씩 수북이 쌓였다고 한다.

곽 전 서울교육감은 "인사권자는 통상적인 100개의 인사발령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 혹은 몇 개의 의도적이고 상징적인 인사를 통해 조직에 말을 건다"(227쪽)를 원칙으로 세웠다. 곽노현 표 인사행정의 혁신은 2011년 말 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도평가 인사 부문에서 서울교육청을 1위 자리에 세우는 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곽 전 서울교육감이 취임 이래 겪은 시행착오를 두루 '고백'하고 있는 대목(4부) 또한 각별히 눈여겨 볼 만하다. '교육개혁리더'와 '정무직 직선교육감'으로서의 성찰이라는 표제 아래 현장과의 소통 부족이나 정치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문제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직선교육감의 정치적 책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은 이른바 진보교육감이 13명이나 등장한 이후에도 진정한 의미의 '교육감 정치'가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고 있는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돌아보게 한다.

포퓰리즘과 궤변에 기대어 학생인권에 반대하는 시대착오적 세력과는 더 단호하고 지속적으로 담론투쟁을 벌이고 정치적 규탄을 조직해냈어야 했다. 이것이 학생인권과 운명적 조우로 선출직 교육감이 된 사람의 정치적 책임이었다. 어떤 이유로든지 꼭 필요한 정치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몹시 후회가 되기 마련이다. 정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정무직의 제1책무이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정무직은 시대의 대의가 요구하고 자신이 신봉하는 가치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가장 잘한 일로 평가된다.(337쪽)

교육감은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의 교육 사무를 총괄하는 지방교육청 수장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도 교육감의 정책에 대해 함부로 간섭하지 못한다. 명실공히 '지방교육 대통령'이다. 권한도 막강하다. 학교 설립과 고교 선발 방식을 좌지우지한다. 특목고 유치, 우별반 편성, 급식 방식 등 모든 교육주체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문제들이 교육감의 철학과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주민 직선제로 선출되는 차관급 정무직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고도의 정치 감각을 발휘해야 하는 이유다. 교육 이슈에 대한 교육적 책임은 물론 정치적 책임까지 함께 지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들어 열악한 지방교육재정 문제가 교육계 최대 이슈가 되고 있다. 교육감 정치를 제대로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현재 17개 광역자치단체의 교육감 17명을 선수별로 보면 3선 1명, 재선 6명, 초선 10명이다. 초·재선이 16명으로 절대 다수다.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이 강조한 정무직 교육감의 정치적 책임을 아직은 '순수하게' 의식할 만한 선수들이다. 이들이 곽 전 서울교육감이 '징검다리'가 되어 놓은 교육정책·교육행정의 '표준'을 참고삼아 치열한 '정치 투쟁'을 벌이기를 기대한다.

<징검다리 교육감>(곽노현 지음 / 메디치 / 2014.4.25. / 359쪽 / 1,7000원)
덧붙이는 글 정은균 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

징검다리 교육감 - 곽노현의 교육혁신 701일

곽노현 지음,
메디치미디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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